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보다도 나는 여성을 단순한 객체로 다루며 평등한 존중이나 온전한 자율성을 부정하는 일상적 경향 속에 교만이라는 악이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논할 것이다.
---「서문」중에서
찰스 디킨스가 프랑스 혁명의 특징을 설명하는 데 사용한 두 가지 묘사 중 하나는, 정의에 대한 요구가 정의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는다는 보복적인 감정을 발생시킬 수 있고 이것이 결국 인류의 진보를 가로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남성과 여성을 생각해 보면 작금의 시대 역시 이와 유사한 위험을 끌어안고 있다.
---「서문」중에서
존 스튜어트 밀이 1869년에 이미 말한 바 있듯이, 남성들이 여성은 할 수 없다고 믿으면서도 여성이 무언가를 하지 못하게 배제하고자 그토록 열심히 노력했다는 것 자체가 여성이 무능력에 대한 성차별주의자들의 판단에 확신이 없었음을 반증한다.
---「대상화―사람을 물건으로 대하기」중에서
성폭력은 저 멀리 있는 ‘역겨운’ 개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 사회에 만연한 특성에 의해 자라난 것이다. 사실상 거의 모든 사회와 마찬가지로 미국 역시 여성을 남성만큼 중요하게 여기지 않으며, 여성을 종속적인 존재로 정의하는 확고한 남성 특권 문화를 키워 왔다. 하지만 상황이 더 나빠졌다. 앞으로 보게 되겠지만 이러한 배경들은 (상당 부분 진정성을 보이더라도) 사랑과 존중이라는 주장들로 뒤덮여 있을 때마저 완전하고 동등한 인간성을 지닌 여성을 부정하며, 여성을 상품이나 남성의 이용 대상 같은 특정한 방식으로만 다룬다.
---「대상화―사람을 물건으로 대하기」중에서
교만에 대한 흄의 논의는 많은 통찰을 담고 있지만 가장 기본적인 주장은, 교만이란 양쪽으로 향해 있는 사유가 쾌감과 조합되어 있다는 점이다. 양방향 사유 중 하나는 객체(당신이 자부심을 느끼는 대상)을 향하고, 다른 하나는 자아(당신이 자부심을 느끼는 이유)로 향한다. 흄은 전자를 감정의 ‘객체(object)’라 불렀고 후자를 ‘이유(cause)’라 불렀다. 즉, 아름답고 값비싼 집을 가진 사람이 그 집에 자부심을 느끼는 이유는 그 집이 자기 소유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집은 쾌감을 불러일으키는 계기일 뿐이지, 그 쾌감이 미학적인 감정은 아닌 것이다. 그 집이 만족감을 주지만, 그 만족감이 집 자체에서 오거나 집이 전부인 것은 아니다. 그 만족감의 대상은, 즉 진짜 초점은 자아에 씨다. 이렇듯 교만은 존경이나 사랑과 구별된다.
---「지배라는 악덕?교만과 탐욕」중에서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사람들은 구분한다. 흑인과 백인을 모두 포함한 노예제 폐지론자들은 보통 인종적 교만을 매도하는 동안에도 젠더적 교만은 지니고 있었다. 여성들은 노예제 폐지 공론장에 들어서지도 못했기에 스탠턴 역시 입장을 거부당했으나, 평범했던 그녀의 남편은 참석할 수 있었다는 것이 그 일례다. 지금쯤이면 우리도 최소한 교만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어떻게 젠더적 교만이 서서히 퍼지는 형태가 되었는지에 대해 가장 기초적인 자각은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지배라는 악덕?교만과 탐욕」중에서
때때로 사람들은 한 가지 종류의 교만에 좀 더 강력하게 매달리는데, 이는 다른 종류의 교만에 대해 불안을 느낄 때 특히 두드러진다. 계급, 인종, 정치권력, 직업, 다른 지위상의 이점들에서 취약함을 느낄 때 남성들이 매달릴 수 있는 단 하나의 교만은 바로 남성이 젠더적 교만이다. 이러한 젠더적 교만은 모든 사회에서, 그리고 그 사회 내 모든 집단 속에서 학습되며 주장할 만한 다른 이점이 없는 남성들에게 우월감을 느낄 여지를 준다.
---「지배라는 악덕?교만과 탐욕」중에서
법은 모두에게 말한다. 집행에 잘못이 있거나 완전히 평등하지 못할 수 있어도, 그래서 중대한 구조적 개혁이 시급할지라도, 법은 시민권의 언어, 권리의 언어로 말한다. 여성은 강간당하지 않게 해 달라 간청할 수 있다. 직장에서 괴롭힘이 없기를 희망할 수 있다. 하지만 법은 간청하거나 요구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이런 요구들은 당신에게 권리로 보장된다고 일러준다. 일터에 해당 사항이 보장되어 있지 않다면 당신은 법정으로 가서 요구할 권리가 있다. 당신이 특별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모든 이가 권리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를 직면하기 시작한 법」중에서
이성이 지지해 줄 희망이 없는 곳에서도(사실 희망은 언제나 이성에 의해 완벽하게 지지받지 못한다.) 페미니스트들은 희망하는 사람들이 되어야만 한다. 상호성과 자율성의 존중이 점차 교만을 쫓아내면서 오랫동안 지배에 기반을 두었던 여성과 남성의 관계가 링컨이 “새로운 자유의 탄생”이라고 일컬었던 것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희망을 가져야 한다.그 새로운 자유만이, 그리고 그 사랑만이 정의롭고 지속되는 평화를 진정으로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결론」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