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 철학을 계승하고 발전시킨 인물은 헤겔 좌파라고 말할 수 있다. 물론 그들은 헤겔을 비판하였지만, 비판 속에서 헤겔을 자신의 이론에 대한 배경으로 전제하고 이 전제 위에서 그들의 사상을 전개한다. 특히 헤겔의 변증법적 사고는 마르크스, 엥겔스와 그들의 후예들에게 사고의 틀을 제공한다. 키에르케골과 니체 역시 헤겔 철학의 배경 위에서 현실의 기독교를 비판한다. “이성이 세계를 다스린다”는 헤겔의 생각은 이성적인 정치질서, 이성적인 사회질서를 세우고자 하는 헤겔 좌파의 노력과 투쟁에 동기를 부여한다. 헤겔의 “부정적인 것의 부정”의 원리, 곧 변증법적 원리는 현실에 있는 모든 비이성적인 것, 부정적인 것을 극복하고, 인간을 노예화시키는 사회 제도와 질서를 폐기하고자 하는 투쟁으로 구체화된다.…전체적으로 헤겔 좌파는 헤겔 철학을 붕괴함으로써 사실상 헤겔 철학을 구체화하고자 했던 “헤겔의 제자들”이라 볼 수 있다.
---「서론」중에서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하면서 포이어바하는 자신의 길을 찾는다. “순수한 논리적 입장이나 형이상학적 입장이 아니라 심리학적 입장”을 찾는다. “인간에 대한 이성의 관계, 개별자에 대한 보편자의 관계, 개인에 대한 사유의 관계, 몸에 대한 정신의 관계,…인간과 인간의 끈, 나와 너의 동일성”을 다룰 때, “안티 헤겔”이 그 자신 속에 이미 숨어 있었다고 그는 나중에 고백한다(1976, 230).
---「제1부 포이어바하」중에서
마르크스의 사상 전체는 “철학적”이라 말할 수 있다. “그의 경제적·사회-혁명적 요구들은 헤겔 철학과의 논쟁 속에서 생성된 철학적 기본 사상들의 마지막 귀결로 이해될 수 있다.” 이 귀결은 마르크스가 헤겔 철학을 잘못 이해했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헤겔 철학에 대한 철저한 연구에서 나온 것이었다. “마르크스는 헤겔의 제자들 가운데 헤겔의 역사철학적 사상의 넓이와 깊이를 가장 잘 파악한 인물이었다. 이리하여 마르크스만이 헤겔 철학을 가장 날카롭게 공격할 수 있었다”(Landgrebe 1954, 39-40). 그는 헤겔 철학과의 논쟁에서 자신의 사상의 전제를 발견하였다. 이 전제에서 생성된 마르크스의 사상은 “철학적 사상들과, 이 사상들 안에서 세워진 실천적-혁명적 요구들의 통일체”로 이해될 수 있다(46).
---「제2부 마르크스」중에서
헤겔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존재론적·세계사적 원리로 만들어버린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시되는 하나님과 인간의 변증법적 관계, 곧 “구별 속에서의 일치”(Einheit in Unterschiedenheit)와 “일치 속에서의 구별”의 변증법을 세계사의 변증법적 원리로 만들어버린다. 이 변증법적 원리는 인간의 사유와 세계사의 과정에서 실현된다. 이를 통해 하나님과 인간, 하나님과 세계사의 화해가 이루어진다. 인간은 하나님과 통일성 속에 있는 “정신적 존재”로, 세계사는 하나님의 구원사로 파악된다. 여기에 하나님 앞에서의 회개와 신앙의 결단은 불필요해진다. 그리스도의 뒤를 따르는 일도 불필요해진다. 하나님과 인간의 인격적 관계성은 사라지고, 인간의 사유와 세계사의 변증법적 운동이 있을 뿐이다. 키에르케골의 입장에서 볼 때, 이것은 기독교의 폐기를 말한다. 하나님 앞에서의 회개와 인격적 신앙의 결단이 없는 기독교는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헤겔의 철학적 신학 내지 신학적 철학의 귀결이다. 이에 반해 키에르케골은 하나님과 인간, 신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의 무한한 질적 차이를 주장하고, 이 질적 차이는 철학적으로, 존재론적으로 극복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신앙을 통해”(sola fide) 극복될 수 있다고 말한다. 하나님 앞에서의 겸손과 회개, 신앙의 결단, 그리스도의 뒤를 따르는 삶을 통해서만 극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제3부 키에르케골」중에서
니체의 철학은 헤겔 철학에 대한 안티테제로 형성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니체는 헤겔 철학에 대한 반란을 자신의 철학의 목적으로 삼지 않는다. 그러나 약 2,000년 동안 서구 사회를 지배한 “관념론적 형이상학”(W. Windelband의 철학사에서 빌린 개념임)에 대한 니체의 안티테제는 헤겔 철학에 대한 안티테제이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니체는 그의 문헌 곳곳에서 헤겔 철학을 비판한다. 헤겔이 말하는 정신의 개념은 “우리의 모든 개념, 우리의 문화-개념(Kultur-Begriff)”이 되었다. 그러나 헤겔의 “정신은 예수가 살던 세계에서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는 니체의 말은(1978b, 224), 헤겔 철학의 기초와 출발점 자체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다.
---「제4부 니체」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