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많고 많은 나라 중 일본이고 도쿄였냐고 묻는다면 확실히 대답할 수는 없다. 그저 도쿄가 좋았다. 좋아하는 것에 이유는 없다는 말을 실감하며 5년간 도쿄에 가고 또 가고 살다가 돌아오고 다시 가고를 반복했다. 그 시간은 나 자신도 모르는 그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한 긴 여정이었는지도 모른다. 나에게 도쿄는 무엇이든 그릴 수 있는 하얀 도화지 같으면서도 찬란한 빛이 가득한 하얀 하늘을 닮아있었다. 도쿄에서 학생과 직장인으로 살며 나의 젊은 날을 마음껏 그렸고 매 순간이 너무나 행복하고 벅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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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가 필요한 도시, 새로움과 익숙함이 공존하는 도시, 부족함이 없는 도시. 변덕스러운 섬나라 날씨가 마음을 흔들고 벚꽃과 함께 내리는 눈은 꿈처럼 몽환적이다. 옛 아날로그 감성에 그리움과 반가움이 교차하는가 하면 세계를 선도하는 트렌디함은 도심 속 모험을 떠나게 한다. 개성 뚜렷한 도시들을 한데 모아 놓은 거대 도시 같으면서도 곳곳에 아기자기함이 묻어있는 감성 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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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도쿄를 보고 있으니 내 삶의 무대였던 도쿄에서 보냈던 지난날이 떠오르며 수많은 기억이 머릿속을 스쳐 갔다. 치열하게 임했던 매 순간순간, 기쁨에 설레었던 마음, 남몰래 흘렸던 눈물, 때로는 짐스러웠던 사람들의 기대. 시간이 지나서야 비로소 알 수 있는 것이 있다. 나중에 내 인생을 돌아볼 때 이 도쿄의 야경처럼 아름다웠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직은 답을 내릴 수 없다. 하지만 믿는다. 열심히 살아가는 지금의 하루하루가 언젠가는 내 인생을 아름답게 장식하는 빛으로 반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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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약 없는 하루하루를 보내며 바쁘게 지내던 어느 여름날, 도쿄대학교로부터 입학 허가 메일을 받았다. 합격 통지서를 받았을 때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기쁘면서도 그동안 고생했던 시간이 생각나 눈물이 났다. 생전 처음 써보는 연구계획서, 소논문, 어중간한 일본어 실력 등 채워 나가야 할 과제가 산 같이 높게만 느껴졌다. 무엇보다 부모님은 물론이고 나조차 확신할 수 없는 내 막연한 미래가 견디기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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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생과 회사원을 거쳐 도쿄에서 보낸 5년. 도쿄에서 느꼈던 이방인의 감각, 홀로서기의 무게가 없었다면 나는 언제까지고 부모님 그늘 밑 어른아이에 머물고 있을지 모른다. 멋있는 어른은 도대체 언제 될 수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자신을 어른이라 착각했던 철없던 그 시절 신주쿠에서 보냈던 아름다웠던 날도 잠들지 못했던 수많은 밤도 지금은 그립다. 달그락 소리를 내며 철도를 달리는 JR선 지하철. 그 위로 서울보다 더 진한 남색 밤이 드리우는 신주쿠는 유독 외롭고 낭만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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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세상으로 나와 하고 싶은 것 하며 자유롭게 살고 있지만,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대가를 지불해야 했다. 한 푼 한 푼 아끼는 절약 생활이 몸에 배고 직장에서는 남의 돈을 다루며 단돈 1엔에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일을 겪었다. 내 인생에서 그 어떤 때보다 돈의 무게를 느낀 시간이었다. 너무나도 절실히 그것을 가르쳐준 곳이 긴자였기에 긴자의 화려함이 때로 서글픔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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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같은 하루가 끝나고 지친 몸을 이끌고 나오면 보이는 반짝이는 도쿄 타워가 나를 위해 빛나주는 것 같았고 잠시 쉬고 싶을 때 산책로가 되는 롯폰기 힐스의 넓은 광장, 듣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워터 펜스 물소리, 한 끼 해결하러 들어간 라멘집에서 미슐랭 혹은 유명 할리우드 스타의 사인을 발견하는 소소한 즐거움, 작고 아름다운 모리 정원에서 점심 후 마시는 커피 한잔, 롯폰기 숨은 고수의 맛집에서 열리는 회식, 회사 앞에서 들려오는 관광객의 행복한 웃음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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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에서 겪은 열병 같은 사랑은 내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은 나와 다르다는 것, 나 자신을 사랑해야 다른 사람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다는 것, 진심과 진심이 전해져 스며드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 사랑이 만약 눈에 보인다면 황혼 녘 바다에 비치는 와인 빛깔일지 모른다. 