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너의 커뮤니케이션 개념은 커뮤니케이션 연구에서의 개념보다 넓다. 첫째, 커뮤니케이션 주체는 인간만이 아니라 동물, 나아가 기계까지도 포함한다. 기계가 커뮤니케이션 주체가 된다는 것은 인간 커뮤니케이션만을 다루는 커뮤니케이션 연구 전통과는 다른 것이지만, 새롭게 등장하는 AI와 커뮤니케이션 연구에서는 핵심적인 주제가 된다. 둘째로, 위너는 동물이든 기계든 위의 커뮤니케이션 주체들 사이의 커뮤니케이션뿐만 아니라 환경과의 정보 교환도 커뮤니케이션의 범주에 포함시킨다. 이는 사이버네틱스 전통의 고유한 개념이지만, 커뮤니케이션 상대자로서의 미디어와 삶의 환경을 구별할 수 없게 되는, 달리 말하면, 미디어가 환경이 되는 최근의 상황을 고려하면 이런 개념 확장 또한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1장 알고리듬 미디어: 개념과 이론틀」중에서
기계적 결정론을 따르는 1단계 알고리듬 체계와 달리, 2단계 알고리듬 체계는 RNN(recurrent neural network)으로 대표되는 연계주의나 유전 알고리듬에서 보듯, 알고리듬의 “창발성” 기제에 주목한다. 즉 알고리듬은 창발과 자기조직화, 두 가지 원리를 근간으로 하는 자기생산 체계로 규정된다. 이는 과타리가 기계의 개체발생이라고 부른 것이다. 예를 들어, 존 콘웨이의 생명의 게임에서 보듯, 셀룰라 오토마타 알고리듬은 단지 세 줄로 기술될 수 있는 단순한 규칙으로 시작하지만 몇 단계만 ‘진화’하면 글라이더와 같은 독특한 패턴을 생성한다. 그러나 자기생산적 알고리듬의 특징은 새로운 패턴의 생성에만 그치지 않고 자신의 생산 기제를 스스로 생산해 내는 자기조직화에 있다. 다시 말하면, 알고리듬은 주어진 논리들의 집합, 즉 규칙에서 시작하지만 데이터를 처리하면서 데이터를 처리할 규칙과 논리를 스스로 변화시켜 나간다는 것이다.
---「3장 알고리듬 체계」중에서
그러나 그 앞에 앉아 있는 상대는 알파고가 아니라 컴퓨터 화면을 보고 바둑판에 알파고의 수를 대신 놓아만 주는 딥마인드의 아자황이었다. 그는 복기를 할 대국 당사자가 당연히 아니다. 이 상황은 인간 이세돌이 복기를 하려고 해도 그 상대가 없다는 점에서 소통 불가능성(ex-communication)을 드러낸다. 이세돌은 알파고로부터 배제된 것이다.
---「7장 AI와의 커뮤니케이션」중에서
여기서 중요한 점은 기계가 나보다 나 자신을 더 잘 안다는 것이다. 이는 기계가 추출한 데이터의 진리값을 인정하는 것이다. 측정한 데이터로 구성된 또 다른 나의 존재 양식을 케빈 켈리는 “외재자아(exoself)”라 부른다. 셋째로, 이런 과정은 인지적, 의식적 수준이 아닌 전의식적, 비반성적 수준에서 이루어진다. 이렇게 될 때 자기-추적 기술은 인간 (의식)을 우회하는 초월적 기술이 된다. 여기서 ‘나’는 의식하고 판단하는 주체와 데이터로 구성되는 또 다른 자아로 분열된다. 이럴 때 문제는 후자, 즉 초월적 기술이 만들어 내는 “외재자아”가 전자, 즉 의식적 주체에 우선하고 그것을 압도한다는 것이다.
