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계시록의 중요성
성경은 하나님의 가족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은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말씀하셨습니다(히 1:1). 그들은 세상의 창조, 인류의 타락, 구원자의 약속이라는 동일한 주제를 기록하였습니다. 또한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속량을 이루신 후에 기록한 사복음서와 사도들과 선지자들을 통하여 교회에 직접 보내시는 서신서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결말의 책인 요한의 계시록이 있습니다.
모든 것을 계획하시고 이루시는 하나님께서는 이 마지막 책인 계시록을 성경의 중심인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계시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창세기로부터 신구약의 많은 말씀을 상징으로 사용하여 중요한 계시를 요한으로 기록하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진실하고 충성된 증인이십니다. 우리의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는 이 한 가지 사실이 계시록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곧 살아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그러므로…기록하라”(계 1:17~19).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들을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노라”(계 22:16).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알게 하신 것이라”(계 1:1, 22:6).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살아나셔서 승리하심으로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종들을 위하여 즉 교회들을 위하여 기록하라고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님께서는 요한에게 말씀하십니다. 교회에 중요한 말씀을 주고자 하시는 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님의 음성이 계시록입니다.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 이르되 네가 보는 것을 두루마리에 써서 … 등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시기로”(계 1:4,11).
예수님께서는 두루마리에 써서 일곱 교회 즉 모든 시대의 모든 교회에 보내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요한을 통하여 기록하게 하셔서 우리 각자에게 보내는 편지가 계시록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계시록에 등장하는 십사만 사천, 짐승의 인, 삼 년 반 대환란, 아마겟돈 전쟁과 재앙들에 집중하면서 잘못된 접근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적인 사탄은 이러한 것들을 이용하여 오랜 시간 동안 미혹하였고, 많은 두려움을 교회에 주었습니다.
특히 1990년경 종말의 날짜를 운운하며 모였던 이단의 사건들로 사람들은 계시록을 점점 멀리하였습니다. 많은 이단이 계시록의 잘못된 해석으로 접근하기 때문에 성도들은 계시록이라고 하면 마치 이단이 보는 성경인 것처럼 꺼려했습니다.
“내가 속히 오겠다”, “주의 오심을 사모하라”고 하셨지만, 교회는 삼 년 반 대환란 때문에 오히려 그분이 오시는 것을 두려워하였습니다. 오히려 ‘내가 살고 있는 동안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 그런데 만약 내가 죽기 전에 삼 년 반 환란이 닥친다면 어쩌지. 짐승의 표는 무엇이고, 어떻게 안 받지…’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은 성도들도 무슨 말씀인지 알 수 없기에 계시록은 몰라도 되는 성경으로 취급하였습니다. 마치 계시록은 자신과 상관없는 말씀으로 여기면서 관심조차 갖지 않았습니다. 오랜 시간 교회는 아버지와 주 예수님의 음성인 계시록을 등한시했습니다. 앞에서 보았듯이 그렇게 중요한 계시이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보내는 편지가 계시록이라면, 우리는 계시록을 읽어야 합니다. 또한 오랜 시간 사탄이 교회에 혼란과 두려움을 주어 읽지 못하게 한 성경이 계시록이라면, 우리는 무엇이 기록되었기에 원수가 그토록 못 읽게 했는지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먼저 가지고 있던 생각들을 다 내려놓고 성령님께 도움을 구하면서 아버지의 마음을 계시록에서 찾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요한계시록은 일차적으로 당시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 위로를 주기 위해 쓰인 것이라고 모두가 인정합니다. 그들에게 위로가 되기 위한 편지라면 먼 훗날 마지막 날에 대한 것이 아님은 확실합니다. 그러므로 사랑의 아버지께서 자녀인 그들과 지금의 나에게 주시고자 하는 말씀으로 생각하고, 귀히 여기며 알고자 하는 자세로 계시록을 대해야 합니다. 풀리지 않는 것은 그대로 넘어가고 중심 메시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베드로가 말한 것처럼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게”(벧후 3:16)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내 양은 내 음성을 듣는다고 하셨습니다(요 10:4,27). 우리가 들으려고 한다면 아버지와 주 예수님께서 계시록을 통해 주시고자 하는 음성을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중심 메시지를 아는 것에 비하면 상징과 비유는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읽어가다 보면 상징과 비유들이 하나씩 풀리게 될 것입니다.
본서는 계시록의 한 구절 한 구절을 말씀으로 풀어서 서술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한꺼번에 읽기에는 지루할 수도 있습니다. 우선은 계시록에서 궁금했던 주제와 내용들을 찾아 읽어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 공부하는 마음으로 조금씩 나누어 성경을 찾으면서 읽는다면 많은 유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본서가 말씀과 기도 가운데 머무르면서 하나씩 알아진 것들을 기록하였기 때문입니다. 진리의 성령님께서 우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심을 감사드립니다(요 16:13).
