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원하면 돼. 하지만 무언가를 진심으로 원한다는 건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야. 시간이 걸릴지도 몰라. 그사이 많은 것을 버려야 할지도 몰라. 너에게 소중한 것을. 그래도 포기하지 마. 아무리 오랜 시간이 걸려도, 도시가 사라질 일은 없으니까.” --- p.15
우리는 연인 사이였을까? 간단하게 그런 이름을 붙여도 될까? 나는 알 수 없다. 어쨌거나 나와 너는 적어도 그 시기, 일 년 가까운 시간 동안 서로의 마음을 티 없이 순수하게 한데 맺고 있었다. 이윽고 둘만의 특별한 비밀 세계를 만들어내고 함께 나누게 되었다―높은 벽에 둘러싸인 신비로운 도시를. --- p.33
너에게 꿈이란 현실세계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들과 거의 동급이었고, 간단히 잊히거나 지워지는 것이 아니었다. 꿈은 너에게 많은 것을 전달해주는, 귀중한 마음의 수원水源 같은 것이었다. --- p.43
어쩌면 그것이 영겁이 지닌 한 가지 문제점인지도 모른다. 지금부터 어디로 향하면 좋을지 모른다는 것. 그러나 영겁을 추구하지 않는 사랑에 어느 정도의 가치가 있단 말인가? --- p.80
“가끔 내가 무언가의, 누군가의 그림자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 너는 중요한 비밀을 털어놓듯 말한다. “여기 있는 나한테는 실체 같은 게 없고, 내 실체는 다른 어딘가에 있어. 지금 여기 있는 나는 언뜻 나처럼 보여도 실은 바닥이나 벽에 비친 그림자일 뿐…… 그런 생각을 지울 수 없어.” --- p.111
시간은 몹시 느릿느릿하게, 그래도 결코 뒷걸음치지 않고 내 안을 통과해 갔다. 일 분에 정확히 일 분씩, 한 시간에 정확히 한 시간씩. 느리게 나아갈지언정 거꾸로 가는 법은 없다. 그것이 그때 내가 몸으로 깨달은 사실이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때로는 그 당연한 것에 무엇보다도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다. --- p.137
우리는 자신들이 서 있는 견고한 지면 아래, 땅속 미로를 흐르는 비밀에 싸인 암흑의 강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그것을 실제로 본 자는, 그것을 보고 이쪽으로 다시 돌아온 자는 과연 얼마나 될까? --- p.223
나는 그 슬픔을 무척 잘 기억했다. 말로 설명할 길 없는, 또한 시간과 더불어 사라지지도 않는 종류의 깊은 슬픔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상처를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가만히 남기고 가는 슬픔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대체 어떻게 다뤄야 할까? --- p.280
“지금 여기서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오직 하나―믿는 마음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무언가를 강하고 깊게 믿을 수 있으면 나아갈 길은 절로 뚜렷해집니다. 그럼으로써 이다음에 올 격렬한 낙하를 막을 수 있을 겁니다. 혹은 그 충격을 크게 누그러뜨리거나요.” --- p.452
한 세계와 또다른 세계의 경계를 초월할 수 있는, 구체적인 고통을 수반하는 각인. 나는 아마도 그것을 내 존재의 일부로 간직한 채 앞으로의 인생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이렇게 완벽한 벽에 둘러싸인 세계가 작가의 안에서만 존재해왔다. 몇 번을 고쳐 써도 바래지 않았고, 세월도 손을 대지 못했다. 이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확고히 존재하는 그 벽의 안쪽으로, 자의와 상관 없이 이끌려 들어가는 체험을 의미한다. 귀환할 수 없을지 모른다 해도.
- 가쿠타 미쓰요 (소설가)
읽는 동안 매우 행복했다.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강력하게 믿을 수 있도록 해준 작품.
- 요시모토 바나나 (소설가)
작가란 자기 고유의 표현 장소를 정하고, 깊고 넓게 파나가는 사람이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을 세상에 내놓은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런 작업을 지금껏 철저히 추구해온 몇 안 되는 작가 중 한 명이다. 이번 작품이 그 사실을 모두에게 분명히 보여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