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스팀은 오늘도 어김없이 실패하고 있다. 꿈을 이룬 듯 보일 때마저도 더 큰 꿈을 꾸고 있다. 현재 진행형인 토스팀의 여정을 돌아보려고 하니, 사람들 이야기만 남았다. 인생의 어느 시기, 남다른 목표를 향해 있는 힘껏 경주하는 이들의 이야기다.
---「프롤로그」중에서
이태양은 한나라 개국공신 한신과 같은 존재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의 한고조는 물론 이승건이었다. 세상의 문제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정의하고 풀어가려는 이승건을 돕고 싶었다. 그가 뜻을 이루는 데 쓰일 좋은 무기가 되고 싶었다. 언제부턴가 이태양은 이승건을 ‘대장’이라 불렀다. 처음 약속했던 아르바이트 기간 두 달이 끝나갈 무렵, 이태양은 네이버 입사 포기를 선언했다. “내 길을 찾은 것 같아, 대장. 나는 대장이랑 창업의 길을 갈래.” 이름처럼 무한한 에너지를 뿜어내는 이태양을 이승건은 와락 껴안았다.
---「1장 ‘선을 넘어서는 용기'」중에서
외주 개발 건을 따와서 팀의 수명을 가까스로 연장해나갔다. 일주일 중 한두 번은 사무실로 출근하고, 나머지 시간은 외부에서 자유롭게 보냈다. 이승건은 종종 인사동을 찾았다. 싸이월드 기획자가 인사동 카페에 앉아 3000만 명이 사용한 ‘미니룸’을 구상했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은 다음부터였다. 쌈지길을 오가는 수많은 사람을 관찰하다 보면 정말 이들이 필요로 하는 아이템을 발견할 수 있을까. ‘다음 주에는 팀원들이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불안했지만, 그래도 감당해야 할 몫이라고 마음을 다잡았다.넷이서 한 달 넘게 수집한 아이디어를 늘어놓으니 분야를 막론하고 100개쯤 됐다. 식당 메뉴 평점 매기는 서비스, 아마추어 가수들이 노래 부르는 영상을 찍어 올리는 사이트, 삶의 스토리를 담은 부동산 정보 등 대부분의 아이디어는 예선에서 탈락했다. 본선을 통과한 5개 아이디어 중 3가지는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해 프로토타입까지 만들었다. 영수증을 사진 찍어 보관할 수 있는 앱, 문화센터와 백화점이 여는 온갖 강습 강좌를 확인하고 신청할 수 있는 포털 사이트, 기획안과 디자인 리소스를 제공하고 작업 진척도를 체크할 수 있는 업무용 툴 등이었는데, 초기 반응이 영 아니다 싶어서 바로 접었다. 몇 달 뒤 ‘토스’라고 이름 붙여 세상에 선보이게 될 아이디어도 이때 나왔다. 2013년 10월 21일 ‘송금과 결제를 frictionless하게(마찰 없이)’라는 문서가 작성되었다. 그러니까 이승건과 비바리퍼블리카는 처음부터 ‘핀테크 스타트업’이 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다. 다보트도 울라블라도 금융과는 거리가 멀었다. 더이상 실패하고 싶지 않아서, 대중이 좋아할 것 같은 아이템을 주욱 나열해보니 간편송금과 결제도 있었을 뿐이다. 심지어 이 문서에는 가차 없이 ‘폐기 대상’이라는 라벨이 붙었다.
---「1장 ‘선을 넘어서는 용기'」중에서
마케팅 예산은 월 최대 2000만 원이었다. 하준백은 돈을 아껴 쓰면서도 효율적으로 광고할 방안을 쥐어짜냈다. 원칙은 ‘작게 실패하고, 실패를 통해 배우자’, 목표는 3개월 내 100만 사용자 달성. “타깃 연령을 1세 단위로 쪼개서 1000원 어치씩 광고하기도 했어요. 어떤 콘텐츠가 어떤 연령대에서 반응이 있을지 모르잖아요. 만14세부터 65세까지 광고 세트를 52개 만드는 거죠. 그래서 어떤 연령대에서 반응이 나타나면 거기에 더 많은 광고비를 태웠어요. 나머지 광고는 끄고요.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했습니다. 발악을 한 거죠. 회사에서 잘리지 않았으면 좋겠다거나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보다는, 토스라는 가치 있는 서비스가 얼른 성장해서 시장에서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컸어요.”