2. 교회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구속사
인류는 타락하여 죄 아래 그리고 사탄 아래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사랑하시는 사랑의 하나님께서 그들의 구원을 계획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통해 성취하십니다. 요한계시록은 하나님께서 그 십자가의 구속을 하나님의 종들 즉 교회들과 함께 이루고 완성하시는
구속사에 대한 기록입니다.
보좌와 어린 양 그리고 하나님의 가족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께 있도다”(계 7:10).
구원은 오직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께 있습니다. 구원의 메시지를 담은 이사야도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라고 보좌에 앉으신 분을(사 6:1), 그리고 어린 양의 구속 사역에 대해서 이사야 53장에 기록하였습니다. 즉 ‘보좌’와 ‘어린 양’을 언급하였습니다.
‘보좌’와 ‘어린 양’은 계시록에서도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계시록에서 확인한 바로는 ‘보좌’는 43회, ‘어린양’은 29회가 기록되었습니다.
성경은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증(확정)하게 하라”(신 19:15, 마 18:16, 고후 13:1)고 하십니다. 특별히 계시록에서는 대부분 세 번씩 동일한 것을 말씀하시므로 말씀을 확정하시는 예수님을 볼 수 있습니다.
“내가 곧 성령에 감동되었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계 4:2).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은 알파와 오메가이시고(계 1:8, 21:6, 22:13), 처음과 마지막이시며(계 21:6, 22:13), 시작과 마침이신 분(계 22:13),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분이십니다(계 1:4, 4:8). 세세토록 살아계신 분(계 4:9,10, 10:6, 15:7), 세세토록 왕 노릇하시는 분(계 11:15,17, 19:6), 거룩하신 분(계 4:8 3번), 만물을 창조하신 분(계 4:11, 10:6, 14:7), 구원하시고(계 7:10, 12:10, 19:1), 참되고 의롭게 심판하시는 분이시고(계 16:5,7, 19:2), 전능하신 분(계 1:8, 4:8, 11:7, 15:3, 16:7,14, 19:6,15, 21:22)이십니다.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한 어린 양이 서 있는데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계 5:6).
“어린 양”은 아담으로부터 오랫동안 인류가 구원을 위해 고대해 온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인류의 속량을 위한 제물이셨습니다. 계시록에서는 “일찍이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이 일곱 인으로 봉해진 두루마리의 인봉을 떼기 위해 등장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계속 ‘어린 양’으로 불립니다.
처음이며 마지막이신 분(계 1:17, 2:8),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분(계 1:16, 2:12,16, 19:21), 눈이 불꽃 같고(계 1:14, 2:18, 19:12),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분(계 1:15, 2:18), 충성되고(계 1:5, 3:14, 19:11), 참된 분(계 3:7,14, 19:11), 일곱 영을 가지신 예수님(계 3:1, 5:6)은 일곱 별을 오른손에 붙잡고(계 1:16,20, 2:1, 3:1),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면서(계 1:13,20, 2:1) 성령님을 통하여 교회를 양육하십니다.
“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우렛소리가 나고 보좌 앞에 켠 등불 일곱이 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계 4:5).
“… 그에게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들은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계 5:6).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이신 성령님은 예수님의 말씀을 교회에 전하시고 교회와 연합하여 온 땅에 두루 다니십니다.
“이는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계 7:14).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한 자”가 하나님과 어린 양 앞에 능히 설 수 있습니다. 흰옷은 성도들의 의입니다(계 19:8). “흰옷을 입는 것”은 성경에서 구원을 의미합니다. 어린 양의 피로 씻어 희게 되는 것이 복음의 핵심입니다.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서 있는데 그들의 이마에는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더라”(계 14:1).
교회는 성령으로 하나님의 인을 받은 십사만 사천입니다. 그들은 세상과 사람들 사이에서 속량함을 받아 하나님과 그리스도께 속한 자로 어디든지 어린 양을 따라가는 자이며, 순결하고, 거짓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입니다.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며 밤낮 주를 섬기는 자들입니다. 교회의 모든 것은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님으로부터 옵니다. 예수님께서 인류와 동일시되어 죽으신 것처럼, 교회는 그분의 죽음과 부활과 승리에 이미 동일시된 자들입니다(계 3:21, 6:9, 9:18, 20:4). 그들은 어린 양의 신부 새 예루살렘입니다. 새 예루살렘의 영광의 빛은 오직 아버지의 영광의 빛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난 그분의 형상입니다. 성도는 하나님과 어린 양이 거하시는 성전이고, 하나님과 어린 양은 성도의 성전입니다. 이는 하나님과 성도의 완전한 연합으로 새 언약의 핵심입니다. 아버지와 주 예수님은 교회가 어떤 존재인지 알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이 계시록의 첫 번째 목적입니다. “보좌에 앉으신 아버지 하나님”, “어린 양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이신 성령님”, “하나님의 종들인 교회 즉 어린 양의 신부인 새 예루살렘”은 계시록의 중심인물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가족을 도와서 일하는 천사의 무리도 함께 구원의 사역을 이루어갑니다.
