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할 것임을 저는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요. 그에게 이성이 단 한 조각이라도 있었더라면 우리를 찾아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태양 아래 살아가는 존재에게 가스로 이루어진 보석과 얼음으로 만들어진 은별이 대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입니까?”
그러자 얼음인들은 또다시 현자의 현명함에 놀라워했고 안심한 채 다정한 성에가 낀 안락한 집으로 각자 돌아갔다. 그때부터 아무도 크리오니아를 침략하려 하지 않았는데 이유는 우주 전체에 바보들이 사라졌기 때문이지만 몇몇 사람들은 바보들이 아직 많이 있는데 그저 길을모를 뿐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 p.20
바로 이 점에서 우리가 동화가 아니라 진실을 이야기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왜냐하면 동화에서는 언제나 미덕이 승리하기 때문이다.
--- p.64
“하지만 아주 나쁘다고도 할 수 없어. 내가 완전히 패배하는 건 저들이 내 이성을 훔쳐가는 경우뿐이니까!”
--- p.77
천문학자들은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 즉, 성운, 은하계, 별들이 서로 멀어지며 사방으로 도망치고 있고, 그 끊임없는 흩어짐의 결과 우주는 수십억 년 전부터 팽창하는 중이라 가르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팽창을 아주 놀라워하며, 이 개념을 뒤집어 우주가 아주아주 오래전에 별 방울 같은 하나의 점에 응집되어 있다가 알 수 없는 이유로 폭발해, 지금까지 계속 그렇게 커지는 중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런 식으로 우주를 이해해 왔기에, 그 폭발 이전에는 무엇이 있었을지에 대해서는 미지의 영역이었는데, 아무도 그 수수께끼를 풀지 못했다. 그러나 사실은 이렇다.
--- p.121
“그리고 물질 안에는 모든 가능성이 들어 있어. 우리가 집을 떠올리면 집을 지어 올리고, 수정 궁궐을 생각하면 궁궐을 창조하고, 생각하는 별을 만들려 한다면 불타는 이성을 설계하면서 그걸 조립해 낼 수 있지. 하지만 물질 속에는 우리 머릿속에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가능성이 들어 있다네. 그러니까 물질에 입을 달아서, 우리가 생각해 내지 못한 것 중에서 또 뭘 더 창조해 낼 수 있는지 직접 말하도록 해야겠어!”
“입은 필요하지.”
기간치안이 동의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아. 입은 이성이 생각해 낸 걸 표현할 뿐이니까. 그러니까 물질에 입만 달아줄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능력도 심어줘야 해. 그러면 물질은 분명 우리에게 자기 비밀을 다 밝히게 될 거야!”
--- p.123
“노력해 볼 가치가 있어. 그러니까 이렇게 해보자고. 존재하는 모든 것은 에너지이므로 에너지에 생각을 지어넣되, 가장 작은 것, 즉 양자부터 시작하면 될 거야. 양자의 지성은 원자로 지은 가장 작은 우리 안에 가두어야 하지. 이 말인즉슨, 우리는 원자를 조립하는 공학자로서, 끊임없이 모든 것을 축소해야 하는 난제에 직면했네. 내 주머니에 1억 명의 양자 천재들을 쏟아 넣어도 공간이 남는다면, 목적은 달성한 셈이야. 이 천재들의 숫자가 늘어나면 아무 데나 있는 생각하는 모래 한 줌조차 수많은 개인들이 모인 위원회나 다름없으니 무엇을 어떻게 만들면 좋을지 말해주겠지!”
“아니, 그게 아니야!”
기간치안이 반대했다.
“그 반대로 접근해야 해, 왜냐하면 존재하는 모든 것은 질량이니까. 그러니까 우주의 모든 질량을 모아서 그것으로 하나의 뇌를 만드는 거야, 생각으로 가득한, 완전히 특출나게 커다란 뇌를. 그 뇌한테 질문하면 우주 창조의 모든 비밀을 나에게 밝혀주겠지, 그 뇌 혼자서. 자네의 그 천재적인 가루들은 비효율적인 괴물에 불과해. 그 낟알 하나하나가 서로 다른 걸 말하게 되면 정신이 없어서 지식을 얻지 못할 테니까!”
