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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웹기획자

늙은 웹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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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에세이 top100 9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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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7월 11일
쪽수, 무게, 크기 176쪽 | 246g | 128*188*20mm
ISBN13 9791197890604
ISBN10 119789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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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 뉴스로 보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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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늙은 웹기획자다. 한때는 나도 미래가 기대되는 우수한 인재로 촉망을 받던 때가 있었다. (…) 시간은 빨리 지나간다. 나는 이미 마흔을 넘었다. 머리는 굳었고 몸은 내 맘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 상사의 시선은 곱지 않고, 동료들은 점점 사라져간다. (…) 그래도 나는 아직, 버티고 있다. 이 정글 같은 직장에서. 이것은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늙은 웹기획자의 이야기이다.
---「1. 늙은 웹기획자」중에서

그럭저럭 무난한 점수들 속에서, 그렇게 있는 듯 없는 듯 살고 싶었다. 튀지 않는 A4 용지처럼. 지금 내가 받은 건 형광색이다. 아주 잘 보이고 남들 눈에 잘 띄는. 눈부시기만 하고 인쇄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 다시 돌아가고 싶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황야에 버려진 늙은 개처럼 그늘을 찾아 웅크릴 뿐이다. 해가 뜰수록 그늘은 점점 작아진다. 언젠가는 그늘이 완전히 사라져버릴지도 모른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2. 결과평가 C」중에서

언제부터 내게 열정이란 것이 없어졌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내 나이 마흔이 되면서부터일까. 어떤 것을 봐도 흥미롭지 않고, 기쁘거나 슬프거나 화나거나 하는 감정에도 무뎌지게 되었다. 아이디어는 억지로 쥐어짜 내고 기획서는 군데군데 구멍이 뚫려 있다. 나이 어린 사원의 비아냥에도, 수준 높은 UX/UI를 추구하는 디자이너의 질책에도 나는 할 말이 없다. 가끔은 나도 항변하고 싶다. 그래도 열심히 하지 않은 건 아니라고.
---「4. 고통과 영광」중에서

기획 관련 책을 뒤적거린다. 새로 하는 오프라인 교육도 기웃거려 본다. 나도 뭔가를 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것이다. 아직 열정이란 게 남아 있는 사람처럼. 변화를 기꺼이 수용하고 새로운 것을 선도할 줄 아는 기획자의 모습을 어필해야 한다. 연기라 해도 어쩔 수 없다. 어차피 사회생활이란 게 다 그런 거 아닌가.
---「12. 최후의 기획자가 되고 싶은데」중에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지만 뭐라도 하고 있는 척 해야 한다.
---「18. 심심한 게 문제」중에서

그 후로 나는 만년 과장이 되었다. TV에서 묘사하는 그 모습 그대로의 만년 과장이다. 어디 감나무에서라도 떨어져 머리를 다친 것처럼 깜박깜박하고, 행동은 굼뜨고 눈치는 더럽게 없다. 늘 억울한 표정으로 사무실을 돌아다니고, 그 와중에 탕비는 고급으로 챙겨 먹는다. 짜장면을 먹는 상사 앞에서 혼자 양장피를 시켜 먹는 캐릭터처럼.
---「21. 만년 과장」중에서

회의록에 ‘칭찬을 받았다’라고 메모를 썼다. 늙어서 사라진 줄 알았던 동기 부여라는 게 밑바닥에서 콩콩, 하고 노크를 건네는 기분이다. 이 기운을 받아서 오후에도 열심히…… 하면 좋겠지만 점심을 먹고 나니 집에 가고 싶은 생각뿐이다.
---「24. 처음으로 칭찬을 받았다」중에서

오래 사용해서일까, 마우스도 고장이 났다. 최고급 무선 마우스를 사고 싶지만 평범한 유선마우스를 산다. 회사 경비를 사용해야 하고 그러면 팀장의 눈에 들어가니까. 공기처럼 있는 듯 없는 듯 최대한 오래 살아남는 것이 직장인의 센스인 것이다.
---「27. 직장인의 센스」중에서

오랜만에 야근이란 걸 해본다. 오늘은 법인카드로 저녁을 사 먹어야겠다.
---「36. 오랜만에 바쁜 날」중에서

직장인에게도 방학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 기간에 자기계발을 해서 실력을 향상시킬 수 있게. 숙제는 하지 않고 딴 길로 샐지도 모르지만.
---「53. 비 오는 날」중에서

과감하게 징검다리 휴일에 휴가를 썼다. 상사의 표정은 알 수 없다. 겉으로는 마음껏 휴가를 쓰라고 했으니까. 하지만 그날 휴가를 쓴 사람들은 얼마 되지 않는다. 얼굴에 철판을 깔지 않고서는 하루 쓰는 것도 눈치를 보는 것이다. 그래도 나는 떠나야겠다. 다시 매일매일을 견디기 위해.
---「55. 황금연휴를 앞두고」중에서

적성에 맞지 않는 일 따위, 이제는 그만둬도 되는 거 아닌가. 생각만 할 뿐이다. 나처럼 늙은 직원을 새 팀원으로 맞을 팀장이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으니까. 지금처럼 IT 인력들의 몸값이 치솟는 이때에 나는 IT인가, 아닌가. 월급날은 아직 멀었다.
---「69. 퇴사의 계절」중에서

가슴속에 사직서를 품지 않고 다니는 직장인은 없을 것이다. 누구나 그렇게 산다. 누구나 그렇게 살면서 누군가는 병이 나고,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버려진다. 그렇게 살지 않을 수도 있는데, 다르게 살 수도 있을 텐데, 알면서도 회사를 다닌다. 매일 아침 눈을 뜨고 아침을 대충 때우고, 지옥철에 시달려 가며 회사에 간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한곳에 앉아 있다가 지친 몸을 이끌고 퇴근길에 오른다.
---「82. 누구나 가슴속에 사직서 한 장쯤은 있잖아요」중에서

버티고 버티다 정 안 되면, 살려달라고 내 삶에 SOS를 치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오늘도 키보드에 두 손가락을 올려놓고, 감기는 눈을 떠가며 모니터를 쳐다본다. 새 프로젝트의 견적을 내고, 개발 회의에 참여하며, 정산과 전표 처리를 진행하고, 사은품으로 받은 물수건으로 괜스레 책상을 닦는다. 내일은 무사할 수 있도록.
---「100. 나는 늙은 웹기획자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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