두 진영
이기려면 이겨야 할 대상 또는 상황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의 대적은 사탄이라는 것을 잘 압니다. 계시록은 그 사탄과 그 진영을 드러냅니다. 그들은 어떤 자들이고, 성도들이 어떤 싸움을 어떻게 싸우게 되는지, 그 결과는 어떠한지를 말씀합니다. 사탄의 진영도 하나님의 진영과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마귀’ 그리고 그 아래 ‘적그리스도’가 있고, ‘거짓 선지자’ 그리고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로 바벨론’이 있습니다. ‘큰 용’ 즉 ‘옛 뱀, 마귀, 사탄’은 그 진영의 대장으로 일곱 머리와 열 뿔을 가졌습니다. 하지만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과는 비교 대상이 아닙니다. 예수님께 참패를 당하여 쫓겨나 무저갱에 갇힌 자입니다. 그는 교회를 박해하는 용, 유혹하는 뱀입니다.
적그리스도는 용의 권세를 받은 짐승입니다. “하나님의 이름과 그의 장막 곧 하늘에 사는 자들”을 비방하고, 성도들과 싸워서 이기게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경배를 받으시는 것처럼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모든 자로부터 적그리스도는 경배를 받는 대상입니다. 하나님의 진영에 두 증인이 있는 것처럼 사탄의 진영도 거짓 선지자가 있습니다. 두 증인이 복음을 전하여 하나님의 성령으로 인을 받게 하는 것처럼, 거짓 선지자는 용과 적그리스도를 섬기게 하고 짐승의 표를 받게 합니다. 두 진영은 사람의 영혼을 놓고 싸움을 벌입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재림 때까지 벌어질 수밖에 없는 일들입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이 어린양의 신부 새 예루살렘으로 불리듯, 짐승인 적그리스도를 따르는 무리는 음녀 바벨론으로 불립니다. 그리스도는 교회를 사랑하사 위하여 피를 흘리고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사신 그리스도는 자신의 모든 영광을 교회에 주십니다. 하지만 짐승인 적그리스도는 이와는 반대입니다. 그는 처음부터 거짓말로 속여서 인류를 사망의 노예, 죄의 노예로 삼은 자입니다. 사람들을 꾀어서 따르게 하지만 그들을 끝까지 미워하여 망하게 하고, 죽게 하며, 불에 살라지게 합니다(계 17:16).
성경은 이김의 책입니다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계 12:5). 그 후의 모든 싸움은 이 싸움을 근거로 싸우게 됩니다.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셨습니다(계 5:5). 그래서 성경은 이김의 책입니다. 이미 이긴 싸움에 근거하기 때문입니다.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계 12:11).
형제들은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 사탄을 이긴 자들입니다. 그들은 어린 양의 피가 말하는 것을 입으로 말함으로,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입니다(계 15:2). 그들은 “어둠의 권세에서 해방되어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겨진 자들”로 구원받은 자들 곧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골 1:13). “이에 내가 보니 흰말이 있는데 그 탄 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아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계 6:2). 교회는 이기고 또 이기는 자들입니다. 말씀을 증언함으로 사탄으로부터 사람들을 구원해 내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예수님 승천부터 재림까지의 삼 년 반 동안 예언하는 엘리야이고, 노예로 사탄 아래 있는 자들을 이끌어내는 모세입니다. 어린 양이신 예수님은 인을 떼심으로 열린 두루마리를 왕과 제사장인 교회가 먹게 하셔서 증인으로 복음의 나팔을 불게 하시고 왕으로 다스리게 하십니다.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은 구속사를 이루는 중요한 도구입니다.
