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지나간다 해도 머지않아 또 다른 팬데믹이 창궐할 수 있다. 예전에 비정상으로 여겨지던 것이 정상으로 바뀌는 뉴노멀 시대, 이제 기존의 상식을 점검하면서 일상을 재구성해야 한다. 각종 재난으로 인한 비상사태를 슬기롭게 통과하려면 무엇이 삶의 기본 값(디폴트)이 되어야 하는지를 점검해야 한다. 촘촘하면서도 광범위한 사회 안전망을 유지하면서, 재해에 대비하는 시스템을 가동시킬 때 불확실성과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다. 지속 가능한 문명으로의 전환을 도모하는 지혜와 동력은 사회 그 자체를 건실하게 꾸려가는 과정에서 우러나온다.
---「프롤로그」중에서
얼굴은 사람됨의 깊은 본질을 드러내는 바탕 화면이다. 인간의 존귀함이 상당 부분 사회적 차원에서 구현된다고 할 때, 타인이 나의 얼굴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비참한 치욕의 바닥으로 추락하기도 하고 더없이 고결한 경지에 오르기도 한다. 타인 앞에 나를 드러내는 것, 누군가와 대면하는 것이 다소의 긴장을 수반하게 되는 까닭이 바로 거기에 있다.
---「대면─얼굴을 마주하는 오롯함」중에서
지금 우리는 각종 미디어를 통해 엄청난 볼거리를 접할 수 있지만, 세상과 맞닿는 접촉면은 오히려 점점 비좁아지는 듯하다. 특정 부류의 사람들이 시야에서 사라져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blind spot가 여기저기에 생겨난다. 눈에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은 무의미하고 하찮은 존재로 주변화되는 것이고, 투명인간으로 취급되면서 사회의 성원권이 박탈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비대면에 수반되는 비인간화, 타인이 자신과 동등한 인격체가 아니라 사물로 대상화되는 것은 양극화가 심화되는 우리 사회의 중대한 도전이다. 점점 깊어지는 소외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대면─얼굴을 마주하는 오롯함」중에서
문제는, 이러한 변화가 노인을 비롯해 디지털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을 소외시키기 쉽다는 점이다. 매장에서 주문이나 결제 기기를 빨리 다루지 못해 시간이 지체되면, 뒷사람의 눈치를 보게 되는 상황이 종종 벌어진다. 무인 시스템이 확대되면서 산업 지형에도 변화가 생겼는데, 디지털 기반 산업과 아날로그 의존형 산업 사이의 격차 또한 점점 심화되고 있다. 다른 한편 물품 결제, 건물 출입문 통과 등에 안면 인식 기술이 도입되면서 개인의 생체 정보가 유출되는 것도 새로운 문제로 대두된다. 실제로 다른 사람의 얼굴을 도용하려는 사람들에게 얼굴 사진이나 복제 가면(중국에서 안면 인식 시스템을 속이기 위해 다른 사람의 얼굴과 똑같은 모습으로 제작된 가면)을 불법으로 판매하는 일이 버젓이 자행되고 있다. ‘비대면’의 첨단 시스템에서 얼굴이 핵심 데이터가 된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비대면─나는 접속한다, 고로 존재한다」중에서
온라인 공간이 탄생한 이래 낯선 사람들 사이의 접촉은 꾸준히 늘어났고, 코로나19 기간에 거리두기의 시간이 길어지면서 그 비중은 더욱 커졌다. 거기에서 어떤 관계로 만나느냐에 따라 소통의 양상은 전혀 다르게 나타난다. 혐오와 적대감을 증폭시키는 확성기가 될 수도 있고, 새로운 세계를 개척하는 시민적 공론장이 될 수도 있다. 자기 과시와 위세 경쟁 속에서 열등감과 질투심을 자아내는 쇼 케이스가 될 수도 있으며, 지친 삶을 위로하고 용기를 북돋는 회복의 터전이 될 수도 있다. 열쇠는 비전과 지향이다. 무슨 정체성을 공유하는가, 어떤 삶과 사회를 소망하는가에 따라 비대면 관계의 성격이 좌우된다.
---「비대면─나는 접속한다, 고로 존재한다」중에서
그런 점에서 대면과 비대면의 이분법만으로는 상황의 본질을 파악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오프라인에서도 ‘비대면’이 있을 수 있고, 온라인에서도 ‘대면’이 이뤄질 수 있다. 한 공간에 머물러 있어도 각자 다른 세계에 빠져 있다면 사실상 대면하는 것이 아니다. 반면,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지만 화상 시스템을 통해 서로를 오롯이 응시하며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눈다면 충만한 대면이 경험된다. 대면이냐 비대면이냐가 아니라, 마음이 어디로 향하는가가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대면의 반대말은 비대면이 아니라 ‘외면’이다.
---「외면─고개를 돌리고 시선을 피하고」중에서
인간이 느끼는 행복감의 절반 이상은 타인과의 유대에서 비롯된다. 유대란, 무엇인가를 공유하는 것이다. 내가 타인과 의미 있게 연결되어 있다고 느낄 때 생명의 힘은 배가된다. 하지만 저절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특히 감정을 표현하고 수용하는 능력은 꾸준한 경험과 연습을 통해 학습된다. 인간의 정서는 매우 복잡한 얼개를 지니고 있으며, 엄청나게 까다롭고 미세한 코드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적절하게 활용하고 정확하게 읽어내기 위해서는 여러 부류의 사람들과 소통하고 교감해야 한다. 그리고 평소에 마음의 촉수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습관이 요구된다.
---「마음은 어떻게 움직이는가」중에서
대중가요에서는 외로움이 흔히 낭만적 감상으로 묘사되지만, 사회적으로 고립된 상태에서 경험하는 외로움은 위험하다. 왜 그런가. 외로움에 시달리다 보면 타인과 연결되고 싶은 욕망이 간절해지기 마련이고, 혐오와 적대감은 그것을 충족시키는 간편한 통로가 된다. 무엇을 지향하거나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에 비해, 어떤 사람을 함께 미워하고 모욕하는 일은 관계 형성에 강력한 접착제로 작용되기 때문이다. 〔……〕 이를 뒷받침해주는 연구가 호주에서 나왔는데, 극우 정당인 ‘원 네이션One Nation’의 지지자들은 다른 정당 지지자들과 비교해 외로움을 더 많이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치가 격정적으로 흐르는 배경에는 절망감과 박탈감에 시달리는 원자화된 군중, 그리고 그 어두운 정서를 증폭시키는 정치적 세력이 있다.
---「회복의 시공간을 찾아서」중에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 통치하에서 홀로코스트가 광범위하게 자행될 때, 유대인 구출에 나서거나 도망친 유대인에게 은신처를 제공하고 보호해준 유럽의 여러 나라 민간인들이 수천 명에 이른다고 한다. 〔……〕 그 영웅적 시민들의 공통점은 무엇이었을까? 국적, 지역, 학력, 직업, 나이, 소득, 종교…… 그 어느 것에서도 공통점을 찾을 수 없었다. 다만 오직 한 가지, 전쟁 전에 유대인과 이웃이나 직장 동료로 관계를 맺은 경험이 있다는 점뿐이었다. 상대방을 민족이라는 관념에 가두는 대신 자신과 똑같은 인격체로서 만남을 가졌고, 거기에서 자연스럽게 싹튼 인지상정이 백척간두의 상황에서 위대한 인류애로 드러난 것이다.
---「회복의 시공간을 찾아서」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