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기술의 출현, 그것은 효율로써만 세상을 바라보던 기존 리더들에게 충격일 수밖에 없다. 총의 등장은 검과 활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사용할 것인가 하는 기존의 고민을 무력화시킨다. 돌로 싸우던 부족이 청동기를 든 부족에 의해 사라져간 것과 마찬가지다. 기술 혁신, 새 기술의 출현은 경쟁자들을 완전히 다른 게임의 룰 속에서 다룰 수 있는 시공간을 만들어낸다. IBM, 노키아, 애플 등의 기업들이 그런 시공간 속에서 한동안 독보적인 위치를 즐겼다. 이렇듯 요소 기술은 남에 의해 복제가 이뤄지지 않는 동안에는 분명한 경쟁 우위의 원천이 된다.
그런 조총의 충격이 일본에 전해진 것은 오다 노부나가가 열 살이 되던 1543년의 일이었다. 1543년 8월 23일, 일본 큐슈 남단에 위치한 섬 다네가시마(種子島)에 포르투갈 선박이 표류해왔다. 이때 다네가시마 영주가 조총에 주목해 두 정을 구입했다. 한 정은 자기가 갖고 한 정은 기술자에게 줘서 모조품을 양산하도록 했지만 총열과 총 아랫부분의 결합 방법을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영주의 명을 거역할 수 없었던 기술자는 자신의 딸을 포르투갈인에게 시집보내고서야 그 기술을 전수받게 된다. 그렇게 1년 후 수십 정의 조총이 완성됐고, 수 년 만에 전국으로 퍼지게 됐다.---「男子, 시공간의 의미를 읽다」
TV 축구 중계를 보면 "공격수가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는 해설을 종종 듣게 된다. 상대방 수비수들의 '빈틈'을 찾아 공격해야 한다는 말이다. 여기에 언어가 주는 재미가 하나 있다. 바로 이 '공간'과 '빈틈'이다. 여러분은 '공간'과 '빈틈'이라는 단어를 보고 어느 쪽이 더 넓고 크다는 느낌을 받는가. 아마도 백이면 백 '공간'이라는 단어를 택할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이 두 단어의 의미는 같다. 공간이라는 단어는 '빌' 공(空), '틈' 간(間)이라는 한자로 이뤄져 있고 '빈틈'이라는 뜻이다. 놀랍지 않은가. 공간에 대한 의식도 절대적이지 않다는 말이다. 거시적으로 빈틈이란 미시적으로는 공간으로 보이기도 한다.
오다 노부나가에게 가장 중요한 가신인 마사히데가 자결했다는 소식은 봄꽃의 개화와 더불어 사이토 도산의 귀에도 들어가게 된다. 장인에게 소식이 가는 건 당연할 터. 노부나가가 한 다리를 잃었다. 지금이 기회가 아니면 언제겠는가. 게다가 도산은 딸을 시집보내고 아직 노부나가를 직접 본 일이 없었다. 도산은 노부나가에게 사람을 보내 접경지역에서 회동하자고 제의한다. 봄이 왔으니 정덕사(正德寺, 쇼토쿠지)에서 얼굴이나 한번 보자는 것이다.
도산의 입가에 미소가 스친다. 어리석은 녀석, 자고로 싸움이란 상대가 빈틈을 보이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하는 것이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허점을 보여서는 안 되는 법이건만, 이 바보는 그런 생각이 없는 모양이라고 도산은 생각했다.---「男子, 꿈꾸되 꿈꾸지 않다」
"그런데 도쿠가와님도 참 용기가 가상하십니다. 내 영지에 속하는 요새들을 차지하고도 제안에 응하시다니 말이지요."
싸움에 유리한 때와 장소를 확보하라. 노부나가에게는 그것이 가장 중요했다. 지금 이에야스는 손안의 새와 같다. 방패가 필요해서이긴 하지만, 협상이란 상대방의 약점을 나의 강점으로 만드는 것. 이에야스도 정신을 차리기 위해서는 당분간의 시간을 확보할 수 있는 보호막이 필요한 것이다. 보호막을 쳐주는 대가로 잃었던 땅을 되찾을 것이다. 그런데 이에야스가 이렇게 받아친다.
