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요, 댓글, 구독자 수를 늘리려 무리하는 경우로 SNS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이 있지만 이런 욕구를 꼭 나쁘다고만 할 수 없다. 묵묵히 제 할 일만 한다고 누군가 알아주는 시대는 지났다. 무수히 쏟아지는 콘텐츠 속에서 누군가 진흙 속의 진주를 발굴해 주길 기다리기만 해서는 언제 빛을 볼 수 있을지 막연하다. 결국 우리 시대의 ‘관종’이란 스스로를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타인과 소통하기 위한 필수 덕목이다
---「p.5, 프롤로그」중에서
어딘가에 이 부정적인 감정들을 배출해야 했다. 오프라인에서 쌓여 가던 자격지심과 분노는 익명 뒤에 숨을 수 있는 온라인에서 손쉽게 해결할 수 있었다. 아무도 내가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 곳에서는 자신 있게 허세를 부리고 말싸움도 할 수 있었으니까. 그때의 나는 한마디로 ‘키보드 워리어’였다.
---「p.23~24, 나는 키보드 워리어였다」중에서
어차피 사회는 꾸준히 부조리했고, 개인이 나선다고 바꿀 수 있는 사회도 아니니 차라리 그 흐름에 탑승해서 강자들의 세계로 들어가자는 심리였다. 그러다 말문이 막히면 “솔직히 노력은 안 하고 툭하면 거리로 나와서 열심히 노력한 사람들의 성과를 빼앗으려는 것 아니냐. 배 아파서 그러는 걸로 보인다.”라는 말까지 내뱉었다. 강자들과의 정서적 일체감 형성을 위해 내 행동을 정당화했다.
---「p.31, 욕망은 혐오가 된다」중에서
나 역시 길어지는 싸움에 에너지가 고갈된 상태였지만 이대로 정의롭지 못한 현실에 굴복할 수는 없었다. 물론 적당히 합의하고 넘어갈 수도 있었겠지만, 그렇게 되면 또 다른 피해자를 양산하는 데 침묵하며 동의하는 꼴이었다. 그때 오랫동안 고민한 끝에 다다른 결론은 법 공부를 해야겠다는 것이었다. 법을 모르니 법정에서 무기가 없는 것과 똑같았다.
---「p.52, 법과 상식이 언제나 공정하지는 않았다」중에서
온라인에서는 이와 다른 상황들이 수없이 벌어진다. 자신의 욕망을 타인에게 투영하여 그의 삶을 좌우하려 하거나, 개인의 가치관을 바탕으로 상대를 무시하며 헐뜯고, 더 나아가 자신이 가진 걸 갖지 못한 사람을 조롱하거나 비난하는 것까지 자유라고 볼 수는 없다. 그저 말을 뱉는 것은 쉽다. 남이 하는 일을 비난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표현의 자유라는 명목으로 던져지는 악플이 온라인에는 넘쳐난다.
---「p.58, 책임지는 자유주의자를 꿈꾼다」중에서
주변 선배들이 내게 ‘생각 없이 게임을 한다’고 조언하기도 했는데, 그때는 오기를 부리느라 조언을 받아들이지 않고 여전히 손이 가는 대로 게임을 했다. 자연히 패배로 인한 스트레스만 쌓였다. 아무 생각 없이 게임을 하다 보면 내가 어떤 이유로 불리한 상황에 놓였는지, 다음에 같은 상황에서는 어떤 전략으로 상대방의 전략을 파훼해야 하는지 등 다음 단계로 발전해 나가기 어렵다는 걸 나중에야 깨달았다.
---「p.75, 나는 새 우물을 파는 사람」중에서
후회스러웠던 시절을 돌아보고 새롭게 마음을 먹기 시작한 상황에서 우연히 인터넷 방송에 나가 나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는데 생각보다 너무 후련했다. 그분도 나 같은 청년들의 이야기를 더 많이 듣고 싶다고 했고, 함께 청년문화포럼이라는 비영리단체를 시작하게 됐다. 기성세대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기회도 만들고, 나와 비슷한 청년세대 중에서 나와는 또 다른 길을 가고 있는 청년들의 고충도 들어보고 싶었다.
---「p.98, 내가 청년 단체를 만든 이유」중에서
주변 사람들과 뉴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다양한 관점을 살펴보는 것은 시야를 넓히고 이해도를 높이는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특히 정치적인 이슈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결국 싸우는 엔딩을 맞게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오죽하면 가족끼리도 정치 얘기는 하지 말라지 않나. 나도 평소 친구들과 만났을 때 사안마다 디테일하게 의견을 나누는 편은 아니다. 자칫 사상 검증 같은 대화로 흘러갈 수도 있어 정치적 성향이 반대인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은 더 조심스럽다. 반대로 나와 생각이 비슷한 사람만 찾다 보면 기존 생각에 대한 편견이 강화된다는 우려도 있다.
---「p.121, 뉴스를 읽고 건강한 정치 토론을 하는 법」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