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겐 그저 오늘이 있을 뿐이다. 어제란 이미 지나가버렸고 내일이란 아직 오지 않았다.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에겐 그저 오늘 하루의 일상이 있을 뿐이다.
세상이 아무리 위험해졌다고 해도, 세상이 갑자기 우리를 삼키려 든다고 해도,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은 어떻게든 오늘 하루를 이어갈 뿐이다.
마스크 한 장. 손소독제 한 움큼. 이 작은 방패들에 의지하며 꾸역꾸역 살아간다. 그렇게 오늘 하루를 지켜갈 뿐이다. ---「Essay 1. 꾸역꾸역」중에서
우리 모두는 시간을 따라 흘러간다. 언젠가 아이로 시작했던 것처럼 언젠가는 노인이 될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우리들은 자신의 시간에 대해서는 좀 관대하기 마련이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의 세월은 눈에 확 들어오지만 매일 거울에서 보는 나의 세월에는 후한 편이다.
어쩌면 자기 보호 본능일지도 모르겠다. 자신이 늙어간다는 것을 매번 느끼는 것보다는 어느 시점에서 세월을 잠시 멈춰두는 것도 하루하루 힘을 내어 꾸역꾸역 살아가는 데에는 나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Essay 8. 요양원」중에서
요즘 집에서 목소리를 높이며 싸우는 일이 있다면 열에 아홉? 아니 거의 열의 열은 돈이 문제다. 벌이가 늘 부족한 것도 문제지만 돈이 들어오는 날짜가 고르지 못한 것도 문제여서 그달그달 빠듯하게 맞춰 나가고는 있지만 빚이 꾸준하게 늘어가는 것이 불안하다.
영화 내용은 잊었지만, 제목만큼은 선명한 것으로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가 떠오른다. 돈 때문에 싸우는 것보다 더 서글픈 것은 그렇게 싸워서 생긴 앙금이 우리를 잠식하는 것이다. 돈 얼마 때문에 사이가 조금씩 멀어지고 나중에 돈이 많아지더라도 그 사이를 메우지 못할까 봐 두렵다. ---「Essay 15. 돈」중에서
사진의 쓰임새가 달라졌다. 예전에는 기억을 남기고 되새기는 역할이었다면 요즘은 바로 이 순간을 공유하는 수단이 되었다. 말로 하는 것보다 사진 한 장을 보내는 것이 빠르고 지금 느낀 감정을 바로 나눌 수 있으니 나쁘지 않다. 오늘은 내가 앨범 속에서 아버지 사진을 찾고, 언젠가는 내 아이가 클라우드에서 내 사진을 찾고, 세상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Essay 19. 사진」중에서
가족이란 서로에게 특별하지만 그 특별함을 서로에게 강요하기 시작한다면 타인의 시선보다 더 지독한 무언가가 되어버린다. 적어도 집에서는 평화롭다면 좋겠다. 적어도 가족끼리는 타인의 시선에서 해방되면 좋겠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질병이 온 세계에 퍼져 나가고 거리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타인을 경계하던 시절을 지나니 가족이라는 특별한 타인이 새삼 애틋하게 다가온다. 기댈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지금 이 순간을 함께 지나는 것만으로도 의지가 된다. 그렇게 오늘 하루를 견디고 그렇게 또 다른 하루를 기다린다. ---「Essay 24. 가족」중에서
때때로 《비빔툰》 ‘시즌2’를 보시고는 어떤 장면에서 공감했다고 연락을 주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럴 때면 만화가로서 뿌듯해진다고 할까요? 예전에 《비빔툰》 ‘시즌1’을 연재할 때도 그랬지만 저는 만화로 사람들을 깨우치고 이끈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제게 만화란 사람들과 함께 걸어가며 두런두런 나누는 이야기 같은 거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