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이후 지난 70여 년간 남북한 군사적 갈등과 긴장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우리 사회는 평화를 주로 국가 간에 발생하는 군사적 갈등과 전쟁을 종식하는 것으로, 특히 남북한 사이 전쟁을 억지하고 군사적 긴장을 해소하는 것으로 이해해 왔다. 그러나 평화는 이처럼 소극적인 차원에서 좁은 의미로만 정의될 수 없다. 실제로 지난 몇 년간의 통계는 전 세계적 차원에서 개인 간에 발생하는 갈등과 폭력으로 사망하는 사람(매년 약 40-50만 명)이 국가 간에 발생하는 갈등과 전쟁으로 사망하는 사람보다 3-4배 이상 많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또한 전 세계적 차원에서 나타나는 기후위기와 자연재해, 빈곤과 기아, 질병,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적 억압과 차별 등으로 매년 수백만 명이 사망하고 수억 명이 고통받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평화를 국가 간에 발생하는 군사적 갈등과 전쟁의 종식으로만 이해하는 것은 평화를 너무 좁게 해석하는 것으로, 보다 적극적인 관점이 필요하다.
--- pp.5~6
현대 평화학의 목표는 갈퉁의 영향 아래 전통적 의미에서 단순히 국가들 사이 전쟁과 폭력, 갈등 문제를 해결하고 평화를 실현하는 것을 넘어선다. 특히 최근에는 넓은 의미에서 사회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고, 사회 구조와 제도에 내재된 억압과 차별을 철폐하고 인권을 보호함으로써 보다 정의로운 사회를 구현하며, 전 지구적 차원에서 인류가 직면한 기후위기와 환경 문제, 인구 문제, 빈곤 퇴치와 자원 고갈 등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고 지속가능발전을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러한 점에서 현대 평화학의 가장 중요한 실천적 과제는 2015년 제70차 유엔총회에서 인류 공동의 목표로 채택한 지속가능발전목표(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SDGs)의 실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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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퉁의 주장에서 주목할 것은 소극적 평화와 적극적 평화의 구분이다. 소극적 평화가 전쟁의 부재를 의미하는 반면, 적극적 평화는 구조적 폭력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적극적 평화는 폭력의 유발 요소가 존재하지 않는 상태, 즉 사회정의가 실현된 상태다. 일상에서 흔히 쓰는 “전쟁과 평화”라는 표현에서는 전쟁이 평화와 대척 개념이므로 전쟁이 없으면 평화다. 하지만 갈퉁은 평화를 전쟁의 부재보다 더 넓은 의미로 파악한다. 이런 맥락에서 갈퉁은 1969년 발표한 논문에서 구조적 폭력이란 개념을 제시했다(Galtung, 1969). 구조적 폭력은 직접적 폭력은 아니지만 구조화 또는 제도화된 억압과 불평등으로 대다수 사람이 인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발생한다는 점이 문제다.
구조적 폭력은 빈곤, 결핍, 박탈, 건강 문제, 조기 사망, 억압 등에 의한 사회적 부정의(social injustice)의 상태다. 갈퉁은 구조적 폭력과 동일 선상에서 문화적 폭력을 설명한다(Galtung, 1990). 문화적 폭력은 종교, 이데올로기, 언어, 예술, 과학 등에서의 상징 영역이 직접적 폭력 또는 구조적 폭력을 정당화하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문화적 폭력은 직접적 폭력과 구조적 폭력이 옳은 것처럼 보이게 하거나 그렇게 느끼게 하며, 또는 최소한 잘못되지 않은 것으로 보이게 하거나 느끼게 만든다. 문화적 폭력은 지속적이며 내면화된다는 해악을 지니고 있다.
--- pp.128~129
인간은 왜 파괴적인 전쟁을 일으키는 것일까? 인간 사회에서 전쟁은 어떠한 의미와 역할을 가지는가? 전쟁의 본질과 그 역할을 이해하는 것은 전쟁을 어떻게 하면 잘 수행해 가장 효과적이고, 확고한, 빠른 승리를 이끌어 낼 것인가 하는 질문에 연결된다. 이에 대한 대답을 본격적으로 시도한 책이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On War)』이다. 이론가 이전에 어릴 때부터 전쟁터에서 잔뼈가 굵은 군인으로서 평생의 경험을 바탕으로 전쟁의 실체적 모습을 보여 주고자 했던 그의 저서는, 과연 전쟁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이해할지에 관해 최초로 과학적이고 심도 있는 분석을 한 연구로 인정된다(Clausewitz, 1993, viii).
