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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글을 쓴다는 것은

여성이 글을 쓴다는 것은

: 연인, 환자, 시인, 그리고 너

[ 양장, 개정판 ]
리뷰 총점10.0 리뷰 1건 | 판매지수 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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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11월 10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280쪽 | 442g | 145*200*20mm
ISBN13 9788954689151
ISBN10 8954689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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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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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시인이 ‘나’ 를 열어 ‘나’의 그 알 수 없는 심연의 죽음 속으로 빠지는 경험을 한다는 것은, 자신의 심연이 바로 자신의 존재임을, 시를 쓰는 작업이 바로 그 존재성을 자각하는 과정임을 깨닫는 것이다. 이때, 여성시인은 그 불모의 사막 속에서 ‘나’를 보내고, 모든 ‘나’를 불러들인다. 한 주체가 다른 주체를 비추며, 모두를 무성하게 한다. 그것은 존재의 결핍이 아니라 부재를 통한 무수한 존재의 발견이다. 그곳엔 아무것도 없지만, 그러나 모두 있다. 그곳을 여성시인인 내가 방문하는 것이 내 시의 궤적이다.
---「여성적 발화」중에서

몸은 박동이다. 내 몸은 나를 초월해 은근히 자신을 증명하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 저 혼자 움직여, 한 달을 주기로 순환한다. 그렇다고 늘 같은 궤도를 그리지도 않는다. 몸은 저 혼자 고동치면서, 제 프로그램대로 움직여간다. 내가 나를 초월하는 것이 아니라 내 몸이 나를 초월해간다. 나는 생각지도 않다가 내 몸이 우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 내 몸이 어떤 간절함으로 스스로 울 때는 나도 어쩔 수 없다. 내 몸이 우는 소리를 듣고 있는 수밖에. 아니면 내 몸을 위해 나도 우는 수밖에.
---「태양 지우개님이 싹싹 지워주실 나의 하루」중에서

내 어머니는 내 안에서 이미 죽은 지 오래다. 내 어머니는 내가 태어나는 순간, 내 안에서 나에게 생명을 주고 죽었다. 죽은 어머니가 내 안에 있다. 어머니는 죽음으로써 현존한다. (…) 어머니는 원점처럼 내 안의 먼 곳, 그곳에 자리잡고서 나로 하여금 나의 바깥을 겨냥하게끔 독려하고 부재의 투명한 무한을 겨냥하게끔 독려한다. 만일, 나에게 어머니가 없다면 나는 너를 소유하지 못해 안달할 것이다. 나는 너를 내 안에 넣겠다고, 그리고 영원히 내보내지 않겠다고 안달할 것이다. 그렇게 될 때 내 시의 이미지는 욕망과 집착이 만든 가상현실 속에 있을 것이며, 그 가상현실의 욕망을 재생산하는 영원한 순환 속에 감금되어 있을 것이다.
---「어머니」중에서

여성시인이 자신에게서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려 하면 할수록 그녀는 파멸한다. 여성시인이 된다는 것은 끝없이 파멸할 수도, 타락할 수도 있는 은총이다. 이 은총 속에서 그녀는 더이상 이곳에 존재하지 않을 수 있게 된다. 여성의 몸에는 그렇게 존재하지 않을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어 있다. 죽음에의 무한한 참여, 목적 없는 여행을 무한히 감행할 수 있는 자리가 있다. 여성시인의 내부에는 머뭇거리고, 비틀거리고, 남장을 한 채 멀어지는 한 여성이 존재하고, 영원 속에서 젖을 먹이는 한 어머니가 동시적으로 존재한다. 그 두 존재의 슬픔과 기쁨이 여성시가 가지는 정서다.
---「물」중에서

시인은 시를 생산하는 자가 아니라 우주라는 몸안에서 운행하는 생명을 읽고, 성찰하는 자이다. 그러나 그 성찰은 표피적인 내용 베껴쓰기가 아니라, 시인이 타자에 대해 온몸으로 느끼며, 그 생명들과 함께 움직이며, 죽음을 표상하며, 시의 형식에 이르게 되는 과정으로 형성된다. 그것은 우리 생활 속에 있으며, 계절의 변화 속에, 서울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 속에, 삼라만상의 움직임 속에 들어 있다. 아버지들이 메시지를 쓸 수 있는 표면이라고 믿고 있는 여성의 몸안에 살아 있다. 현대성은 당대라는 몸이 드러내는 것, 그리고 감추고 있는 영원한 것에 의해 읽힌다.
---「여성의 몸」중에서

여성인 내가 몸을 여는 것은 남성에게가 아니라 바로 ‘에로스’라는 컨텍스트에게이다. 이 사랑은 태곳적부터 여성인 내 몸에서 넘쳐나왔고, 그리고 거기서부터 고유한 실존의 내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그러나 이 실존의 실체는 고정된 도형이 아니라 움직이는 도형으로서의 실체다. 늘 순환하는. 그러나 같은 도형은 절대 그리지 않는. 그러므로 거대한 침묵의 타래 안에 빠진 무수한 사물을 살려내고 당대를 깨어나게 하는 것, 그래서 죽은 것은 죽음뿐이게 하는 것이 여성이며 시인인 내가 춤추고 웃으면서 할 일이 아닌가.
---「프랙털, 만다라」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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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사 최초로 여성적 언어로 여성의 텍스트가 태어나는 순간과 그 생리, 그 철학에 대해 본격적으로 써내려간 경이로운 여성주의 시론집. 엘렌 식수의 『메두사의 웃음』보다, 이리가레의 『반사경』보다 더 황홀하고 더 아름답고 더 격렬한 들림의 글쓰기. 뮤즈라는 존재가 한 번도 전경화(前景化)되어본 적이 없는 이 나라 문학사에 버려진, 던져진, 벗어난, 살아난 무조(巫祖) 여신 바리데기를 그 자리에 즉위시킨 책. 이 신들린 여성의 언어, 이 흘러넘치는 희열의 언어, 이 독창적인 시론의 언어는 여성적 글쓰기의 신비한 원천에 대해, 여성적 글쓰기의 그 질병과 욕망에 대해, 여성적 글쓰기의 그 위험한 숙명에 대해, 여성적 글쓰기의 그 고유한 사랑과 치유의 형식에 대해 아주 절박한 목소리로 발화하고 있다.

무언가 신령에 들린 목소리, 그래서 아픈 목소리, 그래서 사랑하는 목소리, 그래서 환자의 목소리이기도 하고 연인의 목소리이기도 하다가 더 나아가 신화적 문체가 되기도 하는 이 목소리. 흘러넘치고 퍼져나가며 여울지다가 고요히 맴도는 이 목소리들의 다원적 여성성 자체가 김혜순적 여성적 글쓰기의 징후, 또는 징표이기도 하다. 그 목소리 속에 의미들은 무한히 다채롭게 역동적으로 스며든다. 논리만으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시의 탄생의 그 영원성의 순간을 하는 수 없이 에로틱한 상상의 언어가 채색의 물결로 와서 메우고 있는 이 새로운 여성적 글쓰기의 경이로운 고백과 그 형식.
- 김승희 (시인, 서강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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