---「2장 ‘정성스럽게 그러나 포악스럽게’」중에서
고객과의 거리가 가장 가까운 사람이 돈을 가장 많이 번다니, 자연스럽고도 말이 되는 소리였다. 음원 수익의 대부분이 작곡가나 가수가 아니라 멜론 등 유통업체에 돌아간다는 것은 이미 오래된 얘기이지 않은가. 네이버와 카카오는 물론이고 쿠팡, 배달의민족 등 여러 플랫폼 기업이 등장해 고객과의 접점을 늘려가고 있었다. 이승건은 질문 하나를 길어올렸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금융 산업에서 고객 접점을 절대적으로 차지하고 있는 건 누구지?’ 없었다. 은행, 보험사, 카드사 등 금융 산업의 주요 플레이어는 대부분 제조와 판매를 동시에 하는 공급자였다. 공급자는 충분히 많았다. 은행들이 내놓는 예·적금 및 대출 상품은 수십 가지인데 그 가격과 품질이 대부분 비슷해서 차별점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 한 곳도 시장을 독식하지 못했다.
---「2장 ‘정성스럽게 그러나 포악스럽게’」중에서
토스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무료 신용조회 서비스를 론칭해 성공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카카오페이 등 다른 핀테크 기업도 유사한 서비스를 내놨다. 그러고 2년 뒤, 국내 경제지에서도 ‘신용 인플레이션’ 현상을 기사로 다뤘다. 우리나라 경제인구 가운데 1~3등급인 고신용자의 비중이 2016년 말 48%에서 2019년 말 53.5%로 높아지는 추세라는 내용이었다. 기사는 “금융 거래에서 신용등급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퍼지고 핀테크 기업이 내놓은 무료 신용관리 서비스가 대중화한 것이 크게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3장 ‘세상에서 가장 빨리 크는 스타트업’」중에서
이승건은 최준호를 위기의 순간마다 나타나는 ‘문화의 수호자’라고 불렀다. “그에게 영원히 갚아나가야 할 빚이 있다”고도 했다. 이전에도 이후로도 많은 이들이 이승건에게 조언했다. 팀원이 많아지면 수평적인 문화를 지키기는 힘들 거라고, 톱다운 체제가 효율적이라고 느끼는 날이 언젠가 올 거라고. 50명만 넘어도 안 될 거다, 100명 넘으면 끝이다, 300명은 넘기기 힘들 거다…. 하지만 최준호는 자율과 책임의 문화를 지키려는 노력 자체가 가치 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었다. 까딱하면 일자리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도 용기를 내는 사람은 드물었다. 그는 이후로도 몇 번 더 이승건에게 DM을 보냈다. “할 말이 있는데, 밥 먹을 수 있을까요?”
---「3장 ‘세상에서 가장 빨리 크는 스타트업’」중에서
정승진은 마음먹었던 대로 토스의 역사를 썼다. 2019년 10월 말 토스 MAU는 1000만 명을 돌파했다. 그중 인플로우 사일로가 이끈 성장이 무려 400만 명에 달했다. 6개월 동안 그들이 지출한 마케팅비는 400억 원이었다. 2019년에 토스팀 전체가 집행한 마케팅비 총액이 800억 원이었으니, 그중 절반을 쓴 셈이다. 겁 없는 청년들이었다. 팀 전체의 눈칫밥에도 굴하지 않고 네 사람은 똘똘 뭉쳤다. 그 결과 다른 사일로가 60개월 동안 실험할 것들을 6개월 만에 해냈고, 월 30억 원에 이르는 매출을 만들어냈다. 그야말로 에픽(epic)한 변화였다.
---「4장 ‘로드바이크가 불편한 이유’」중에서
“우리는 여기까지 처음 와보았습니다. 내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변화와 상상할 수 없었던 도전이 가득할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회사보다 더 유난한 도전을 극복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꿈이 다들 하는 방식대로 잘하는 회사가 아니라, 고객이 기대하지 못했던 수준의 미친 만족감을 주고,아무도 꿈꾸지 못했던 수준의 제품을 개발하며, 있기 전과 후를 나누는 수준의 산업적 변화를 주도하고, 지속적인 혁신 추구에도 고객과의 신의를 끝까지 지켜내며, 자율과 책임의 문화 속에서 일을 통해 성취함으로써 더 행복해질 수 있는 근본적으로 새로운 방식의 기업문화를 만드는 것인 까닭입니다.”