18세기 유럽의 신흥 강국으로 부상한 프러시아 태생의 클라우제비츠는 12세에 견습생으로 군에 입대해 이후 25년을 당시 유럽을 휩쓴 나폴레옹전쟁에 참여한다. 전장에서 은퇴하고 38세의 나이에 사관학교 교장으로 임명된 후 10년이 넘게 전쟁에 관한 가장 체계적이고 방대한 연구를 했다. 집필 중 갑자기 병사하면서 미완성으로 남은 원고는 사망 1년 후 부인, 마리아 클라우제비츠가 정리해 1832년에 출간된다. 군인의 입장에서 ‘어떻게 하면 전쟁에서 잘 싸워 이길 수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시작된 클라우제비츠의 연구는 결국 ‘전쟁은 정치 행위다’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전쟁이 단순한 살상이나 파괴를 위한 무의미한 폭력의 사용이 아니라 “군사적 수단에 의한 정치의 연속(continuation of politics by military means)”이라는 것이다.
--- pp.165~166
앨리슨을 비롯한 근대 현실주의자들이 강대국 간 세력균형의 전이를 역사상 주요 전쟁의 가장 큰 원인으로 주목하게 된 계기는 기원전 5세기경 투키디데스가 스파르타와 아테네 사이에서 발생한 전쟁의 역사를 기록한 『펠로폰네소스 전쟁사(The History of the Peloponnesian War)』 때문이다. 투키디데스는 기원전 431년에서 404년의 27년간 패권국인 스파르타와 신흥 강자로 부상한 아테네를 중심으로 벌어진 전쟁에서 아테네의 장수로서 직접 해군을 이끌고 전투에 참전했다. 그러나 전쟁에서 패배한 투키디데스는 스파르타군에게 붙잡히게 되고 포로로 유배 생활을 하는 동안 아테네가 몰락하는 것을 목격한다.
한때 그리스 세계를 호령하던 아테네의 충격적인 몰락과 그리스 전체를 참화로 몰아넣은 전쟁의 기원과 전개를 자기 나름대로 객관적인 서술 분석을 시도한 투키디데스는 아테네의 무리한 패권적 정책과 페리클레스라는 탁월한 지도자의 갑작스런 죽음, 이후의 국론 분열과 선동 정치가의 실정을 아테네 몰락의 일차적 원인으로 기술한다. 동시에 이 모든 비극의 원인을 개인의 잘못이나 우발적 사건에서 찾기보다 급속하게 신장한 아테네의 세력과 이를 두려워하게 된 스파르타 간의 세력 전이라는 명제를 제시한다. 투키디데스는 8권으로 구성된 저서 1권에서 “대부분이 무시한, 전쟁의 진정한 원인은 아테네의 부상하는 힘과 이에 대한 스파르타의 위기의식이다”라고 분석한다(Thucydides, 1972). 오늘날 부상하는 중국과 패권국인 미국 사이에 전쟁이 일어날 가장 위험한 가능성을 경고하는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라는 용어가 탄생한 배경이다.
--- pp.180~181
코로나19로 경제활동이 줄어들면서 공기가 깨끗해지고 환경이 되살아나는 현상은 폭력적인 방식이긴 하지만 현대 산업문명에서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극명하게 드러내면서 안전과 생명에 더욱 주목하게 만들었다. 1995년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파울 크뤼천(Paul Crutzen)은 유진 스토머(Eugene Stoermer)와 함께 2000년에 “인류세(the Anthropocene)”란 글을 발표했다(Crutzen and Stoermer, 2000). 인간이 지구 시스템에 영향을 받기만 하는 수동적 존재가 아니라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지구 시스템을 변화시키는 존재가 되어 버렸음을 근거로 이러한 지질시대를 그 이전과 구분해서 “인류세(Anthropocene)”로 이름 붙였다. 변화된 지구 시스템의 대표 사례가 바로 기후 체계로서, 기후위기는 인류의 사회경제 활동이 가져온 엄청난 결과를 보여 준다.
자연의 역습이라 불리는 코로나19로 인간의 경제활동이 강제적으로 멈춰지거나 잦아들었고, 그 결과 되살아나는 지구 생태계를 경험할 수 있었다. 이는 역설적으로 인간의 사회경제 활동으로 인한 환경 파괴가 얼마나 큰가를 웅변한다. 문제는 사회경제 활동의 본질적 전환 없이는 이러한 변화가 일시적인 것에 그치고 만다는 점이다. 인류가 다시 코로나19 이전과 같은 경제활동 방식을 재개한다면, 환경 상태와 온실가스 배출은 예전 수준으로 회귀해 버리고 말 것이다.
--- pp.298~2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