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 과제는 의지가 느낌의 지배를 벗어나 사고의 지배를 받도록 이끄는 것이다.
--- p.11
우리는 아이들이 손으로 만드는 것을 좋아하고 즐기며, 능숙하게 손을 쓸 줄 아는 동시에 예술적 안목을 계속 키워 나가기를 바란다. 수공예는 편하고 재미있는 동시에 생산적이어야 한다. 결국 수공예는 강한 ‘의지 활동’이기 때문이다. 손을 움직여 작업하지 않았는데 무슨 작품이 나올 수 있겠는가! 자연 재료를 변형하는 과정에서 아이들 내면이 성장하고, 온전함에 대한 감각, 생명감각이 자란다. 수공예 수업은 다른 과목을 보충, 보완하면서 교육 활동 전체를 조화롭고 온전하게 만들어 준다. 성숙한 예술가의 공예 작품에는 사고, 감성, 의지 활동이 균형을 이룬다. 인간의 ‘의지’는 대부분 깊이 잠들어 있다. 발도르프학교의 수공예 수업은 아주 어린 나이부터 의지를 부드럽게 깨우고 교육한다. 의지를 일깨우는 것이 왜 중요할까? ‘의지’는 궁극적으로 사고와 연결된다. 모든 발도르프학교 교사의 진정한 과제는 아이들이 명확하면서 상상력이 풍부한 사고의 소유자로 성장하도록 돕는 것이다.
--- p.18~19
슈타이너는 수공예 활동이 판단력을 강화해 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판단은 상상력에서 나와 심장의 힘을 통해 이루어진다. 머리만이 아니라 인간 존재 전체가 판단을 내리는 과정에 참여하는 것이다. 수공예 활동에 얼마나 다양한 감각이 쓰이는지 생각해 보자. 시각, 촉각, 운동감각, 균형감각 등 수많은 감각이 동원된다. 이 감각들을 통해 세상의 다양한 인상이 들어오고, 그 정보를 하나로 모아 판단을 내린다. 손을 통해 우리는 세상과 더 깊고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되며, 그만큼 인류를 이해하는 눈 역시 깊어진다.
--- p.19~20
아주 단순한 재료만으로도 많은 일을 해낼 수 있음을 체득함으로써 응용력, 임기응변 능력이 자란다. 예전에는 손으로 하는 간단한 과제들을 가정에서 쉽게 접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단추 다는 것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아이들이 수두룩하다. 줄을 당겨서 입구를 조이는 모양의 주머니에 끈 꿰는 ‘비법’을 배울 때 아이들은 뛸 듯이 기뻐한다. 그런 기쁨을 경험한 아이들은 다른 문제를 맞닥뜨렸을 때도 해결책 찾기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주변의 간단한 재료를 활용해 문제를 해결할 줄 알게 된다.
--- p.22
뉴욕에 위치한 루돌프 슈타이너 학교에서 아이들은 목공 시간에 마리오네트를 만들고 수공예 시간에는 그 인형에 입힐 옷을 제작한다. 인형극 대본을 쓰고, 대사를 외우고, 무대 배경을 그리고, 소품을 만들고, 마리오네트 조종법을 연습하면서 인형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이 모든 과정은 멋진 공연으로 마무리된다. 7학년에게 딱 맞는 르네상스적 종합 예술이 아닌가!
--- p.87
자기 손으로 직접 작품을 완성하는 경험이 쌓일수록 아이들의 자신감도 함께 성장한다. 이는 학문적 성공의 열쇠이기도 하다. 실용적이고 구체적인 작업 과정에 참여할 때 아이들은 ‘배우는 법을 배운다.’ 발도르프 실용 공예 교과 과정은 놀이에서 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목공 수업은 발달 측면에서 아이들이 새로운 분야에 관심을 갖고 새로운 기술을 익힐 준비가 되는 시기에 교과 과정에 들어온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세상에 대한 흥미와 기술을 많이 키워 줄수록 아이들은 지상에서 온전한 인간으로 살아갈 능력을 얻는 동시에 기계 문명을 기반으로 하는 문화에 종속되지 않을 것이다. 아이들은 수작업이 얼마나 멋진 일인지를 경험할 필요가 있다. 공예 수업은 교사가 아이들에게 이타적인 행위의 기쁨을 맛보게 해 줄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사랑하는 친구와 주변 사람들을 위한 작품을 만들며 아이들은 더불어 사는 기쁨을 배울 수 있게 된다.
