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지금 겉모습은 내가 살아온 긴 시간을 겹겹이 두르고 있다. 그래서 나의 겉모습은, 불
분명한 내적 가치나 ‘영혼’ 따위 이전에 존재하는 ‘나’라는 실체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내가 살아온 시간을 통과하며 마주한 각종 사건과 경험이 통합되어 있을 겉모습을, 존재 전반을 반영하고 있을 나의 이 외모를, 우리는 용기를 내기만 한다면 제대로 응시할 수 있다.
---「김원영, 외모라는 실체에 관하여」 중에서
제페토라는 메타버스 플랫폼에서는 나의 전통적 자아나 일상을 드러낼 공간이 필요 없다. 기본적으로 나의 대리이지만 나와 전혀 달라도 되는 아바타를 통해 소통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 점에서 나는 제페토에서 어떤 사람이 될지를 새롭게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김애라, 메타버스 아바타의 상태」 중에서
어떤 옷이 내 삶의 방식이나 가치 기준에 맞는지 탐색하는 데는 정보를 찾고 시행착오를 거치는 과정이 있기 마련이다. 저절로 이뤄지는 일은 없으며 남들이 좋다는 옷, 멋지다는 옷이 나에게 맞을 거라는 보장도 없다. 결국 삶이 주어지는 동안 적당한 옷을 계속 찾아가는 일은 아주 당연하다고 생각해야 할 거다.
---「박세진, 패션 역주행에 대처하는 법」 중에서
수치화된 ‘매력적인 여성의 얼굴’은 ‘아름다움’에 관해 무엇을 알려 줄까? 인종 간 위계가 사라진 세계화된 미인의 얼굴은 어떤 얼굴이 아름다운지를 말할 뿐 그 얼굴이 왜 아름다운지는 말하지 않는다. ‘째진 눈이나 뭉툭한 코, 앞으로 튀어나온 턱’은 왜 미인이 아닌가?
---「임소연, K-성형수술의 과학」 중에서
한국을 사랑하는 백인에 대한 한국 시청자의 호감은 새롭지 않다. 그런데 들여다보면 국뽕 콘텐츠에서 재현되는 외국인의 모습은 7년 전 연구에서 도출한 백인의 정형화된 이미지와는 미묘하게 다르다. 한국 문화에 격렬하게 공감하는 외국인들의 모습은 순진해 보이기도 하고, 지나치게 과장되어 우스꽝스러워 보일 때도 있다. 이것이 백인이 텔레비전에서 타자화되는 방식이다.
---「안진, 왜 TV에는 백인만 나올까?」 중에서
내가 만났던 연구 참여자들은 하나같이 ‘옷이 없는 순간’에 자신의 뚱뚱함을 인식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학창 시절 맞는 교복이 없어서 따로 맞춤 제작을 해야 했던 경우, 취업 면접을 앞두고 깔끔한 블라우스 한 장이 없었던 경우, 헬스장에서 대여해 주는 운동복 중에 자신의 사이즈가 없었던 경우, 유니폼이 맞지 않아 아르바이트를 할 수 없었던 경우, 결혼식이나 상갓집에 갈때 요구되는 정장을 구할 수 없던 경우 등이다. 삶의 일상적 의례를 수행하는 데 필수적인 옷을 구할 수 없을 때 뚱뚱한 사람들은 사회적 장에서 조용히 배제되고 설 자리를 잃는다.
---「이민, 전시되지 않는 몸들의 삶」 중에서
얕은 층의 근육이 뚜렷하게 보이려면 남성은 10퍼센트, 여성은 15퍼센트 이하로 체지방률이 내려가야 한다. 대회에 나가는 보디빌더들이 시도하는 이런 수치는 평균적인 체성분으로 사는 일반인에게 당연히 무리가 가는 목표다. 근육 윤곽이 잘 보이는 것이 왜 건강미의 상징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많은 사람들이 시나브로 이 일(바디프로필 촬영)에 가담하고 있다.
---「정희원, 지속가능한 몸 만들기」 중에서
무언가를 주는 것은 나 자신을 주는 것이다. 우리는 말을 줌으로써 나를, 나의 얼굴을, 그리고 얼굴로 표현되는 신성한 자아를 준다. 아무리 사소한 대화라고 해도 상대방은 내 말에 실려 오는 나의 얼굴을 받고, 이어서 자신의 얼굴도 내게 내놓는다.
---「박정호, 얼굴을 잃지 않는 대화」 중에서
21세기 비누를 둘러싼 소란을 만든 이는 독일 출신이자 네덜란드에서 활동하는 퍼포먼스 제작자, 음악가, 시각예술가인 율리안 헤첼(Julian Hetzel)이다. 헤첼은 2019년 「셀프(Self)」라는 프로젝트로 ‘러쉬’나 ‘딥디크’ 같은 화장품과 향수 매장을 연상시키는 스토어를 열어 비누를 판매했다. 125그램, 20유로에 판매되는 비누 포장지에는 ‘셀프’ 로고와 인간 비누(Human Soap)라는 문자가 간결히 담겨 있다. 성형수술로 추출한 제1세계 인간 지방 조직으로 제작한 비누였다.
---「김현주, 비누거품 아래, 죄와 부채」 중에서
나는 내가 선택한 옷을 입고, 얼굴과 머리를 다듬고, 내가 가기로 한 곳에 서 있다. 퀴어 페미니스트로 스스로 정체화하면서 나는 외모에 대한 강박으로부터 자유롭기를 선언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외모 통증’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일움, 외모 통증 생존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