"그 땅은 선친 때부터 우리 가문의 영지였으나, 잠시 그 주인을 잃고 여러 사람의 손을 탄 것이지요. 그러니 다시 내줄 이유는 없습니다."
어리게만 봤던 이에야스도 이제 스물이 넘어 어른이 된 것인가. 나이만 어른이 된 게 아니라 무리를 이끄는 리더로서 보여야 할 바를 보일 때가 됐다는 건가. 그렇다면 등 뒤를 받쳐줄 방패가 아니라 목덜미를 향해 날아올 창이 될지도 모를 일 아닌가. 노부나가의 부채를 든 손이 좌우로 허우적거리며 부챗살을 펼 공간, 빈틈을 노리고 있었다.
그때였다. 이에야스가 자신의 손에 들고 있던 부채를 무릎 앞에 공손히 내려놓고는 이렇게 말한다.
"앞으로 평생 노부나가님 앞에서 이 부채를 펴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男子, 말에 전략을 묻히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했던가. 승승장구하던 노부나가를 둘러싸고 불과 6개월 만에 반(反) 노부나가 전선이 이처럼 공고히 구축된 것이다. 사방이 적대 세력에 포위된 노부나가는 다시 한번 커다란 위기를 맞게 된다.
힘과 힘의 싸움으로는 더 이상 버틸 방법이 없었다. 결국 노부나가는 절체절명의 순간 천황의 힘을 이용하기로 한다. 자신의 우호 세력인 천황의 칙령으로 강화를 실현시킨 것이다. 황실의 권위를 보호막으로 삼은 이 전략은 효과를 발휘했다. 오기마치 천황의 칙령으로 노부나가는 기사회생한다. 그러나 죽음만을 면했을 뿐 생애 최대의 치욕을 맛보는 순간이었다. 오쿠보 타다타카(大久保忠?)는 [미카와 이야기(三河物語)]에서 노부나가가 아사쿠라 요시카게에게 엎드려 절한 후 이렇게 말했다고 적고 있다.
"천하는 아사쿠라 님이 가지시고, 저는 두 번 다시 천하를 바라지 않겠나이다."
노부나가는 분노를 키우며 주먹을 꽉 쥐었다. 남자라면 빚을 져도 크게 지라고 했다. 그리고 그 빚은 언젠가 반드시 갚는다. 절을 하는 행위는 상대에게는 포만감을 주고, 자신에게는 표정을 가릴 수 있는 장점도 있는 법이다.---「男子, 표정을 가리다」
"어차피 이렇게 된 것, 이제는 총공격을 감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먼저 간 가신들에 대한 미안함과 부족한 주군에 대한 원망조차 떠올릴 새 없이 카츠요리 군은 마침내, 그러나 너무도 때늦은 합일에 도달했다. 총공격. 하지만 구로자와 아키라(?澤明) 감독이 연출한 영화 [카게무샤(影武者)]의 마지막 장면에서처럼 노부나가 군은 보이지 않는다. 달려 나가는 카츠요리 부대와 이어지는 총소리만 들렸다. 그리고 죽은 자들의 혼을 달래는 향불인 듯 퍼져나가는 화약 연기 사이로 다시 눈에 들어오는 것은 카츠요리 병사들의 주검뿐이었다.
그렇게 1시간 이상 병력을 쏟아 부었다. 1만 8,000명의 움직임이 멈춘 시각은 오후 3시경. 사망자 1만 2,000명. 부상자 4,000명. 행방불명 2,000명. 그렇게 1만 8,000의 숫자가 채워졌다. 카츠요리는 죽은 가신들의 죽음을 헛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이유로 살아서 돌아갔다. 비통해하는 그를 살아남은 가신들이 설득했다. 애초에 카츠요리의 자만심만 아니었다면 죽을 리 없는 가신들의 죽음은 그렇게 헛되고도 헛됐다. 차라리 그때 카츠요리가 죽었더라면 구질구질하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男子, 자신만의 역사를 쓰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