--- p.94~95
교사는 학생들이 ‘올바른 것’을 성취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수업을 이끌어야 한다. 그리고 그 경험이 몸에 밸 때까지 계속 반복되어야 한다. 이 과정이 도덕성 발달을 위한 근본 토대가 된다. 실용 예술을 통해 아이들의 ‘놀이’는 예술로 변형된다. 처음에는 미학적 형태감을 일깨우고, 다음에는 실용적인 형상을 만드는 능력을 개발하며, 마지막으로 일 자체가 주는 기쁨을 경험하면서 단계별로 승화된다.
--- p.109
오늘날 많은 학교에서 발도르프 수공예 교과 과정에 귀중한 지혜가 깃들어 있음을 알아보고 있다. 예를 들어, 뜨개질이 지나치게 빡빡한 아이는 글씨를 쓸 때도 과도하게 힘을 주고, 삶을 대하는 영혼의 태도 또한 긴장되고 불안한 상태다. 교사가 이런 상태를 제대로 알아보고 적절하게 지도할 때, 수공예 활동은 치유의 힘으로 작용한다. 뿐만 아니라 수공예는 아이와 주변 세상 사이 긴장감이 과하거나 부족해서 개입이 필요할 때 효과적인 치유책이 될 수 있다.
--- p.151
청소년 교육의 핵심은 의지력을 집중해서 발휘할 활동을 제공하는 것이다. 현대 사회는 십 대 청소년들에게 할 일을 주지 않는다! 그 나이까지 살아오면서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아도 거의 모든 일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아이들은 그저 빈둥거린다. 심드렁한 태도로 축 늘어져 있다가 ‘호르몬성 사고뭉치’가 된다. 하지만 실용 공예 수업을 통해 과제로 의지의 힘이 흘러갈 물꼬를 터 주면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겉도는 태도 대신 삶 속으로 깊이 들어오고 지상의 삶에 온전히 육화한다.
--- p.168
교사의 과제는 청소년들이 고통스러운 내면 탐색을 잘 헤쳐 나가도록 안내하는 것이고, 갈 길을 찾지 못하고 갇혀 버린 의지력을 해방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작업할 때 모든 대상이 스스로 드러내는 것을 알아보는 눈을 갖도록 돕는 일이다. 아이들은 자기 의도를 그대로 구현하지 못하더라도 여러 차례 변형되는 과정을 겪어 가며, 나무나 돌 같은 재료에 귀 기울여 함께 작업하는 법을 터득해야 한다. 이는 무수한 반복을 거치면서 깨달아 가는 과정이다.
--- p.169
높은 수준의 판단력과 엄격한 지적 사고를 요구하는 공예 활동은 졸업이 머지않은 상급 과정 학생들에게 진정한 힘을 키우도록 돕는다. 단계마다 엄격함과 숙고, 예단을 내려야 하는 활동을, 지속 가능하며 환경 친화적인 맥락에서 수행하는 과제는 청소년들을 새로운 실천 영역으로 이끄는 동시에 행위를 위한 새로운 윤리를 향해 나아가게 한다.
--- p.298
최신 신경학 연구는 소근육(특히 손)을 자유롭게 움직이고 능숙하게 조절하는 활동이 사고를 위한 신체적 도구인 뇌 세포 성장을 자극하고 강화한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이 책의 공동 필진의 의도는 이런 연구의 타당성을 입증하는 한편, 독자들이 발도르프학교의 수공예와 실용 예술 교과 과정 전체를 조망하면서 이런 수업이 아이들 성장 발달에 얼마나 큰 힘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 주려는 것이다. 복잡다단한 현대 사회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여러 형태의 사고(분석적, 통합적, 목적론적, 인과적 사고 등)를 배워야 한다. 우리 교사들의 과제는 다양한 유형의 사고를 과목 내용에 통합시키는 것이다. 발도르프학교에서는 학생의 인지 능력을 육성하기 위해 판단력과 분별력, 안목을 훈련하는 과정을 중요하게 여기며, 그 주된 수단이 바로 수공예와 실용 예술이다.
--- p.301~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