--- pp.123~124
결국 미크로미우도 기간치안도 물질에게서 비밀을 캐내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고, 물질에 이성을 가르치고 입을 달아주기는 했지만, 내실 있는 대화에 이르기도 전에 이런 불행이 벌어지고 말았는데, 몇몇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지로 인해 이 불행은 세계 창조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 p.130
그러므로 이 이야기를 믿지 않는 자는 학자들에게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마치 팽이처럼 하나의 축 주위를 끊임없이 도는 게 참인지 거짓인지를 물어보면 될 것이다. 바로 그 어지러운 회전에서 모든 일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 p.130
모두들 알다시피 동화에서는 모두가 ‘반말’을 하고 심지어 용들도 존칭을 쓰지 않으며 유일하게 왕에게만 존댓말을 한다.
--- p.179
“네가 죽었을 때 너의 관점에서 이런 장소들이 없는 것과 완전히 똑같은 방식으로 지금도 너에게 이런 것들은 존재하지 않아. (중략) 즉 ‘모든 곳에 있는 것’과 ‘거의 아무 데도 없는 것’ 사이에는 거대한 차이가 있고, 이 차이가 너의 정상적인 삶의 몫이라는 거야, 왜냐하면 너는 언제나 한 번에 한 곳, 단 한 군데에만 있었으니까. 반면에 ‘거의 아무 데도 없는 것’과 ‘아무 데도 없는 것’ 사이에는 솔직히 말해서 아주 미세한 차이만이 벌어질 뿐이야. 그러므로 인식의 수학이 증명하는 바, 너는 마치 죽은 사람처럼 거의 모든 곳에 존재하지 않으므로 아주 간신히 살아 있는 상태라 할 수 있지.”
--- pp.192~193
“살고 싶다는 것은 즉, 언젠가 현재가 될 미래를 갖고 싶다는 것인데, 삶은 바로 그렇게 이어지기 때문이겠지. 삶에 그 이상은 아무것도 없어. 그런데 바로 우리가 이미 전제했듯이 너는 살지 않을 거야, 왜냐하면 살 수 없으니까. 다만 여기서 문제는 네가 어떤 방식으로 살기를 멈추느냐는 거야. 오랫동안 고통받다가 멈추느냐 아니면 쉽게, 한방에 물을 빨아들인 뒤에….”
--- p.194
“왕이시여, 당신은 우주가 한없이 훌륭하며 거대하고 장엄한 별들이 넘치도록 깔려 있는 강력한 것이라 배우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이것이 과연 그토록 숭배할 가치가 있는지, 어디에나 있으며 영원히 존재하는 구조가 극단적인 어리석음의 작품이 아닌지, 생각과 논리에 정반대되지 않는지? 어째서 이제까지 아무도 이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을까? 그런 생각이 들겠지요. 왜냐하면 어리석음은 사방에 있기 때문입니다!
--- pp.236~237
“학문은 세상을 설명하지만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건 오로지 예술뿐이지. 우리가 우주의 시초에 관해서 정말로 뭘 알겠나? 그토록 드넓은 허공을 채울 방법은 신화와 전설뿐인걸. 그렇게 신화화함으로써 나는 불가능의 영역에 도달하고 싶었고, 결국 꽤나 가까워졌다고 생각하네. 자네도 그걸 알고 있으니 우주가 정말로 우스운지 그 한 가지를 묻고 싶었던 거겠지. 하지만 그 질문에는 각자 알아서 대답하는 수밖에 없네.”
--- pp.236~237
《로봇 동화》는 폴란드 크라쿠프에 있는 문학 출판사(Wydawnictwo literackie)에서 출간된 2017년판 《Bajki robotow》를 원전으로 사용했다. 원작은 처음부터 끝까지 언어유희로 가득하다. 렘은 의학을 공부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의학 용어가 라틴어로 되어 있으므로 라틴어를 알고 있었다. 그래서 폴란드어뿐 아니라 때로는 라틴어나 다른 외국어를 사용해서 등장인물들의 이름이나 기계 이름으로 말장난을 하고 여기에 화학과 물리학 지식을 섞어 넣는다. 번역하는 입장에서 원작은 더없이 즐겁고 번역 작업 또한 재미있었는데 수많은 언어유희를 그대로 한국어로 옮길 수 없는 점이 무척 아쉬웠다.
(중략) 렘이 이 작품을 재미있게 쓴 만큼, 독자분들도 재미있게 읽어주시면 좋겠다. 《로봇 동화》 전체를 통해 렘은 인간의 상상력에는 한계가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상상은 즐거운 일이며, 과학도 기계도 신화도 동화도 무엇이든 상상의 소재가 될 수 있고, 인간이 상상한 머릿속의 우주 안에서는 무엇이든 가능하다.
---「옮긴이의 글」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