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사는 경제의 역사를 다루는 경제학의 한 분야다. 경제학과 역사학 연구에는 많은 방법론이 쓰인다. 고전 경제학은 경제성장을 결정하는 요인을 토지, 자본, 노동으로 보았다. 현대 경제학은 경제성장의 3요소를 자본, 노동, 기술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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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로스 동맹은 매년 기금을 걷었다. 첫해 460탈렌트의 기금이 모였다. 아테네는 배를 만들고 함대를 운영했다. 페르시아 전쟁이 끝난 기원전 479년 이후 50년 동안 그리스 세계는 유례없는 평화와 번영을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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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로폰네소스 전쟁은 그리스 도시국가를 자멸에 이르게 한 자기 파괴적 전쟁이었다. 27년간 오랜 전쟁으로 고대 그리스 황금기는 안개처럼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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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왕 알렉산드로스는 대왕이라는 존칭과 함께 문명 파괴자, 학살자, 전쟁광이라는 불명예를 얻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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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힘은 어디에서 나왔는가? 로마군은 무엇보다 숫자로 상대를 제압했다. 역사가 폴리비우스Polybius는 한니발 전쟁 직전 집정관이 동원할 수 있는 군단 병력이 4만 4,000명이라고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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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가 외부의 힘에 의해 무너졌다는 주장에 대해 반론도 만만치 않다. 프랑스 역사학자 자크 르고프Jacques Le Goff는 로마 문명 자살설을 주장했다. 르고프는 “야만족이 도착하기 전에 야만인들과 반란자들 사이에 공모가 있었고, 로마의 많은 민중들이 이미 야만화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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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전국시대는 제후들이 패권을 다투는 시기였다. 큰 나라는 패권을 위해 싸웠고 작은 나라는 생존을 위해 싸웠다. 춘추전국시대는 전쟁이 잦았으나 다양한 사상이 꽃을 피우고 경제와 문화가 발전한 진보의 시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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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만 명을 생매장했으니 원망이 얼마나 컸을 것인가? 진나라 군대는 비정한 전쟁 기계였다. 통일 후 진나라 군대는 진시황의 명을 실천하는 폭력 도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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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군벌이 등장한다. 후한이 멸망한 뒤 천하대란이 일어났다. 천하를 셋으로 나눈 위魏·촉蜀·오吳는 끝없이 전쟁을 벌였다. 삼국 전쟁은 엄청난 인명 피해를 가져온 파괴적 전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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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암흑기는 서로마제국 멸망에서 서기 800년 혹은 1000년까지 지속되었다. 폭력에 의해 욕망이 거세되고 지식이 사라진 어둠 속에서, 사람들은 무지하고 가난하고 비참하게 삶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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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마제국 멸망 이후 중세는 어둠에 묻혔다. 폐쇄적 장원과 교회는 물질생활과 영적 생활을 지배했다. 중세 암흑기는 인간 욕망과 지식을 억압한 시대였다. 하지만 샤를마뉴, 농업혁명, 십자군 전쟁은 유럽인을 잠에서 깨어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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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시대 지식의 부활은 십자군 전쟁 이후 이슬람, 고대 그리스, 인도, 중국 지식의 유입과 대학 발전, 중세 기술 축적이 그 바탕이 되었다. 찰스 해스킨스는 15세기 르네상스가 갑작스럽게 돌출한 역사 단절이 아니라 ‘12세기 르네상스’의 연속선 위에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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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는 새로운 사상과 문화가 형성되는 창조와 파괴의 과정이었다. 인간을 중심에 놓은 휴머니즘과 사실주의, 세속주의는 중세의 경직성과 왜곡을 걷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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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럼버스가 도착한 아메리카는 전 세계 육지 면적의 28%에 이르는 거대한 대륙이었다. 애덤 스미스는 이 발견이 역사를 바꿨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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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럼버스가 대서양을 건넌 1492년 세계 역사는 바뀌었다. 물질적 욕망과 종교적 열정, 대포로 무장한 유럽인들은 아메리카를 정복하고 아프리카와 아시아 땅을 점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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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만제국은 18세기에 페르시아와 러시아에 밀려나고 1798년 나폴레옹의 침공을 받는다. 영토를 방어할 능력이 없는 오스만제국은 ‘유럽의 병자Sick Man of Europe’로 추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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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는 100년 이상 빗장을 걸어 잠그고 쇄국정책을 지속했다. 정화가 타고 갔던 함선은 낡아 부서지고, 큰 배를 건조하는 기술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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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은 유럽의 길을 갔고, 중국은 중국의 길을 갔다. 이념과 체제 차이가 동서양 역사를 갈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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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은 17~18세기 군사력을 앞세워 북아메리카와 서인도제도, 인도, 아프리카의 잠비아를 점령했다. 세 곳 식민지에서 축적한 거대 자본은 산업혁명의 기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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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혁명은 세계 역사에 빛과 그림자를 남겼다. 현대의 물질적 풍요와 편리함이 밝은 빛이라면, 식민지 착취와 도덕성 상실은 어두운 그림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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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와 관료는 영국이 위협적인 나라임을 알면서도 불만을 달랠 유화책을 내놓거나 국방을 강화하지 않았다. 그들은 문 앞에 나타난 사자 한 마리를 쫓아낸 것으로 자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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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 국가의 국민을 약물에 중독시켜 정신을 황폐화하고 부를 탈취하는 행위는 어떠한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아편전쟁은 탐욕과 우월 의식에 사로잡혀 도덕성과 인간성을 파괴한 제국주의 시대 최대 비극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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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잠자는 사자다. 그냥 자게 내버려 두라. 만약 사자가 깨어나면 전 세계를 뒤흔들 것이다.” 나폴레옹이 중국에 대해 한 말이라고 한다. 덩샤오핑은 잠자는 사자, 중국을 어떻게 깨어나게 했는가? “흰 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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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제2 경제 대국으로 올라선 뒤 분노의 용틀임을 시작했다. 시진핑은 2017년 10월 “마오쩌둥이 중국을 세우고(站起來), 덩샤오핑이 부유하게(富起來) 했다면, 자신은 강하게(强起來) 만들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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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넓고 비옥한 영토에서 3억 3,000만 명의 인구가 먹고 남을 정도의 풍부한 농산물을 생산한다. 막대한 광물자원과 산림, 수산자원은 독자적 경제 발전을 가능하게 했다. 영국이 식민지에서 원자재와 소비 시장을 확보했다면, 미국은 대부분의 문제를 자국 영토 안에서 해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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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역할에 관해 고전 자유주의는 작고 약한 정부를 전제하는 데 비해 신자유주의는 작지만 강한 정부를 주장한다. 신자유주의는 노동조합 파업과 과도한 복지 요구에 대해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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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는 점잖은 사교 클럽이 아니라 천재, 악마, 히피, 독재자, 이방인이 치고받고 싸우는 정글이었다. 모방과 경쟁 속에서 새로운 발명과 기술혁신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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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 도입 이후 미국 산업구조에 지각 변동이 일어났다. 제조업체들이 멕시코와 중국 등으로 옮겨가고, IT 산업과 서비스업이 급성장했다. 이른바 탈脫산업화 현상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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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 대결은 자국 경제에 타격을 줄 가능성이 있다. 미국과 중국은 서로에게 신중하게 접근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미·중 패권 경쟁은 ‘냉전 1.5’라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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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는 또한 남의 나라, 다른 민족, 다른 지역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우리의 이야기다. 세계사의 큰 흐름은 한국 역사에 그대로 투영되어 있고, 오늘날 한국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 p.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