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색은 단어이자 색조이며 개념이다. 파랑 계열의 색들을 일컫는 표현은 수천 가지에 이른다. 섬세하고 옅은 파랑에서부터 웅장하고 묵직한 밤하늘의 파란색night sky blue, 나아가 은은하게 비치는 청록빛 바다색turquois blue도 모두 파란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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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치는 보듬어주는 듯한 온화한 톤을 지니고 있어 여전히 여성성과 긴밀히 연관된다. 고대 로마에서 피치가 사랑과 미의 여신 비너스를 연상하게 했듯이, 여러 문화권에서 피치는 여신의 상징이었다. 이 천상의 이미지가 피치에 순수와 순결의 가치를 불어넣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관능을 드러내는 색조로 피치의 이미지는 변화되었다. 피치 고유의 로맨틱한 느낌은 간직하되 핑크보다 감각적이고 오렌지보다 매력적인 색으로 진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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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립적이며 편안한 느낌의 회색에 좀더 다채로운 느낌을 주고 싶을 때는 스카이블루가 제격이다. 스카이블루의 중립성은 배경색으로도 적절하며 넓은 공간을 채우기에도 적합하다. 스카이블루는 파랑 계열에서도 비교적 어두운 색조 또는 파스텔 톤의 핑크 계열과 훌륭한 조화를 이룬다. 스카이블루가 지닌 젊음의 느낌은 퍼플이나 바이올렛과 배색할 때 특히 도드라진다. 반대로 화이트, 베이지, 피치, 옅은 노랑과 배색하면 도리어 진정 효과가 강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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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에 관한 인상은 일찍이 유년기에 만들어지는데, 그때 형성된 정서적 반응은 시간이 지나도 변함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개인의 취향이 변화, 발전을 거듭하면서 싫어하거나 무관심했던 색들이 점점 좋아지기도 하죠. 우리에게는 ‘중립적인’ 느낌의 색들이 그렇습니다. 이들 색에 강한 호불호는 없어요. 하지만 디자인 작업을 하면서 대비를 만들어내거나 무언가를 보완할 때면 컬러의 이런 중립성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덕분에 주변색들이 더 활기를 띠게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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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노랑은 왕족의 지위를 나타낸다. 황제 의복에만 활용하던 노란색의 의미는 오늘날까지 이어져 귀족, 명예, 남성성의 상징이 되었다. 하지만 책을 포함한 다른 물건에 채색되는 노랑은 에로티시즘과 포르노그래피를 상징하기도 한다. 한편, 중국 오행 사상에서 노란색은 땅의 원소, 사물의 중심, 토성, 여름, 용을 나타낼 데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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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이 늘 긍정적 의미만 가졌던 것은 아니다. 비록 자연에 풍부히 존재하는 색이긴 해도 녹색을 염료에 사용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중세에는 색을 섞어 쓰는 것을 터부시했던 까닭에 옷감을 파란색에 담갔다가 노란색에 담그는 간단한 일조차 엄격히 금지되었다. 그 결과, 장인들은 녹색 잉크를 뿜어낼 물질을 찾아야만 했는데, 그런 물질은 독성과 부식성이 있어 색을 입히는 물질이나 이를 사용하는 사람에게 해로웠다. 여기에서부터 녹색의 부정적인 의미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녹색은 독, 질병, 심지어 기이함과 탐욕을 의미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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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은 모습을 감춤으로써 존재를 드러내는 색이다. 파랑에는 차원이 없다. 다른 색들의 차원을 넘어서는 것이 파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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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은 저의 모든 것이자 제가 하는 모든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 스튜디오에서는 여러 분야를 함께 다루죠. 이를테면 공공장소와 예술 설치물에 패턴과 색을 적용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강렬하고 과감한 배색이 사람과 공간에 미치는 효과를 한 번도 과소평가하지 않았습니다. 기쁨을 널리 퍼뜨리는 게 저의 사명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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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에 처음 등장한 형광색은 1960년대 대중문화 속에 두드러졌던 밝은 색상들의 업데이트 버전으로 나타났다. 당대 촉발된 펑크문화운동은 반항적인 자신감과 강렬함을 내비치는 형광색의 미적 잠재력과 절묘한 짝을 이루었다. …형광 녹색은 개인용 컴퓨터 초창기에 큰 명성을 누렸다. 당시 이 색은 기술적 유래로부터 ‘터미널그린’이라는 명칭을 얻었다. 비록 형광 녹색은 공격적이고 차가운 색으로 읽히긴 했지만, 검은 배경에 배치했을 때 우리 눈의 피로도를 줄여준다는 이유에서 흰색 대신 채택되는 색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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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애드 코드의 핵심에는 파랑, 노랑, 빨강 3원색에 하양과 검정을 표현하는 단순한 5대 기호가 있다. 컬러애드는 ‘색상 추가 이론’이라는 틀 안에서 이 기호들을 서로 결합해 전체 색을 표현한다. 가령 노랑과 파랑을 나타내는 기호를 결합하면 녹색을 나타낼 수 있다. 이러한 단순함 덕분에 컬러애드는 일상생활에서 쉽게 만들어지고, 이해되고, 기억될 수 있다. 이렇듯 이 체계는 ‘차별하지 않고 포용’하는 능력을 지닌다. 색을 흔히 ‘보편적 언어’라 하는데, 컬러애드야말로 이것이 실현되도록 돕는 도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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