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날 때부터 차별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삶 가운데 어떻게 행동하느냐로 판가름합니다. 어디서 태어났는지보다 얼마나 열심히 사는지가 중요합니다. 모든 사람이 나와 다름없이 평등합니다.
--- p.25
작은 존재와 생명을 귀중히 여기고 아끼면 세상을 맑고 향기롭게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 p.43
일상 속에서 바르게 자비를 실천하여 이웃과 함께 복과 덕을 나눕시다. 정법과 정의는 위대하며 영원하다는 것을 잊지 말고, 지금의 인연과 자신의 본분을 소중히 하여 부단히 정진해야 합니다.
--- p.52
온 나라에 백화가 만발한 봄날입니다. 중생은 업력(業力)으로 고해(苦海)를 살아가고, 불보살은 원력으로 지금 여기에 불국토를 장엄하십니다. 물러나지 않는 서원과 실천으로 불보살은 자신과 타인, 개인과 사회를 함께 완성시켜나갑니다.
--- p.56
전법 선언으로 말미암아 부처님과 그 제자들은 한없이 자신을 낮추며 사람들을 고통에서 건너게 해 주는 다리가 되었습니다. 조주선사는 작고 허름한 돌다리라 하더라도 마음으로 보는 돌다리는 크고 튼튼해 모든 중생을 건너게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 p.60
어느 시인은 대추 한 알 속에 태풍 몇 개, 천둥 몇 개, 땡볕과 초승달 몇 개까지 담겼다고 노래했습니다. 대추나무가 뿌리를 내린 흙, 물, 햇빛의 역사까지 살피면 온 우주의 시공간이 대추 한 알 속에 함축됩니다. 대추 한 알 뿐이겠습니까? 모든 존재가 그 자체로 온 우주 공덕으로 화현된 결실입니다.
--- p.66
단절과 소통 부재의 시대입니다. 대립과 갈등의 장벽은 더욱 두터워지고 독선과 불통으로 시작된 극한 대립은 멈출 줄 모릅니다.걸음을 잠시 멈추고 주변을 살펴야 할 때입니다. 자신을 돌아볼 시간을 가지고 있었는지 타인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는지 돌아봐야 할 때입니다. 아집과 욕심은 내려놓고 청정한 수행과 성찰을 통해 우리 모두 부처님의 자비가 현현한 시대를 만들어 갑시다.
--- p.77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지금 이 자리에서부터 분별하는 마음, 탐욕과 성냄의 어리석은 마음은 없는지 되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 p.83
모든 것을 갖추었음에도 결국 하나도 가져가지 못하고 오직 지은 업만 따라갈 뿐. 집착을 버리고 진정한 행복한 길이 무엇인지 차분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 p.104
이 세상은 모두가 하나의 인드라망으로 연결되어 있고 나에 의해 매 순간 새롭게 창조됩니다. 그러니 우리 스스로 부처님처럼 마음을 쓰고, 부처님처럼 말하고, 부처님처럼 행동하면 온 세상이 부처님으로 가득한 화엄세계가 성취될 것입니다.
--- p.107
거리는 멀어져도 마음은 가까워지라는 말처럼, 상대가 전하는 배려심을 가슴 깊이 이해하고 동행한다면 우리를 둘러싼 장벽은 단지 허상일 뿐입니다.
--- p.120
화합은 우리를 불필요한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하고 편안함을 만드는 출발점이요, 종착점입니다.
--- p.136
통도사 극락암의 경봉(鏡峰, 1892~1982) 노스님께서 늘 하시던 말씀이 있습니다.
“한생 안 난 셈치고 수행하라!”
우리 신도님들은 정말 갖은 고생과 어려움 속에 삶을 꾸리고 계십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누굴 위해 수행하시나요?
--- p.184
선사의 가르침을 분명히 해서 참선을 하든, 염불을 하든, 간경을 하든, 또 주력을 하든 모든 것이 다 똑같은 부처님의 성불로 가는 방편이라 생각하시길 바랍니다.
--- p.179
순례는 어떤 목적으로 하는 것입니까? 바로 ‘기도’입니다. 이 점을 명심해야만 합니다.
--- p.199
내가 바로 우주를 창조하는 당체(當體)라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거기에서 대승불교가 싹 트고, 남을 위하는 보살불교가 구현되는 것입니다.
--- p.208
잘살기 위한 조건 중 가장 중요한 건 ‘남과 비교하지 않는 것’입니다. 잘살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은 ‘비교’하기 때문에 생기는 겁니다.
--- p.210
『주역』에 ‘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家 必有餘慶)’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남을 돕고 베푸는 집안에는 반드시 남은 경사가 있다’, 즉 사필귀정(事必歸正)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보시하고 베푸는 삶을 잠깐잠깐 잊어버리곤 합니다.
--- p.219
그중 하나, 아주 소소영영(昭昭靈靈)한 물건이 있으니 이것이 바로 ‘담연불수어생사(湛然不隨於生死)’라, 생사에 빠지지 않는 불성(佛性)인 거예요.
--- p.2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