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질문이 학생의 호기심과 고민의 결과가 아니라 학원 강사의 말을 앵무새처럼 따라 한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나는 발밑이 꺼지는 듯한 아득함을 느꼈다. 그리고 당황한 표정을 애써 숨기며 답을 설명해주는 과정에서 한 번 더 충격을 받았다. 어떻게든 학생이 직접 생각해보는 기회를 주려고 역으로 질문을 던졌는데 학생이 답답해하며 “아, 쌤. 그냥 답만 바로 알려주면 안 돼요?”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 p.21
인터넷을 보면 교사에 대한 비난이 무수히 많다. 그 많은 비난 중에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일 대충하고 돈 받아먹는다.”라는 비난이다. 이 비난은 교사의 실제 업무량을 모르고 하는 소리이기에 억울한 면도 많지만, 때로는 교사의 열정이 꺾일 수밖에 없는 교직 사회의 분위기를 잘 보여주는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열정과 패기로 가득했던 마음이 주변 동료의 거절과 만류로 인해 점점 깎여 나가다 보면 ‘아, 그냥 대충할까. 이거 한다고 월급 더 주는 것도 아니고 괜히 일 벌인다고 안 좋은 소리만 듣는데.’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자조와 한숨만 남는다. ‘언젠가 나도 매너리즘에 빠질까?’라는.
--- p.28
교사의 전문성은 시간에서 나온다. 아이들은 로봇이 아니다. 입력값이 같다고 해서 모든 아이가 똑같은 출력값을 만들지 않는다. 똑같은 상황에서 한 아이에게는 따뜻한 위로가 효과적이지만 다른 아이에게는 단호한 훈계가 효과적일 수 있다. 그래서 교사는 교실 속 미묘한 분위기와 아이들의 반응을 예민하게 포착하면서 그 상황에서 가장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가르침을 줄 수밖에 없다. 이때 ‘최선’을 결정짓는 것은 바로 오랜 시간 아이를 지켜보고 경험한 교사의 판단력이다. 그래서 교사는 아이들의 곁에 있어야 한다.
--- p.37
모든 것이 완벽한 사람을 보고 우리는 ‘유니콘’이라고 한다. 현실에 도무지 없을 것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기대하는 교사의 모습이 종종 유니콘 같다고 생각한다. 각자 머릿속에 이상적인 교사의 상을 띄워놓고 그 안에 내가 들어맞는지 아닌지 평가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열심히 일하는 교사는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참한 며느리, 헌신적인 어머니가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사시사철 단정한 옷차림을 유지하고 곱고 바른말을 사용하며 우아하고 품위 있는 행동을 유지할 자신도 없다. 누군가 나에게 그런 모습을 보이라고 요구한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련다. “저 퇴근했습니다.”라고.
--- p.55
어느 날 동료 교사가 나에게 우스갯소리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교사는 돈 못 버는 연예인이야.”
SNS에 올린 사진 한 장, 방송 중에 카메라에 스친 표정 하나로 온갖 구설수에 휘말리는 연예인처럼 교사도 과도한 관심과 헛소문 때문에 피곤한 순간이 많기 때문이다. 연예인은 돈이라도 많이 벌지만 교사는 봉급도 적으니 영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며 동료는 한탄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돈 못 버는 연예인’이라는 별명이 마냥 나쁜 것만은 아니다. 연예인, 아이돌, 슈퍼스타. 이름만 들어도 얼마나 설레고 빛이 나는가. 초등학생 때 연예인을 꿈꿨던 나로서는 무대 대신 교실에서, 팬 대신 제자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것이 꽤 즐겁다.
--- p.77
물론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는 일이 절대로 쉽지만은 않다. 슬라임은 만지는 재미가 있으니 계속 치대며 만지는 것이지만 아이들한테 계속 관심을 주는 것은 마치 수도자가 고행하듯 지극한 인내심과 관용이 필요하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나의 인내심을 테스트하며 감정을 추슬러야 하고, 했던 말을 반복 또 반복해야 한다. 지금은 좀 나아졌지만, 신규교사 때에는 아이들이 하교하고 나면 서러워서 운 적도 많다. ‘대체 왜 이렇게 감정 소모가 심한 거야. 나 좀 그냥 내버려 뒀으면 좋겠다.’ 나보다 미숙한 존재들을 넓은 아량으로 이해하고 감싸 안는 게 쉽지 않았다.
--- p.102
신규교사 시절에는 이것을 몰라서 무조건 자세하게 말하려고 했다. 길게 풀어서 자세히 말하면 아이들이 잘 이해하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말이 장황해질수록 전달력이 현저히 떨어졌다. 수업 시간 40분을 빈틈없이 꽉 채워 얘기했는데도 아이들이 이해하는 것은 절반도 채 안 되었다. 결과적으로 내 에너지만 낭비되었을 뿐 효율이 상당히 떨어지는 수업이었다. 아이들에게 많은 학습량을 ‘입력’하고자 했을 뿐, 실제적으로는 ‘가르치지’ 못했다. 쉽고 간단하게 얘기하려면 한 문장에 하나의 의미만 담아서 얘기하는 것이 좋다. 한 문장에 여러 의미를 담으면 아이들의 뇌는 그 문장을 처리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아이들은 내 말을 단어 하나, 문장 하나씩 초집중해가며 듣지 않는다. 최대한 이해하기 쉽게 말을 해서 스치듯 들어도 아이들의 뇌리에 박히도록 해야 한다.
