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는 여러모로 『삼국사기』와 비교되곤 하였다. 이를테면 『삼국사기』가 왕권의 강약과 귀족 세력의 부침에 따른 정치사를 바탕으로 서술되었다면, 『삼국유사』는 불교와 고유 신앙의 대립과 화해, 향가를 비롯한 문학과 미술 작품, 건축물의 조성 등 종교를 중심으로 한 문화사의 영역을 해명하고 있다. 이에 따라 『삼국사기』가 본기와 열전에 수록된 현실 세계의 역사를 지향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삼국유사』는 기이편과 감통편을 비롯한 여러 대목에서 비현실적인 존재들을 만나고 체험하는 과정에 관심을 기울여 왔다.
---「『삼국유사』 제목과 그 뜻」중에서
다섯 가야 - 『가락기찬駕洛記贊』을 살펴보면 자줏빛 끈 하나가 내려와 둥근 알 6개를 주었다고 한다. 다섯 알은 각각 작은 나라들로 떠났지만, 하나는 성에 남았다. 그리하여 하나는 수로왕首露王이 되고, 남은 다섯은 각각 다섯 가야의 군주가 되었다. 그러므로 금관가야는 다섯에 들어가지 않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고려의 『사략史略』은 금관가야까지 합쳐 세었고, 창녕까지 함부로 보태었으니 잘못되었다.
---「1편 기이, 정치 현실과 신성한 환상(상」중에서
643년 16일 자장은 당나라 임금이 하사한 불경, 불상, 가사, 폐백을 가지고 귀국하였다. 선덕여왕에게 탑 쌓을 일을 아뢰자, 여러 신하와 함께 의논하였다. “백제에 기술자를 청해야 가능하겠습니다.” 좋은 비단으로 백제에 부탁하니, 명장 아비지阿非知가 와서 목재와 석재를 맡았다. 용수라고도 불리는 김춘추의 아버지 용춘 이간도 200명의 기술자를 관리했다. 첫 기둥을 세우는 날, 아비지는 백제가 망하는 꿈을 꾸었다. 그래서 의심스러운 마음이 들어 공사를 중단하자, 갑자기 큰 지진이 나고 하늘이 어두워졌다. 그 와중에 어느 노승과 장사가 본당의 문에서 튀어나와 기둥을 세우고는 없어졌다. 그러자 아비지도 생각을 바꿔 9층탑을 완성했다. 탑의 중심기둥에 대한 기록[찰주기, 刹柱記]에는 철로 된 토대 위아래 높이가 44~80m 정도라 했다. 자장이 오대산에서 받은 부처님의 사리 100알을 황룡사 9층탑의 중심기둥과 경남 양산 영축산의 통도사通度寺, 자신이 울주에 창건한 태화사大和寺 탑 등에 나누어 모셨다. 이 탑을 세우고 천하가 태평하며 삼한이 통일되었으니, 정말 신통하지 않은가!
---「4편 탑상, 탑과 불상」중에서
원효는 태어날 때부터 특별해서, 스승을 따라 배우지 않았다. 그가 수행했던 자취와 여러 업적은 당나라의 『속고승전』과 행장에 다 실려 있으므로, 여기서 되풀이하지는 않겠다. 전해지는 특이한 일 한 두 가지만 살펴보자.(중략) 이때 요석궁瑤石宮에 과부가 된 공주가 살았다. 원효를 맞이하려고 사자를 보내 찾아, 경주 남산 내려와 문천교에서 만나게 되었다. 원효는 일부러 물에 빠져 옷을 젖게 했다. 그러자 사자는 요석궁으로 원효를 모시고, 옷을 벗어 말리도록 했다. 이렇게 요석궁에 묵었고, 공주는 임신하여 설총을 낳았다. 설총도 태어날 때부터 총명해서, 유학의 경서와 역사에 통달하여 신라 10대 현자 중 1인이 되었다. 한국어 발음으로 중국과 신라의 풍속이며 사물의 이름을 다 나타낼 수 있었고, 유학의 경서에 다 주석을 달아 아직도 우리나라의 경서 주석에 끊임없는 영향을 끼치고 있다.
---「5편 의해, 불교의 뜻」중에서
얼마 후 대성은 사고로 죽었는데, 그날 밤 김문량金文亮 재상의 집에 하늘의 소리가 들렸다. “모량리 아이 대성을 이 집에 맡기노라.” (중략) 대성은 자라면서 사냥을 좋아하게 됐다. 하루는 토함산에서 곰 한 마리를 잡고, 아랫마을에서 잘 때 꿈에 곰이 나타나 혼냈다. “왜 나를 죽였느냐? 내 너를 잡아먹으리라.” 대성은 놀라 용서를 빌었다. “그러면 나를 위해 절을 짓겠느냐?” “그러겠소!” 잠에서 깨니, 이불이 흠뻑 땀에 절어 있었다. 그래서 사냥을 끊고 곰을 사냥했던 자리에 장수사라는 절을 지었다. 그러므로 느낀 바 있어 신앙심이 두터워졌다. 그리하여 현생의 양친을 위해 불국사를 짓고, 전생의 부모를 위해 석불사[석굴암]를 지었다. 불국사에 신림, 표훈 등 성현을 모시고 석굴암에 큰 불상도 만들어 키워주신 은혜를 갚았으니, 한 몸으로 두 시간대의 부모님께 효도한 일은 예로부터 드물다. 대성이 밭을 바쳤던 기부의 효험을 안 믿을 수 있겠는가?
---「9편 효선, 효도와 선행의 실천」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