---「5장 ‘위대한 도전이라는 신호’」중에서
많은 토스팀원들은 이날을 토스 문화의 정수가 발현된 날로 꼽는다. 처음 스크래핑 아이디어를 낸 개발자는 토스팀 전체의 비즈니스 전략과 주요지표의 중요도를 깊이 이해했다. 회사 경영과 관련된 주요정보가 모두에게 숨김없이 공개돼 있었던 덕분이다. 자신이 속한 사일로와 아무런 상관이 없었지만, 팀 전체가 중요하게 여기는 지표를 개선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떠오르자 적극적으로 개진했다. 엄청난 아이디어를 접한 스크래핑팀은 “같이하고 싶은 팀원 모이라”며 길드원을 모집했다. 아이디어를 실행한 공을 독차지하려고 욕심을 부리지도, 시간 여유가 없다며 못 들은 척 뭉개버리지도 않았다. 다른 사일로의 팀원들도 고민 없이 길드에 합류했다. 각자 사일로에서 맡은 업무와 미션이 있지만, 그 시간에 더 큰 임팩트를 낼 수 있는 일을 발견했으니 머뭇거릴 이유가 없었다. 팀 리더인 이승건에게 보고하고 허락을 구하는 사람도 없었다. 누군가의 지시가 아니라, 잘 만들면 그야말로 ‘대박’이 될 것 같다는 흥분감이 그들을 움직이게 했다. 평일인지 주말인지는 중요치 않았다. 마치 재미있는 놀잇감을 발견한 아이들처럼 신나 있었다. ‘내가 원하는 일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유의 단계를 넘어서서, 이를 실현했을 때 팀에 가져올 임팩트를 분석한 끝에 내린 자율적인 결정이었다. 긴급재난지원금 알림 사전신청자는 한나절 만에 80만 명을 기록했다. 과연 오래도록 기억될 토스다운 하루였다.
---「5장 ‘위대한 도전이라는 신호’」중에서
이승건은 간편송금 서비스를 시작한 초창기부터 정보보호와 보안을 토스의 중요한 축으로 봤다. 적은 돈일지라도 사용자가 자신의 재산과 그 거래를 맡기는 금융 서비스이기 때문이다. 청와대와 마이크로소프트, 넥슨 등에서 정보보안 담당자로 일했던 신용석이 토스팀의 CISO로 입사한 것이 토스 론칭 1년 만인 2016년이었다. 몇 달 뒤의 미래도 장담하기 어려웠던 그때의 토스가 굵직한 커리어를 가진 신용석을 선임하는 것은 막대한 투자였다. 신용석을 만난 이승건은 대뜸 “PCI-DSS 인증을 따고 싶다”고 말했다. 비자와 마스터카드 등 신용카드 회사들이 공동으로 만든 국제 정보보안 표준인데, 국내 카드사 중에도 취득한 곳이 없던 때였다. 신용석은 “비용도 시간도 많이 드는 보안 인증을 따겠다고 스타트업 창업자가 먼저 의지를 보이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보안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어느 금융기관 리더보다 높았다”고 말했다. 신용석은 토스 합류 이후 회사 전반의 보안 정책을 세웠고, 토스팀은 이를 바탕으로 세계적인 수준의 보안 인증 4개를 차례로 따냈다. PCI-DSS 중에도 최고 단계인 레벨1을 취득했다. 이승건은 이것을 능가하는 가슴 떨리는 목표를 세워달라고 청했고, 신용석은 사뭇 구체적인 목표를 제시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표창하는 정보보호대상을 받자”는 것이었다. 대한민국 정보보안 분야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이었다.
---「5장 ‘위대한 도전이라는 신호’」중에서
2021년 6월, 토스는 기업가치 74억 달러에 4620억 원을 투자받았다. 투자자들은 “SG가 말했던 슈퍼앱이 뭔지 이제는 알겠다”고 했다. 이승건은 오래전부터 토스에 증권과 은행 서비스를 장착한 금융 슈퍼앱의 미래를 그렸다. 하지만 사람들은 잘 믿어주지 않았다. 토스의 기업가치가 한동안 정체했던 것도 그런 이유였다. 이승건이 말하는 미래를 마주하기 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사람들은 토스증권 서비스가 시작되고 사용자가 순식간에 수백만 명으로 불어나는 것을 목격한 뒤에야 감을 잡았다. 금융의 슈퍼앱이 어떤 의미인지, 이게 사람들의 금융생활에 어떤 변화를 불러일으킬지 비로소 내다볼 수 있게 됐다. 그리고 토스뱅크가 문을 열 때쯤 사람들도 확신했다. “이제 토스 사용자들은 금융에 관한 한 다른 앱을 열 필요가 없겠구나.”
