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까지 역사상 무역을 무기화하여 가장 강력한 무역전쟁을 벌이고 있는 나라들은 미국과 중국이다. 오바마 때부터 격화되기 시작한 미중 무역 갈등은 오랜 기간 겉으로 드러난 사건도 있고, 물밑에 숨어 있던 사건도 있었지만 충분히 예견되었다. 부드러운 스타일의 오바마 대통령이 시진핑 주석에게 미국에 대한 기술 해킹을 중단하라고 강력하게 요구한 적이 있었지만, 중국은 이를 무시했다. 그러나 트럼프가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미국은 국가안보를 명분으로 한 관세 카드를 꺼내 들었다. 국가안보를 이유로 수입을 제한할 수 있도록 한 무역확장법 232조를 근거로 2018년부터 철강과 알루미늄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이 시행되었다. 자유세계와의 경제적 관계를 강화하고 공산주의경제의 침투를 막기 위해 1962년에 제정된 무역확장법 232조는 1995년 WTO 발족 이후 사실상 사문화됐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22년 만에 부활시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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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WTO 가입 과정은 다른 자본주의 국가와는 달리 순탄치 않았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이 자본주의를 기본 이념으로 하는 WTO에 가입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었기 때문이다. 중국은 덩샤오핑이 개혁개방 노선을 채택한 이후 IMF, 세계은행(World Bank), 아시아개발은행 ADB 등 국제경제 기구에 잇달아 가입했으며, 1986년에는 WTO의 모태인 GATT에 가입 신청을 했다. 하지만 중국 경제의 구조적인 문제들을 포함한 내부 이슈와 함께, 가장 중요하게는 미중 관계의 굴곡 속에서 1995년 1월 WTO 체제가 출범할 때까지도 중국은 참여하지 못했다. 미국이 정치적(인권, 대만 문제 등), 경제적(지식재산권 보호, 미국의 대중 무역적자 등) 문제를 이유로 가입에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다. 1999년 11월 15일 미중 양국 간 협상이 타결되었고, 2000년 5월에는 EU와 양자 협상이 완료되었으며, 2000년 5월 24일과 9월 19일에 각각 미국 하원과 상원이 ‘항구적정상무역관계(PNTR)’를 중국에 부여하기로 결정했다. 그 후에도 약 1년 가까이 미중 양국의 현안으로 남아 있던 농업 보조금 문제와 보험시장 개방 문제가 2001년 6월 9일에 완전히 타결되었다. 이후 2001년 11월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제4차 WTO 각료회의에서 중국의 WTO 가입 의정서를 채택했다. 이때 중국은 WTO 가입을 위한 여러 가지 조건의 이행과, WTO의 기본 원칙을 준수하기로 약속했다. 이 원칙의 준수 약속은 현재까지 미중 무역전쟁 명분 싸움의 주된 의제가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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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팬데믹은 자국 내에 존재하는 제조업체의 중요성을 절실하게 깨닫게 했다. 우선 마스크, 진단 키트, 산소호흡기 같은 코로나19에 대응할 만한 의료 제품을 자국에서 생산할 수 있는지 여부가 제대로 된 코로나19 대응책을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의외로 미국은 이런 점에서 실패했다. 반면에 한국은 코로나19 대응 시 갖추어야 할 많은 요소들을 생산할 수 있는 기업들이 국내에 있었고, 그래서 비교적 코로나19 확산 억제책을 효과적으로 실행했다. 이를 계기로 당시 문재인 정부는 ‘안전한 한국’을 부각시켜 해외로 나간 기업들을 국내로 유치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리쇼어링 경쟁에 나서겠다는 의미다. 하지만 경쟁국들이 만만찮다. 미국은 리쇼어링을 ‘안보 사안’으로 인식해 밀어붙일 태세다. 베트남 등 동남아 신흥국들도 유리한 위치에 서 있다. 반면, 한국은 높은 법인세율과 급격히 인상된 최저임금 탓에 경쟁력이 낮은 편이다. 리쇼어링Reshoring이란 해외에 있던 생산시설을 다시 자국으로 옮기는 현상을 일컫는데, 해외로 진출하는 오프쇼어링 Off-shoring의 반대 개념이다. 이미 한국은 오래전에 해외 진출 기업의 리쇼어링을 추진했었다. 하지만 실패했다. 그런데 최근 코로나19로 인한 공급망 차단으로 생산 차질이 발생함에 따라 스마트팩토리를 통한 리쇼어링이 부각되고 있다.
--- p.164~165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세계경제를 지배하는 규칙은 ESG가 될 것이다. 1347년 유럽을 강타한 흑사병이 르네상스를 낳았듯이, 이번 팬데믹은 디지털 기반의 ESG 경제를 창출했다. 팬데믹 극복을 위해 재정지출을 급속히 증가시킴으로써 전 세계 부채 규모는 GDP 규모를 초과했다. 고도성장이 부채 증가에 따른 부작용보다 더 큰 가치를 창출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그러나 인류는 고도성장을 멈추고 저성장 시대로 접어들 전망이다. 다국적 회계감사 기업인 PwC(Price water house Coopers)의 2050년 세계경제 전망 보고서에 의하면, 2050년까지 세계경제는 연평균 2.5%의 성장률을 기록한다. 국가별로는 신흥국 성장률(3.5%)이 선진국 성장률(1.6%)을 앞지르고 전체 GDP의 50%를 차지한다. 저성장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 p.314~315
바이든 대통령이 인도태평양 국가 중 한국을 제일 먼저 방한한 이유는 한국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국은 반도체, 배터리, 무선통신, 디스플레이, 수소에너지 등에서 세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으며, 미국의 관심 분야인 바이오, 인공지능, 양자컴퓨팅, 우주산업, 원자력, 로봇공학 등에서도 충분한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 미국은 동맹 중심의 공급망을 구성하기 위해 한국의 기술과 노하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미국은 반도체, 배터리, 핵심 광물 등의 공동 개발과 공동 대응을 주문했다. 기술의 변화가 빠르고 불확실성과 변동성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어떤 국가도 독립적으로 완전한 공급망을 구축할 수 없다. 글로벌 공급망의 회복력과 다양성을 강화하기 위해 동맹 중심의 공급망 구축 프로그램에 참여해야 한다. 공급망동맹은 경제안보동맹이다. 동맹과의 기술개발은 글로벌 스탠더드로 가는 길이다.
--- p.378~3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