흔들리는 마음, 사람을 취하게 하는 향긋한 내음, 씁쓸하고 달기도 한 감각, 성숙할수록 더욱 깊은 향을 내는 것. 오다이바에 있노라면 사랑이 바다의 물결과 함께 넘실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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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쿠사에 있다 보면 가끔 내가 도쿄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리게 된다. 아사쿠사에서 만난 사람들처럼 작은 것 하나에도 설레고 기뻐하는, 여행 같은 매일을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여행을 사랑해서 도쿄에 살면서도 다시 여행의 설렘을 찾는 나를 보며 누구도 온전히 이루지 못할 여행 같은 일상이란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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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탈의 사인이 올 때가 있다. 달콤한 주말 오후 방안을 가득 채우는 햇살을 느끼며 이불 속을 뒹굴뒹굴해 보지만, 도저히 가만있으면 안 될 것 같은 의무감 같은 것이 생기는 날, 하지만 친구들을 불러 시끌벅적하게 보내고 싶지는 않은 날. 그럴 때 답은 네즈 미술관이다. 선택한 사람만 들어오는 제한된 공간, 예술 작품이 주는 잔잔한 감동, 자연의 평화로움. 이 모든 것을 만끽할 수 있는 네즈 미술관은 단번에 내 일상을 특별하게 만드는 마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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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노카시라 공원 내에도 물론 카페가 있긴 하지만, 카페를 찾아 이 넓은 공원 부지를 돌아다니다 보면 금방 지쳐버릴지 모른다. 공원 입구의 상점가에 들러 미리 샌드위치나 커피를 사서 오는 것이 모두가 따라 하는 비공식 룰이다. 이노카시라 공원을 감상하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싶다면 이노카시라 공원 출구 쪽의 카페 거리를 추천한다. 이노카시라 공원을 산책한 뒤 마시는 커피 한잔은 더 이상 어떤 것도 바라지 않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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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언어를 습득했을 때 한국에서는 3배, 외국에서는 5배 이상의 기회가 열린다고 생각한다. 기회가 많으면 내가 원하는 것을 고를 수 있는 행운까지 주어진다. 우치다 다쓰루는 그의 저서 『어떤 글이 살아남는가』에서 외국어는 애초에 자기를 표현하기 위해 배우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풍요롭게 하기 위해서 배우는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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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서 가장 빼놓을 수 없는 3대 요소는 먹는 것, 보는 것, 그리고 감동이다. 도쿄는 전 세계에서 미슐랭 3스타가 가장 많은 도시다.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도쿄에 간다고 할 정도로 맛 기행에 최적화 되어있다늘 지나치는 회사 지하의 라멘집이, 퇴근길에 들린 돈카츠 가게가 세계적 미식가들 사이에서 인정받은 곳이라면? 이런 경험이 가능한 곳이 도쿄다.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최고의 미식 여행을 떠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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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를 논할 때 둘째가라면 서러운 곳 역시 도쿄다. 도쿄가 커피로 유명하다고? 의문이 들 수 있지만, 커피에 진심인 한국 사람들 사이에서는 ‘제대로 된 커피를 맛보려면 일본으로 가야 한다’라는 말이 있다. 우동, 스시가 아닌 커피를 마시기 위해 도쿄에 가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다. 일본은 에도 시대(1603~1867) 때 처음 커피가 전파되어 메이지 시대(1868~1912) 때부터 커피와 디저트 문화가 발달하기 시작했다. 오랜 역사는 물론 일본 특유의 마니아 정신이 녹아있는 도쿄는 커피 애호가라면 질릴 틈 없는 최고의 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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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창하고 맑은 하늘, 내리쬐는 쨍쨍한 햇살, 일렁이는 파도에 온몸을 맡긴 서퍼들, 언제까지고 듣고 싶은 바닷소리…. 모든 것이 완벽했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있으니 저절로 ‘청춘’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세계 최고의 브런치라 불릴 만큼 맛있는 빌즈의 음식도 이곳에서는 주연이 아니었다. 가마쿠라를 수식하는 멋진 표현은 세상에 많겠지만, 내가 느낀 가마쿠라는 조용한 흥분이 느껴지는 ‘청춘의 마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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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해저에서 온천이 솟아나 물고기가 죽을 정도로 바다가 뜨거워서 이름에 뜨거운 열(熱) 자가 붙었다는 아타미(熱海). 