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집에 가서 해장술에 술국밥을 먹었다. 시골서는 먹어보지도 못하던 것인데 값도 꽤 싸다 하였다. 물론 돈은 형근이가 치렀다. 인제는 주머니밑천이라고 은화 이십 전 하나하고 동전 몇 푼이 남았을 뿐이다. 그러나 그는 내일은 일구녕이 생기겠지 하였다. 돌아오는 길에 그자는 형근의 행장에 무엇이 있는가 물었다. 그는 조선 무명 홑옷 두 벌과 모시 두루마기 두 벌과 삼승 버선이 한 벌 있다 하였다. 그것은 자기 집안이 풍족할 때 자기 아버지가 장만하여 두고 입지 않고 넣어두었던 것을 이번에 자기 아내가 행장에 넣어주었던 것이라 그것이 그에게는 다시없는 치장이요 또는 문벌 자랑거리였다. 그자는 그 말을 듣더니 코웃음을 웃으면서 형근을 비웃었다.
“그까짓 것은 무엇에 쓴단 말이오, 여보.”
형근이 자기 속으로는 무척 자랑삼아 말한 것이 당장에 핀잔을 받으니까 무안하기도 한 중에 또 이상스러웁고 놀라웠다. 이런 곳에서는 그런 것쯤은 반 푼어치의 값이 없나 보다 하는 생각을 하니까 자기의 말한 것이 창피하기도 하고, 딴에는 자기가 무슨 사치하고 영화스러운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나 보다 할 때 즐거웠다.
---「지형근」중에서
“안 왔더라.”
하는 어머니의 마음은 매우 마땅치가 않은 모양이다. 하루 종일 앓는 애를 달래고 약 먹이고 할 적에 귀찮은 생각이 날 적마다,
“원수엣자식, 원수엣자식.”
하며 혼자 중얼대다가 자기 딸을 보면은 더욱 화가 치밀어
‘무슨 업원으로 자식은 나가지고 구차한 살림에 저 혼자 고생을 하는 것도 아니요, 늙은 에미까지 이 고생을 시키는고?’
하는 생각이 나서 차마 인정에, 산 자식 죽으라고는 못 하지마는 어떻든 원수 같은 생각이 나서 못 견딜 지경이다.
수님이는 오늘도 목사 오기를 기다린다.
“어째 여태까지 오시지를 않을까요?”
“내가 아니? 못 오게 되니까 못 오는 게지.”
수님이는 어머니의 성미를 알므로 거스를 필요는 없어 아무말도 없이 앉아 있다가,
“어서 저녁이나 해 먹읍시다. 기저귀는 내 개킬게 어서 나가셔서 쌀이나 씻으시우.”
어머니는 화풀이를 하다 못해 잔말이라도 하고 싶어서 말마다 불복이다.
---「자기를 찾기 전」중에서
‘술 먹으면 웬일인지 일상 좋더라! 이런 때 영숙이나 있었으면 오죽 좋을라구. 떡 술이 취해서 들어오면 반가워 맞으면서 옷도 벗겨주고 자리도 깔아줄 터이지. 그러고는 ‘어디서 약주를 이렇게 자셨어요? 저는 약주 잡수시면 싫어요. 에그, 보기 싫어!’ 하고서 살짝 돌아앉지만, 허허 그렇지 나는 슬그머니 타이르느라고 ‘인제는 안 먹을게, 응! 이리 와!’ 하고서 잡아다니면 ‘싫어요!’하고 톡 쏘는 얼굴에는 참지 못하는 웃음을 가리느라고 더욱 고개를 돌리렷다. 그러면 나는 거짓 항복을 하여가면서 ‘글쎄, 안먹는다니까, 안 먹어요, 안 먹어!’ 그러면 영숙은 일부러 한참이나 있다가 ‘무얼 안 먹어? 제 버릇 개도 안 준다고 한번 밴 버릇을 고칠 수 있나!’ 하고 가만히 앉았으면 나는 슬그머니 그의 겨드랑이를 간질여보자. 그러면 깜짝 놀라서 돌아앉으며 ‘왜 이래요’ 하면서 참았던 웃음이 툭 터지렷다. 그러면 나는 그의 두 팔을 꽉 붙잡고서 ‘이리 와, 이제는 술 안 먹을 테니!’ 그러면 처음에는 팔을 빼려다가 제비같이 나의 가슴으로 달려들며 ‘인제는 약주 잡숫지 마세요, 네네?’ 하면서 간청을 할 터이지! 에그, 그저 고것을 어떻게 하나! 그만 진저리가 치기도 어렵거든!’
하고서는 혼자 벙싯벙싯한다. 그러다가는 다시 웃옷을 벗고서,
‘그렇지 그래.’
---「춘성」중에서
“왜 그러세요. 조금 잡숫지요.”
“아니다, 저기서 먹었다. 오늘 교인 심방을 하느라고 이리저리 다니다가 명철이 집에 갔더니 국수장국을 끓여 내서 한 그릇 먹었더니 아직까지도 배가 부르다.”
어머니는 차리던 상을 그대로 놓고 부엌문에서 나오며,
“명철이 집이요? 그래 그 어머니가 편찮다더니 괜찮아요?”
“응, 인제는 다-낫더라. 그것도 하느님 은혜로 나은 것이지.”
우리 할머니는 그 동리 교회 전도부인이다. 우리 집안은 본래 우리 할아버지와 우리 아버지 사이가 좋지 못하여 따로따로 떨어져 산다. 그리고 우리 할머니는 열심 있는 교인이요 진실한 신자이지마는, 우리 아버지는 종교에 대하여 냉혹한 비평을 하는 사람이었다.
우리 할머니는 본래 교육이 있지 못하다. 있다 하면 구식 가정에서 유교의 전통을 받아오는 교육이었을 것이며, 안다 하면 한문이나 국문 몇 자를 짐작할 뿐이요, 새로운 사조와 근대 사상이라는 옮기기도 어려운 문자가 있는지도 알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열두 살 되던 그해에는 다만 우리 할머니를 한개 예수 믿는 여성으로 알았었으며, 하느님이 부리는 따님으로만 알았었다. 종교에 대한 견해라든지 신앙이란 여하한 것인지를 알지 못하였다.
---「옛날 꿈은 창백하더이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