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 사회 전반에 ‘핵심역량’이 핵심키워드로 부상하였다. 그런데 핵심역량을 둘러싼 논의는 여러 경제포럼 및 학술회의에서 도출된 결과를 토대로 해외에서 먼저 시작되었다. 이 논의가 이루어지게 된 배경에는 미래사회에 부응하는 핵심역량을 발굴하여 활용하자는 산업계의 합의가 있다. 역량 개념이 본격적으로 주목을 받게 된 계기는 1997년부터 시작된 OECD 프로젝트 ??핵심역량의 정의와 선별??(Defining and Selecting Key Competencies, 약칭 ??DeSeCo??)과 그 결과를 담은 연구보고서였다(OECD, 2005). 이 연구보고서는 역량 측정 확대를 위한 틀을 제시한 것으로 제도권 교육에서 역량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켰으며(소경희, 2007), 이후에도 교육 부문에서 역량 논의는 영·미권 및 OECD 전(全)회원국으로 이어졌다. [DeSeCo] 기획안을 바탕으로 OECD 회원국은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를 도입하였다. 이것은 의무교육이 끝날 무렵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읽기, 수학, 자연과학, 문제해결 영역에서 지식과 능력을 비교하는 평가체계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해외에서 기획된 이 역량 개념을 수용하여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와 교육부에서 국내 상황을 반영하여 핵심역량을 개발하였다. 그리고 2010년 이후, 전경련과 교육부 지침에 따라 핵심역량을 교육 부문에서도 수용하기 시작하였다. 우리나라 대학들은 이에 따라 수년 전부터 전경련과 교육부가 설정한 핵심역량을 참조로 각 대학의 특성에 부합한 역량을 개념화하여 교육과정에 적용하고 있다. 그런데 핵심역량 개념이 부각되기 전부터 이미 대학들은 각 대학 고유의 건학 이념과 특성, 비전을 상징하는 인재상을 표방하였다. 국내 대학이 표방한 교육목표를 개략적으로 분석하여 다섯 개의 교육목표로 집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기초학습 능력과 인문학적 소양을 쌓고 비판적으로 사유할 줄 아는 인식능력으로, 대학교육을 받은 지성인이라면 갖춰야 할 기본능력을 강조하고 있다. 두 번째, 창의적·통섭적 사고력, 즉 창의성을 토대로 지식의 통합적 이해 및 적용과 해석 능력, 융합적 역량도 주창하고 있다. 세 번째, 인간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도덕적 인성, 올바른 인품을 갖추는 고전교육의 이상도 간과할 수 없는 요인으로 강조하고 있다. 특히 종교계 대학은 건학 이념인 신앙 윤리를 봉사와 헌신의 교육목표로 주창함으로써 올바른 인격 형성의 요소로 강조하고 있다. 네 번째, 세계화 시대에 부응하는 글로벌 역량, 적극적인 능동성과 공동체적 정신, 다문화성 이해도 공통의 핵심 요인으로 부각하고 있는데, 글로벌적 감각과 문화적 다양성을 이해하는 감수성 등이 이에 포함된다. 마지막으로 지식정보화 사회에 필요한 전문인력 양성도 중요한 교육목표로 설정하였다.
주지하다시피 국내 대학들은 혁신의 압박 속에 절치부심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재정지원을 매개로 한 정부 주도의 대학혁신 정책은 큰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핵심역량을 교육과정에 직접 적용하려는 시도는 정부(교육부) 주도의 대학지원사업이 결정적이었다. 즉 핵심역량을 고등교육의 맥락에서 접합·응용하는 과정에서 대학 스스로의 교육철학에 기인한 것이기보다는 재정지원사업 선정이라는 절박함이 크게 작용한 것이다. 현재 〈대학기본역량진단사업〉에서도 이 기조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로 인해 대학들은 대학 고유의 기존 교육목표를 표방하고 있음에도 핵심역량 진단도구를 개발하는 추세가 이어지고 있으며, 심지어 교육부가 직접 한국직업능력개발원과 함께 〈대학생 핵심역량진단〉을 준거로 제시하였다.
〈대학생 핵심역량진단〉은 “대학생들의 핵심역량 수준을 파악하여 진로개발을 지원할 뿐만 아니라 대학의 교육역량 강화 지원”을 목적으로 한 진단도구인데, 〈대학생 핵심역량진단〉에서 규정한 핵심역량은 “직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데 공통적으로 요구되는 지식, 기술, 태도”로 철저히 기업과 경영 논리에 부합한 역량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렇지만 지난 10년 가까이 〈대학자율역량강화지원사업〉(ACE 사업)과 〈대학생 핵심역량진단〉, 〈대학기본역량진단사업〉 등 정부 주도로 추진한 핵심역량 중심의 교육과정 개편이 과연 고등교육과 대학 교양교육의 내실화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을지 교육 전문가들과 인문학자들 사이에서는 논란이 분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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