시간을 초월한 정취와 감성이 매력적인 온천 마을이다. 1500년이 넘는 긴 역사 동안 도쿄 사람들의 신혼여행지와 휴양지로 사랑받았고 산, 바다, 온천 등 천혜의 자연환경을 모두 갖추고 있다. 여름에는 해수욕을 즐기고 난 뒤 료칸에서 아타미 불꽃놀이를 감상하고, 겨울에는 피부 미용에 좋기로 유명한 아타미 온천을 즐긴다. 가족, 연인, 친구, 누구와 가도 좋은 곳, 아타미를 알고 지체할 이유는 없었다. 아직 채 겨울이 끝나지 않은 2월과 새로움이 시작되는 3월 사이, ‘뜨거운 바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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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를 끊고 안으로 들어가서 본 내부는 더 경이로웠다. 정성스럽게 다듬어진 일본식 정원, 일본 전통 양식과 유럽 양식이 혼재된 가구, 형형색색의 타일, 옛 시대의 흔적이 그대로 새겨진 유리, 이국적인 코발트블루 색의 벽지. 이제껏 본 적이 없는 새로운 공간이었다. 마치 동서양의 기나긴 시간이 얽히고설켜 그 시간의 매듭을 풀면 몇백 년의 시간이 눈앞에서 풀어헤쳐질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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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거침없이 도전해야 할 20대에 안정적인 회사원을 지망했다. 주어진 일을 하고 돈을 받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무난한 길이라고 배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 다녀본 회사 생활은 하루하루가 아슬아슬하고 위태로웠다. 조금 더 나은 삶을 위해 일본으로 건너가 취업도 하고 만족스러운 회사로 이직도 해봤지만, 회사라는 틀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너무나 제한적이었다. 무엇을 위해 그토록 열심히 공부하고 내 청춘을 투자한 것인지, 정말 이 답답한 현실 끝에 낙원까지는 바라지 않아도 ‘보람’은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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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외국어 배우는 것을 좋아하고 사람을 좋아하면서도 사람에게 예민하게 반응하는 기질,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하고 반복되는 일에 금방 흥미를 잃어버리는 성격, 한곳에 오래 얽매이지 못하는 자유로움. 복잡하고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나 자신을 이리저리 생각하고 끄집어내 보니 종합적으로 프리랜서가 나와 가장 어울릴 것 같다는 답이 나왔다. 그리고 프리랜서로 살기 위해서는 ‘기술’이 필요했다. 내가 가진 기술이 없는 것 같은데… 어쩌지? 있었다! 중학생 때부터 단 하루도 놓지 않고 계속해 온 그것, 일본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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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갈 길이 멀고 앞으로 어떤 어려움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지금은 20대처럼 불안함과 조바심으로 점철된 시간을 보내고 있지 않다. 어떤 어려움도 뒤돌아보면 나에게 고마운 자양분이 되고 하루하루 열심히 살다 보면 좋은 결과는 물론 행운까지 주어진다는 인생의 진리도 안다. 무엇보다 나에게 넓은 세상을 보여준, 더 큰 꿈을 갖게 해준 도쿄에서의 시간이 있기에 앞으로의 나의 미래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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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는 나를 도와주는 선임과 동료들이 있고 인수인계를 해주는 선배가 한국인인 행운도 꽤 많다. 그리고 무엇보다 외국어는 부딪히면서 는다. 일하면서 자연스럽게 느는 외국어의 질과 양은 한국에서 회사에 다니며 일본어를 공부할 때와는 비교할 수조차 없다. 일본 취업을 위한 일본어 수준은 JLPT N1에 합격하는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실제 내 경우 일본에 취업하고 처음 일본에 갔을 때 일본인과의 대화는 크게 문제가 없었지만 읽고 쓰기는 딱 JLPT N1 턱걸이 수준에 NHK 뉴스를 봐도 안 들리는 말이 너무 많아서 대충 이해하고 넘어갈 정도였다. 그래도 일을 하는 데 큰 문제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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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를 내어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면 항해는 시작된다.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망망대해를 표류할지라도 인생이라는 바람은 나를 생각지도 못한 곳으로 데려가 줄 것이다. 서두르거나 조급해하지 않고 가다 보면 보이는 새로운 풍경을 앞으로도 그렇게 즐기며 기대하며 살아가고 싶다. 끝까지 자신을 위한 여행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기적’ 그리고 ‘기회’라는 선물은 분명 또 나에게 찾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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