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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는 화가 난다

그 여자는 화가 난다

: 국가 간 입양에 관한 고백

리뷰 총점9.4 리뷰 10건 | 판매지수 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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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7월 07일
쪽수, 무게, 크기 332쪽 | 384g | 130*200*30mm
ISBN13 9791191859256
ISBN10 1191859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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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자신이 수입품이었기에 화가 난다. 여자는 자신이 수출품이었기에 화가 난다. 여자는 어린이를 입양 보내는 국가는 물론 입양기관도 국가 간 입양을 통해 돈벌이를 한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 여자는 입양기관이 아이들을 해외로 보내는 일을 우선적으로 한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물론 어려움에 처한 아이들을 도와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들이 입양 보낼 아이들을 먼저 찾아나선다는 사실은 참을 수가 없다. 어려움에 처한 아이들을 돕기 위해서는 아이들을 태생적 문화와 부모에게서 무작정 분리하기보다 그 부모와 가정을 도울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먼저 찾아보아야 한다. [……] 여자는 오늘날 ‘아이들을 위해 부모를 찾아주는 일’보다 ‘부모들을 위해 아이를 찾아주는 일’이 더 우선된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바로 그 때문에 소위 ‘어린이 수집가’라는 말도 생겨나지 않았던가. 입양을 원하는 부모들이 입양을 보내려는 부모들보다 훨씬 많지 않았더라면, 입양기관이 어려운 환경에 있는 부모들에게 아이를 달라고 설득하기 위해 큰돈을 쓸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여자는 입양 보내기를 원하는 부모보다 입양을 받아들이기를 원하는 부모들이 더 많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 pp.18~19

여자는 자신이 화가 난다는 것을 알기에 화가 난다. 여자는 자신이 분노하고 있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것은 누가 굳이 말해주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이다.
--- p.90

여자는 입양인들의 삶이 성공적이라 간주하는 일반적 사고에 화가 난다. 여자는 입양인들을 동정 어린 눈으로 보는 일반적 시각에 화가 난다. 여자는 입양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여자에게 동정과 연민을 보내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여자는 여자가 입양되었기 때문에 부족함 없는 삶을 산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화가 난다. 여자는 여자가 입양되었기 때문에 감사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화가 난다. 여자는 여자가 입양되었기 때문에 기뻐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화가 난다.
--- p.178

여자는 자신이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에 화가 난다. 여자는 자신이 한국계 입양인인 동시에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에 화가 난다. 한국계 입양인이나 레즈비언 둘 중의 하나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던 것일까. 여자는 자신이 한국계 입양인이나 레즈비언 둘 중의 하나였다면 삶이 더 쉬웠을 것이라 믿는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난다. 정말 그럴까. 그것은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일이다. 여자는 자신이 레즈비언이기에 덴마크로 입양된 것이 행운이라는 말을 듣는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 p.203

여자는 자신이 트라우마에 시달린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그렇지 않다면 친부모와 함께 점심식사를 한 후, 여자가 이틀 연속 잠만 잤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여자는 식사를 한 후 바로 집으로 가서 침대에 누워 잤고, 한 차례 음식을 먹었던 것과 화장실에 갔던 것을 제외하고선 이틀 후에야 일어날 수 있었다. 통역을 맡았던 경희는 갑자기 다른 일이 생겨 그 자리에 올 수 없었다. 그 때문에 여자와 친부모는 침묵 속에서 삼계탕만 먹었다. 대화는 나누지 못했지만, 분위기는 꽤 편안했다. 그럼에도 여자는 집에 돌아온 직후 말할 수 없는 피로감을 느꼈다. 여자가 왜 그렇게 피곤했는지는 아직도 설명할 길이 없다. 그 원인 모를 피곤함은 여자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몸속에 자리를 잡았던 것이다.
--- p.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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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이여, 자 이제, 우리의 진실을 마주할 준비를 하라. 우리가 전 세계에 버린 아이들이 돌아왔다. 지식인, 시인, 예술가, 노마드 소수자, 저항하는 주체가 되어 모국어도 없이 마이크를 들고 돌아왔다. 한국인들이여, 우리가 신봉하는 국가주의, 민족주의, 가족주의, 혈연주의, 순결주의, 가부장제가 어떻게 우리의 아이들을 비참의 고통에 몰아넣었는지 바라보라. 이산된 자아와 역사 없는 이방인이 된 그들의 비명을 똑똑히 들어보라. 그리고 감내하라. 입양 보낸 그들의 목구멍에서 쏟아지는 분노에 찬 비트를. 그 비트에 얹은 세상에서 제일 긴 여자 힙합 아티스트의 래핑을. 디아스포라 문학의 정점에서 다성악으로 터지는 그 목소리를. 그리하여 우리는 통곡하라. 그 여자의 입에서 나오는 불길에 온몸을 데이면서.

나는 마야의 낭독을 서울에서 한 번, 코펜하겐에서 한 번 들었다. 그리고 마야의 낭독을 들으며 울음과 웃음이 섞인 이상한 목소리로 화답하는 두 나라의 청중을 보았다. 나는 출생국과 입양국, 두 공동체의 비밀과 거짓말을 들킨 사람들의 미묘한 수치가 이런 것인가 생각했다. 우리가 신봉하는 순결한 신부와 정상적인 가족은 원래 없는 것에 이름을 붙인 것이 아닌가. 순결이 어디 있고, 정상이 어디 있단 말인가. 우리는 왜 없는 것을 신봉하여 우리가 낳은 아이를 키우지 않았는가. 왜 장애아, 여자아이, 혼혈아, 비혼모의 아이들을 우선 팔아먹었는가. 그 아이들이 자신마저 미워하게끔 했는가. 그 아이들이 자신마저 믿을 수 없게끔 했는가. 정신병자로 만들고 자살하게 만들었는가. 그러고서도 지금의 한국이 국민국가라고 할 수 있는가. 우리는 왜 가족주의 휘하에서 아이를 유기하는 폭력을 적극 지원하는 국가를 지금까지 그냥 내버려두었는가. 한국인들이여, 마야가 창조한, 이 영원히 돌고 다시 돌아오는 고백과 절규의 라임과 펀치라인을 들어보라! 우리는 이 노래를 세이렌의 음성처럼 뱃전에 몸을 묶고 들어야 한다.
- 김혜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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