---「7장 AI와의 커뮤니케이션」중에서
아마존의 예기적 배송이나 스포티파이의 추천 서비스는 인식론과 존재론의 측면에서 마수미가 규정한 군사정치적 선제와 공명한다. 먼저 인식론의 측면에서 정치군사적 선제는 잠재적인 위협이 야기하는 공포가 새로운 원인으로 생산된다면, 상업적 선제 서비스는 불확실한 경쟁 시장의 상황에도 불구하고 창출해야 할 이윤 욕망이 새로운 원인으로 생산된다. 양자 모두 미성숙과 비가시성이 불확실성의 원천이라는 점에서는 같으나, 소비자의 데이터 분석을 통한 예측에 의거하는 상업적인 선제 서비스는 컴퓨터 연산의 내재적 우발성이 개재한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패리시는 이런 내재적 우발성을 “말랑탕튀(malentendues)”라 부르며, 이것이 현대사회의 포스트-사이버네틱 통제가 갖는 통치성의 원천적 한계라고 주장한다.
---「8장 선제 커뮤니케이션」중에서
이와 같은 이중성(혼종성)이 바로 핸슨이 말하는 피드-포워드 구조다. 한편으로는 원초적, 미시적 수준에서 직접 작용하면서 사고와 행동을 안내할 “성향”을 만들어 내고, 다른 한편으로 의식과 지각의 차원에서는 경험의 현시점에서 지각하거나 의식할 수 없도록 미래로 밀어내는, 즉 피드-포워드해 낸다는 것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이 이중성은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으로, 21세기 미디어는 자신이 전달하는 세계 감성을 의식할 수 없도록 미시 수준에서 피드-포워드함으로써 전지각적 차원에서의 정동적 성향의 창출을 가능케 한다는 것이다.
---「8장 선제 커뮤니케이션」중에서
페이스북의 경우, 친구라 명명되는 사람들의 네트워크 층위를 기반으로 그 위에 콘텐트 층위가 있는 것이라면, 즉 사람들의 네트워크를 따라 콘텐트가 흘러 다니는 것이라면, 인스타그램의 경우는 해시태그로 규정되는 콘텐트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사람의 네트워크가 확인되는 서비스다. 양자의 차이는 사람 네트워크와 콘텐트 네트워크 중에서 어떤 것이 기반이 되는가 하는 데에 있다. 즉 페이스북이 인간 중심적이라면, 인스타그램은 콘텐트 중심적이다. 페이스북과 달리 인스타그램에서 사람은 부차적이다. 이를 달리 표현하면, 페이스북 이용자는 주체적인 ‘개인(individual)’이라면, 인스타그램 이용자는 콘텐트의 해시태그가 횡단하며 엮어 내는 ‘분인(dividual)’이다.
---「9장 분인: AI와 개인의 종언」중에서
루브루아에 따르면, 알고리듬 통치성은 “정치, 법률, 사회적 규범 등에 의거하지 않고 빅데이터에 대한 알고리듬 분석에 의거하는, 사회적 세계에 대한 통치 방식”으로 정의된다. 다시 말하면, 알고리듬을 활용해 사회적 세계를 계량화하고 디지털화하는 것, 흔히 말하는 빅데이터의 분석과 활용이 통치의 주요 수단과 기반이 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알고리듬에 의한 빅데이터의 분석과 활용이고, 다른 하나는 이것의 비규범성이다.
---「10장 AI와 알고리듬 통치」중에서
기계학습의 목적은 궁극적으로 데이터 자체에 기반하는 가설들의 생산에 있다. 이는 어떤 의미인가? 루브루아와 번스는 “실재 자체로부터 규준(norms)이 바로 부상한다”고 표현하는데, 이를 풀어 말하면, 실재는 상관관계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런 상관관계가 바로 실재의 규준이라는 의미다. 참고로, 여기서 영어 norm이란 말은 우리말로 규준, 규범, 정상적인 것 등의 복합적 의미를 가지는데, 상관관계가 규준이 된다는 것은 상관관계라는 데이터 분석을 통해 정상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것이 이제 정치, 법률, 도덕과 같은, 세상을 규정하는 규범과 규준을 대체하게 된다는 것이다.
---「10장 AI와 알고리듬 통치」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