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이라는 것은 무엇을 알아내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망상을 쉬는 것, 그것이 깨달음입니다. 쉬면 밝아져요. 생각이 앞을 가려서 어두운 것이지, 생각을 쉬면 환해집니다. 그것이 자기가 자기 눈을 보는 것과 같고, 내가 나를 보는 것과 같고, 내 집에서 내 집으로 가는 것과 같습니다. 내 집에서 내 집으로 가는 것은 자기 집에서 자기 집을 아름답게 잘 꾸미면 되는 것입니다. 부지런히 공덕만 지으면 된다는 말씀입니다.
--- p.29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만 없으면 눈으로 무엇을 보아도 그것이 해탈입니다. 어떤 기억이 나도 기억이 나는 것을 따라가지 않으면 바로 그것이 해탈입니다. 그래서 마음공부의 기본은 집착이 없는 것입니다. 집착심에서 벗어나면 그것이 근본적으로 마음공부를 하는 것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 p.52
수행의 목적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깨달음입니다. 그러면 세상에서 추구하는 재산, 권력, 명예, 애정의 재권명애財權名愛 등을 원하지 않고 왜 깨달음을 원하는 것일까요? 우선 이것에 대한 깊은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믿음이 없으면 수행이 되지 않습니다. 재권명애가 배고플 때 한 끼 요기하는 정도라면, 깨달음의 만족은 백겁천생을 두고 무진안락無盡安樂을 다 누리는 것과 같습니다. 재권명애가 그저 잠시 지나가는 아지랑이와 같은 것이라면, 깨달음의 세계는 길이길이 없어지지 않는 밝은 광명과 같은 것입니다.
--- p.80~81
보시, 지계, 인욕은 세간世間에 머무르는 것이고 정진, 선정, 지혜는 출세간出世間에 머무르는 것입니다. 이것을 합쳐서 ‘부주세간不住世間 부주열반不住涅槃, 세간에도 머무르지 않고 열반에도 머무르지 않는다.’라고 합니다. 보시, 지계, 인욕은 이타행이고 정진, 선정, 지혜는 자리행이니, 전부 반야바라밀을 실행하는 것입니다.
--- p.106
무심은 망상, 번뇌, 망념이 하나도 없는 상태입니다. 빈 병이라고 하면 병이 없는 것이 아니라 병 안에 물건이 없는 것입니다. 빈 집이라고 하면 집이 없는 것이 아니라 집 안에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듯이 ‘없는 마음’, 무심이라고 하면 마음 자체가 없는 것이 아니라 마음 안에 번뇌 망상이 없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 p.124~125
참다운 보배는 자기 집 안에 깊숙이 감춰져 있는 것입니다. 자기 집 안에 감춰져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이 바로 ‘마음’입니다. 마음이라고 이름하는 바로 그것입니다. 그것을 찾는 것을 마음공부라고 합니다.
--- p.168
마음공부는 아주 불가사의한 공부입니다. 보통 평범한 생각으로는 할 수 없는 공부입니다. 세상에 많은 공부가 있지만 마음공부는 그 효과를 말한다면 이루 표현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효과가 있는 공부입니다. 비유하면 천만 년 억만 년 동안 나그네로 떠돌며 살던 사람이 털끝 하나 까닥하지 않고 자기 집에 가는 것과 같습니다. 또 어떤 사람이 최고 부자였는데 자기가 부자인 줄 모르고 힘들게 살다가, 털끝 하나 까딱하지도 않고 그 자리에서 재산을 다 찾는 것과 같습니다. 그만큼 불가사의한 공부입니다.
--- p.220
사람에게 있어서 제일 어려운 순간이 죽는 순간인데요, 복을 지은 기억이 많이 나면 죽을 때도 편안해요. 죽는 순간에 죄를 지은 기억이 떠오르면 아주 괴로운 것입니다. 그래서 죽을 때 편안하게 죽는 사람은 평소에 복을 많이 지은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것, 좋은 일 했던 것, 이런 기억을 많이 가지고 죽는 사람은 아주 복되게 죽는 사람입니다.
--- p.271
제가 젊었을 때 불교 공부를 하면서 아주 궁금한 것이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 첫째 궁금한 것은 ‘부처님이 깨달으셨다고 하는데 무엇을 깨달으셨을까? 둘째는 ‘부처님에게도 노老 · 병病 · 사死가 있었다면 부처님께서는 노 · 병 · 사를 어떻게 해결하셨을까?’입니다.
--- p.308
불교의 수행을 개별과 회통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수행 방편은 아주 다양한데 그 낱낱이 실은 전부 하나로 돌아갑니다. 낱낱이 다른 것은 개별이고, 다른 것이 하나로 돌아가는 것은 회통입니다. 한국불교의 전통수행 항목으로는 참선參禪, 염불念佛, 간경看經, 그리고 송주誦呪를 강조합니다. 참선하고, 염불하고, 경 보고, 다라니 외우는 것이 한국불교 전통수행의 네 가지 큰 항목으로 요약되는 것입니다.
--- p.328
마음의 근원을 밝히면 이변삼제二邊三際가 끊어졌다고 했습니다. ‘있다’ ‘없다’가 이변이고, 과거 현재 미래가 삼제입니다. 그래서 자리에서 일어나기 전에도 다 되었고, 일어났을 때도 다 되었고, 일어난 다음에도 다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내가 법왕이 되어서 법에 자재한다.’라는 뜻입니다. 내가 마음을 비추어 보지 못하면 항상 이 말에 걸려서 보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열심히 참선하고, 염불하고, 간경하고, 송주하고, 공덕 짓고 하면, 그것이 내가 나에게 돌아가서 생사와 모든 환경에 자재하는 법이라는 것입니다.
--- p.3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