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우는 일은 어렵습니다. 그중 최고 난도는 ‘아이를 키우는 것’일 테지요. 나만 잘하면 대체로 잘 자라는 개와 고양이, 식물은 비할 바가 아닙니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상호 작용을 통해서 생각과 의지 와 마음까지도 키워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아이의 성격과 마음이 성장하는 말랑말랑한 시기가 매우 중요한데, 이 시기 양육자는 몸과 정신을 온통 육아의 연료로 사용합니다.
---p. 6 「여는 글」중에서
이제는 아이의 온실지기가 된 지 15년이 넘었다. 아직도 온실의 문을 아예 열어놓고 살지는 못하지만, 이제는 꽤 자주 활짝 열어두고 있다. 한때는 아이를 빨리 온실 밖으로 내보내야 한다고 생각하며 초조해했다. 그것이 아이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의 나는 아이를 온실 속 화초처럼 키우는 엄마의 표본이었고, 때때로 그런 나를 한심해하고 자괴감을 느꼈다. 별일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지금에서야 자책과 걱정으로 힘들어했던 내가 안쓰럽게 느껴진다. 온실에 좀 오래 있으면 어때서, 천천히 밖으로 나가면 뭐가 어떻다고 그렇게 자책하고 조급해했는지 모르겠다. 맞춤형 온실에서 똑같이 시작한 식물이라도 유독 오래 걸리는 개체들이 있다. 모든 식물이 똑같이 자라서 동시에 온실 밖으로 나가는 것이 아닌데 하물며 아이들은 오죽할까.
---p. 27 「온실 속 화초를 내보내기까지」중에서
“일이 바빠서 신경을 못 썼더니, 식물들이 더 잘 자랐더라고요.” 식물계에는 이런 일이 자주 있다. 물론 식물은 신경을 써야 잘 자란다. 근데 왜 이런 말이 나오냐면, 그동안 너무 지나치게 신경 썼기 때문이다. 자꾸만 들여다보면서 뭐 해줄 게 없나 괜히 살피다가 일을 치르고 마는 것이다. 식물계에서는 차라리 물을 안 주는 사람이 낫다는 말이 있다. 바지런을 떨면서 매일 들여다보면 괜히 물을 더 주게 되어서 그렇다.
---p. 129 「무관심도 노력이 필요한 일」중에서
식물에 대해 알아갈수록 꽃을 볼 때 예전과는 다른 마음이 든다. 저 나무들이 ‘이제 봄이구나!’ 하고 간단하게 꽃을 피우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여름 무렵부터 부지런히 꽃눈을 만들고, 혹독한 겨울을 나는 동안 얼지 않도록 애를 쓰고, 에너지를 차곡차곡 모아둔 나무만이 찬란한 봄날에 축복과 같은 꽃을 터뜨릴 자격을 얻는다.
---p. 148 「추위를 겪어야 꽃이 핀다」중에서
아이에게 영양가 있는 흙과 꼭 알맞은 화분은 부모가 서로를 바라보는 마음이고, 모든 것은 그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서로를 향하는 시선, 말투, 배려, 다정한 태도는 고스란히 아이에게 전달된다. 나의 부모가 서로를 사랑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아이는 깊은 안정을 얻는다. 꼭 부모가 아니더라도 함께 사는 가족들의 안정된 상태는 매우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요소다. 집에 돌아오면 항상 편안하고 따뜻한 공기가 있다는 건 정말 굉장한 일이다. 자신의 어린 시절 을 떠올려보면 그것이 갖는 가치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긴장감 없는 안락한 가정의 분위기는 아이의 뿌리를 튼튼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자라는 아이는 어떤 비바람에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p. 190 「아이라는 씨앗이 자라는 가정의 온도」중에서
식물은 꽃가루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오는지 중요하지 않다. 어떻게든 암술머리에 꽃가루가 달라붙기만 하면 된다. 그래서 씨앗을 만들 수만 있다면 식물은 어떤 희생도 감내할 작정이 되어 있다. 하지만 인간의 성공은 다르다. 타인이 정의할 수도, 판단할 수도, 성공의 정도를 말할 수도 없다. 게다가 인간에게는 결과에 앞선 과정이 매우 중요하다. 결과의 가치를 전부 다 뒤엎을 수 있을 정도다. 그래 서 과정을 잘 보낼 수 있고, 부끄럼 없는 것으로 채울 수 있는 능력과 태도를 갖추었다면, 그것은 결과에 상관없이 성공이고 행복은 보장되어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p. 228 「식물과 인간의 성공」중에서
우리가 종종 잊어버리는 중대한 사실이 있어요. 사실은 식물도 아이들도 우리의 걱정보다 잘 자란다는 거예요. 회복하고 다시 일어나고자 하는 대단한 의지와 열망을 이미 품고 있습니다. 그깟 뿌리 좀 끊어진다고, 가지가 부러진다고, 물 때를 좀 놓쳤다고, 냉해를 입었다고 큰일이 일어나지 않아요. 병충해에 시달리고 모든 잎이 다 오그라들어 말라버려도, 안 되겠다고 단정하고 포기하지만 않으면 다시 반질반질 윤이 나는 말끔한 잎을 내어줍니다.
---p. 235 「닫는 글」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