--- p.106
수업에서 어떤 자료를 제시할지가 ‘무엇’에 해당한다면, 아이들에 따라 어떤 수업 방식을 적용할지 고민하는 것은 ‘어떻게’에 해당한다. 같은 수업이라도 ‘어떻게’ 아이들에게 적용하느냐에 따라 몰입도에 큰 차이가 난다. 학습 내용이 아이들에게 착 감기게 하려면 아이들이 수업에서 자신의 스타일을 편안하게 드러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담임을 맡으면 제일 먼저 아이들의 성향부터 파악하려고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쉬는 시간에는 아이들이 뭐하면서 노는지 관찰하고, 수업 시간에는 다양한 학습 활동을 제시하면서 아이들의 반응을 살핀다.
--- p.116
교사가 아닌 친구들에게 보건실에 학생들이 얼마나 많이 오는지를 얘기하면 다들 무척이나 놀란다. 자신들은 초, 중, 고를 다니면서 보건실에 갔던 기억이 딱히 나지 않는다며. 요즘 아이들은 참을성이 없어 조금만 아파도 보건실에 가는 것 같다며. 공부하기 싫어서 꾀병을 부리는 게 아니냐며. 하지만 꾀병이든 아니든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보건실을 찾아오는 아이들이 너무 많다는 게 문제다. 이 아이들을 다시 달라지게 하고 싶다. 쉬는 시간마다 갈 곳을 잃고 보건실 주변을 맴도는 것이 아니라 교실에서, 복도에서, 운동장에서 웃음소리가 넘쳐나도록.
--- p.157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애쓰고 있는 사람들의 노고에 대해서도 느끼는 바가 컸다. 의료인이 되었을 때 또 다른 감염병 위기가 찾아오면 어떨 것 같냐고 묻자 비장함마저 감돌았다. 무더운 여름에도 겹겹이 방호복을 입은 채 선별진료소에서 일하고, 마스크에 콧등이 짓눌려 ‘반창고 투혼’을 보여주던 의료인의 모습에 눈물이 핑 돌았다는 아이. 부모님이나 가족 중에도 ‘코로나 영웅’이 있어 본받고 싶다는 아이까지. 직업을 그저 돈벌이 수단으로만 여기는 것이 아니라 일을 통해 가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의지가 전해졌다.
--- p.178
교사로서 아이를 아끼는 마음이 다르지는 않다. 담임은 담임대로, 보건교사는 보건교사대로 자신의 상황에 따라 아이를 바라볼 뿐이다. 양쪽 모두를 경험하고 느낀 바로는 아이들이 ‘더 예뻐 보인다’는 말 자체가 잘못됐다는 것. 담임을 하다 보면 사회적 거리 두기처럼 멀찍이 떨어져서 객관적으로 아이를 대하고 싶을 때도 있다. 보건교사로 있을 때면 아이를 둘러싼 세세한 환경까지 다 파악하여 도움을 주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는 없는 법. 하나를 얻으면 다른 하나는 포기해야 한다. 그래도 두 입장이 모두 되어보니 담임 선생님이 왜 그랬는지, 보건 선생님은 왜 그랬는지 이해하는 마음이 커졌다. 결국 담임이 되어 더 예뻐 보이는 것은 아이들이 아니라 동료 선생님이었다.
--- p.188
그런 아이가 학교에 조금이라도 흥미를 갖고 매일매일 등교만 잘 할 수 있어도 각종학교의 존재 이유로 충분하지 않을까. 즐겁게 학교에 다니다가 ‘퍼스널트레이너, 유튜버, 프로게이머, 반려동물관리사’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진다면. 우리 아이들은 MZ세대를 넘어 알파세대로 가고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선택하고 싶어 한다. 안정성을 추구하는 교사의 방식은 조선시대에나 갖다주고, 아이의 개성에 맞춘 교육이 절실히 필요하다.
--- p.198
MZ교사가 아무리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하다지만 DNA에 한국인의 공동체성이 뿌리 깊이 박혀있다. 눈치 보지 않고 당당하게 권리를 주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눈치 본 끝에 용기를 낸 것이다. 남들만큼은 잘해내고 싶은 마음도 한국 사람이라면 다 똑같다. 아이나 어른이나 구세대나 신세대나 칭찬과 인정, 공감을 모두 좋아한다. 격려의 말 한마디에 더 잘하고 싶고 더 열심히 하게 된다.
--- p.254
학부모님은 참 어려운 존재다. 학생을 사이에 두고 가깝고도 먼 사이. 좋을 땐 화기애애하지만 또 언제 어떻게 불편해질지 모르는 사이. 그 적정한 거리를 지키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다행히도 아직까지는 소위 말하는 진상 학부모를 만난 적은 없다. 운이 좋다고 말하기엔 이르다. 내일이라도 만날지 모르니까. 상식 밖의 학부모와 얽혀 소송까지 갔다는 에피소드를 들으면 몸서리가 쳐진다. 걸어온 길보다 걸어가야 할 길이 더 많이 남았기에 앞으로 어떤 가시밭길을 만날까 두렵기도 하다. 하지만 엄마 말대로 걱정한다고 해결되는 것은 없다. 그저 한 발 한 발 나아갈 수밖에.
--- p.2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