---「6장 ‘혁신에는 시작도 끝도 없다’」중에서
출범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토스뱅크의 신뢰도가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혜택을 축소해야 하는 상황은 점점 현실화되고 있었다. 최대한 오랫동안 약속을 지킬 수 있는 마지노선을 따져본 게 연말까지였다. 연 2% 이자의 한도를 납입액 1억 원까지로 정한 것은, 정책 변화로 영향을 받는 사용자 수를 최소화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1인당 평균 수신액이 급증했는데, 분석해보니 1억 원 이상 토스뱅크 계좌에 넣어둔 고객은 전체 가입자의 1% 미만이었다. 매우 적은 수의 고액 자산가가 엄청난 금액을 예치했던 것이다. “이 결정을 내리는 순간 제가 가진 모든 걸 뱉어내야만 했어요. 그동안 배우고 쌓아온 모든 업무적 역량과 직관은 물론이고 체력, 감정까지도요. 토스에서는 늘 그랬지만, 그때는 정말 어려웠어요. 뱅크팀은 물론이고 토스 커뮤니티 전체에 손해를 주는 것 같아서 괴로웠죠. 그럼에도 가장 많은 고객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최대한 버텨보기로 선택할 수 있었던 건, 이런 마음을 팀원들이 지지해줄 거라 믿었기 때문이죠.” 그 어떤 것보다 고객의 편익을 우선하는 태도가 홍민택이 생각하는 기업가정신이었다. 때때로 유혹에 사로잡히더라도 선의가 탐욕을 이기는 기업만이 100년, 200년 영속할 수 있다. 선의에 부합하는 제품과 서비스를 계속 만들어내고, 고객에게 가장 이득이 되는 결정을 반복해야 한다고 자신을 다잡았다. 뱅크팀의 테크 헤드 박준하는 “토스다운 결정이었다”고 말했다. “저는 은행이 큰 손실을 내면 리스크가 너무 커지는 것 아니냐, 그냥 금리 자체를 낮추자는 의견도 냈었어요. 민택 님이 DRI를 가지고 최종적으로 결정했는데, 최대한 고객에게 유리하게 하자는 얘기에 바로 공감이 되더라고요. 단순히 과감한 것이 아니라, 논리적으로 따져봤을 때 버틸 수 있다는 판단이 들면 머뭇거리지 않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죠. 토스팀이 늘 그래왔듯이요.”
---「6장 ‘혁신에는 시작도 끝도 없다’」중에서
임금 체계 변경은 안팎에서 큰 관심을 받았다. 계약 연봉에 모든 수당이 포함되는 포괄임금제에서, 주40시간을 초과한 근무에 대해 연장근로수당을 추가 지급하는 비포괄임금제로의 전환이었다. 같은 시간을 일해도 급여가 늘어나는 효과가 있었다. 채용 경쟁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개인의 근무강도에 적절한 한계선을 그어주는 역할을 했다. 팀원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더 많이 일하면 더 많이 주는 게 당연하다는 의견이 3분의 1쯤 되었다. 근무시간에 관한 세간의 루머를 일거에 잠재울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컸다. 하지만 또 다른 3분의 1은 ‘일말의 규칙조차 지양하는 자율과 책임의 문화’가 사라지는 데 대한 안타까움, 내가 자유롭게 정했던 근무시간을 회사 시스템에 입력하고 관리받는 데 대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수당을 계산해 지급하려면 개인의 근무시간을 측정하는 도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승건은 “오래 앉아 일하는 것이 반드시 더 많은 가치를 창출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근무시간 측정은 몰입도와 무관하다고 생각해요. 적어도 토스팀 안에서는요. 근무시간을 기록하는 게 열심히 일하던 사람들을 갑자기 나태하게 만들거나, 일하지 않던 사람들을 일하게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사람들은 조직의 지배적 정서에 따라, 이에 맞는 롤모델을 찾아 모방하면서 자신의 행동을 수정해 나갑니다. 토스팀에는 남다른 몰입을 통해 커다란 성취를 이뤄낸 팀원에게 신뢰와 존경을 보내는 문화가 자리잡혀 있습니다. 쉽사리 바뀌지 않을 만큼 충분히 강력하게 뿌리내렸죠. 가치창출의 총량에는 인재 밀도와 인원수, 일하는 시간, 협업 효율이라는 요소가 골고루 영향을 미칩니다. 비포괄임금제를 도입함으로써 훌륭한 인재의 밀도와 수를 높이고, 일하는 시간을 적정하게 조절할 수 있을 거라고 봐요. 그러면 토스팀이 하나의 기업, 한 팀으로서 만들어내는 가치의 양은 더 증대될 거예요.”
---「6장 ‘혁신에는 시작도 끝도 없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