죽었다가 살아나심으로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신 예수님은 그분이 가지신 것을 동일하게 교회에 주시며, 대적의 성문에서 다스리라고 하십니다. ‘왕과 제사장’들이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것들을 가지고 함께 구속사를 이루어 갈 것입니다. 계시록에는 사탄과의 전쟁에 대해서 다양한 상징으로 기록하지만, 오직 하나의 전쟁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교회와 그것에 대항하는 사탄과의 싸움으로 예수님 승천부터 재림까지 계속되는 싸움입니다. “그들이 어린 양과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그들을 이기실 터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도 이기리로다”(계 17:14).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신 어린 양과 그와 함께 있는 진실한 자들인 교회는 승리하는 자들입니다. 알파와 오메가 되신 하나님은 시작하신 구속의 사역을 그들과 함께 이루십니다. 세상에서는 환난을 당하지만 그들은 그리스도와 더불어 이 땅에서 왕으로 다스리는 자들입니다. 또한 어린 양의 아내 새 예루살렘인 그들은 하나님과 어린 양이 계신 성 안에서 그분의 얼굴을 볼 것이며, 영원히 분리되지 않는 영광 가운데 거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사탄, 적그리스도, 거짓 선지자 그리고 그를 따르는 믿지 않는 자들은 결국 영원한 불못으로 던져지게 될 것입니다.
구속사를 이루라
“내가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그러나 …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계 21:6~8).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계 21:27).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계 22:14). 계시록을 마무리하면서 하나님과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계시록은 교회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그런데 짐승을 이기고 생명수를 받아 생명책에 기록되는 구원을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두 가지 이유입니다.
첫째는 청함은 받았지만 택함 받지 못한 자, 즉 교회 안의 구원받지 못한 자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평생 교회 마당을 밟지만, 복음을 몰라 그 성에 들어가지 못하는 자에게 바로 알아 구원받으라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지상의 교회들에게 보내는 편지인 2장과 3장에서도 ‘이기는 자는’을 일곱 번 말씀하셨습니다. 짐승을 이기라는 말씀입니다. 둘째는 교회가 전하여 짐승을 이기고 돌아오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상을 말씀하시고 가감하지 말 것을 말씀하십니다(계 22:12,18,19). “오라,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라고 성령님과 신부인 교회가 말씀합니다(계 22:17). 깨닫는 자는 오라고 부르라고 하십니다. 주님은 그 성에 들어간 교회에게 촉구하십니다. “내가 곧 간다. 모든 것의 끝이 온다. 그러면 더 이상 기회는 없다. 오라 하라! 그 성에 들어오게 하라!” 당시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도 오늘의 우리에게도 주님은 동일한 말씀을 하십니다.
3. 요한계시록의 구조
요한계시록은 상징과 비유로 쓰여진 스토리를 가진 내용으로 전개됩니다. 그러므로 그 내용에 따라 간략하게 구조를 설명합니다. 계시록 1장은 계시록의 목적과 중요성을 말씀합니다. 처음 계시된 분은 예수님입니다. 2장과 3장은 지상의 교회의 모습입니다. 주님은 성령님을 통해 그들을 양육하십니다. 중요한 것은 이기는 자에게 주시겠다고 하신 것들은 믿는 자의 유산입니다. 4장부터 8장 1절까지는 일곱 인입니다. 인은 계시가 열리는 것입니다. 4장과 5장은 하나님의 보좌와 하나님이 계신 천상의 모습과 일곱 인으로 봉해진 두루마리와 어린 양의 등장입니다. 6장은 어린 양이 봉해진 두루마리의 여섯째 인까지 떼십니다. 7장은 두루마리의 계시가 열려 전함으로 태어난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의 인 맞은 십사만 사천과 보좌 앞에 선 무수한 무리입니다. 일곱 인에서 구속사를 이루는 하나님의 가족이 소개됩니다.
8장 2절부터 14장은 일곱 나팔로 복음의 나팔입니다. 일곱 사자, 요한과 두 증인, 세 천사의 나팔과 예언 그리고 외침으로 예수님은 곡식을 거두어들이십니다. 일곱 나팔에서 12장과 13장은 사탄의 진영에 대한 설명입니다. 사탄은 적그리스도를 통하여 교회의 바깥마당을 짓밟고, 복음 전파를 훼방하며 거짓 선지자들을 통하여 포도를 거두어 짐승의 인을 받게 합니다. 15장부터 20장은 전체가 일곱 대접으로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모세의 지팡이를 통하여 애굽에 재앙을 내리시듯 하나님은 교회의 검과 철장을 통하여 바벨론을 심판하십니다. 16장의 일곱 대접에서 모든 심판이 이루어졌지만, 17장과 18장은 바벨론의 심판을, 19장은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의 심판을, 20장은 용과 그를 따르는 사람들의 심판을 말씀합니다. 교회에 대하여 19장은 어린 양의 신부된 교회가 백마를 타고 예수님을 따라 공의로 심판하며 싸움을, 20장은 그들이 영으로 살아서 심판하는 권세로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함을 말씀합니다. 21장과 22장은 어린 양의 신부인 새 예루살렘의 영광을 말씀하시고, ‘오라’는 말씀, ‘오라고 부르라’는 말씀과 속히 오시겠다는 말씀으로 끝을 맺습니다
---「서문」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