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TF와 진저티는 ‘청소년을 위한’ 공간이 아닌 ‘청소년의’ 공간을 원했다. ‘위한다’는 말이 시혜적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아서다. 이미 완성된 공간을 수동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청소년이 주인이 되어 그들이 직접 기획하고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티티섬을 운영하자는 목표를 잡았다. 그러니 물리적인 환경을 구상하는 데 있어서도 이름만 ‘참여 설계’가 아니라, 정말로 티앜이 동등한 주체로 ‘참여’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단지 우리에게 필요하기 때문에 티앜의 생각을 듣는다는 태도로 그들을 대상화하고 싶지 않았다. (중략) 중요한 건 티앜에게 이 모든 과정이 의미 있게 작동하는 것이었다. 단순히 워크숍을 하고 있는 이 자리에 청소년이 앉아 있는다고 해서 청소년이 중심이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앞으로 만들어질 공간에 대한 티앜의 욕구만큼이나 지금 여기에서의 이들의 경험도 매우 중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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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만드는 공간이 ‘도서관’이라는 것은 모든 N들이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층별 구성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어떤’ 도서관을 만들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각자의 생각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초반에는 회원으로 가입해야만 공간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거나, 출입문으로 들어오고 나가는 경로를 확실하게 관리할 수 있는 형태로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공공도서관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해 깊이 이야기를 나누며 우리가 ‘어떤' 도서관을 만드는지에 대한 방향을 잡아갔다. ‘공평할 공(公)’과 ‘함께 공(共)’이라는 한자에서 드러나듯이 공공도서관은 사회의 구성원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모두가 함께 할 수 있는 도서관이다. 열려 있는 운영 정책만큼이나 그렇게 운영할 수 있는 환경으로 공간이 조성되는 것이 중요했다. 이런 논의가 있었던 만큼 각 층의 중앙은 환대하고 교류하는 곳이라는 설계 콘셉트가 더욱 소중하다.
--- p.83
영자로 지원한 사람들에게 가장 궁금해했던 건 용자, 특히 청소년에 대한 마음이었다. 우리가 바라는 모습으로 티티섬을 운영하려면 용자를 판단하거나 배제하거나 대상화하지 않고 다양한 용자들을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전에 어떤 경험을 했고 어떤 분야에 관심이 있는지, 자신의 생각을 적절하게 꺼내고 또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들을 수 있는지, 청소년과 어떻게 만났거나 앞으로 어떻게 만나고 싶은지를 확인하며 티티섬의 지향과 결이 맞는 사람을 찾으려 노력했다. 사서 자격증이나 청소년지도사 자격증이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 p.142
티티섬을 운영하는 데 있어 가장 핵심이 되는 가치 중의 하나는 ‘용자와 영자가 함께 티티섬을 만들어간다’는 것이다. 한쪽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다른 한쪽은 서비스를 이용한다거나, 한쪽은 가르치고 다른 한쪽은 배운다는 등의 인식에서 벗어나 대등한 관계를 만들어 보기 위해 우선 서로를 부르는 말부터 바꾸어 보기로 했다. 어렵지 않은 호칭에 대해 고민하다가, 온라인 게임에서 운영자를 ‘영자’라고 부르기도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일단 짧고, ‘운영자’보다 친근하게 느껴지는 단어였다. 그러면 이용자는 ‘용자’라고 하면 되려나, 하고 보니 왠지 ‘용감한 사람’이라는 의미도 전해지는 것 같았다. 이용하거나 운영한다는 의미는 덜고, 조금 더 용자와 영자가 동등한 관계로 함께 티티섬을 만들어갈 수 있기를 바랐다. 또한 티앜과의 워크숍에서부터 시작해 여전히 영자와 기획TF(티티섬에서는 ‘가끔 영자’라고 불린다.)는 닉네임을 사용한다. 한쪽만 OO님과 같은 존칭으로 불리는 대신, 각자가 원하는 이름으로 서로를 부르고 있다. 티티섬에서 영자들을 만나면 명찰에서 닉네임을 확인하면 된다. 생각보다 금방 ‘라라님’이 아닌 ‘라라'에 익숙해진다.
--- p.226
마지막으로, 무엇보다도 ‘존중’하자는 의지가 강했다. 모두에게 열려 있는 공공도서관인 만큼 한 번에 완벽할 수는 없더라도 조금 더 많은 사람이 편하게 머물 수 있는 공간이 되어가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다. 그래서 ‘원래 그런 것’이라는 이유로 누군가를 배제하거나 차별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티티섬의 용자들을 존중하려는 만큼, N들의 모임 내부에서도 서로를 존중하기 위해 노력했다. 지금까지도 티티섬에서 이야기하는 “작은 생각도 크게 고려한다”는 태도를 N들의 모임에서도 느꼈기 때문에 언뜻 당연하게 여겨지지만, 사실 당연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고민을 꺼낼 수 있었다. 화장실 사이니지의 경우에도 여성은 치마, 남성은 바지를 입는다는 등의 성별 고정관념을 강화하는 이미지가 아니면 좋겠다고 바톤에 전했고, 지금 티티섬의 화장실은 글자로 표시되어 있다. 하던 대로 하는 것이 가장 쉽고 빨랐을 수 있지만, 어렵고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충분히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더 나은 방법을 찾아가며 티티섬을 만들었다.
--- pp.242~2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