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리클레스가 죽자 아테네의 황금시대는 끝났습니다. 소크라테스가 죽자, 그리스의 몰락세가 완연해졌습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스파르타가 아테네를 제압하고, 레욱트라 전투에서 테베가 스파르타를 물리치고 헤게모니를 잡았지만, 이 헤게모니는 얼마 지나지 않아 무너집니다. 이후 그리스는 북방의 야만인 필립포스와 그 아들 알렉산드로스의 눈치를 보는 신세가 됩니다.
하지만 그리스의 정체政體는 힘을 잃었지만 그리스 문화는 알렉산드로스와 함께 더 멀리 뻗어나갔습니다. 그의 정복사업과 더불어 서쪽으로는 이탈리아의 마그나 그라키아에서 동쪽으로는 페르시아를 넘어 인도 변경까지 플라톤과 유리피데스가 알려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알렉산드로스의 죽음 이후에도 그리스는 유럽과 이집트, 소아시아를 아우르는 넓은 땅에 흔적을 남깁니다. 그리고 마침내 알렉산드로스가 남긴 제국을 분할했던 장군들의 시대가 끝나자 로마가 그 자리를 대신했고, 그리스는 로마 속에서 온전히 살아남았습니다.
셸리가 쓴 ‘헬라스’의 서문에서, “우리는 모두 그리스인이다.”의 다음 문장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그리스가 없었더라면, 선생이자 정복자, 혹은 우리 조상들의 고향도시인 로마는 품안에 빛나는 지혜를 담지 못했을 것이며, 어쩌면 우리는 여전히 야만인이자 우상숭배자로 남았을 지도 모른다.”
역시 셸리의 말이 맞습니다. 그리스가 없었다면 로마는 그저 힘센 야만인들의 제국에 불과했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동아시아의 중원을 정복한 민족들이 모두 한나라의 문화를 흡수해서 자기 것으로 만들었듯이, 로마인들은 그리스 문화를 자기 것으로 만들었고, 그래서 탄생한 그레코-로만Greco-Roman 문화는 오늘날까지 전세계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기원전 8세기경 이탈리아의 티베르 강가에서 태어난 로마는 천년의 세월 동안 공화국과 제국의 모습으로 지중해 주변을 지배하다가, 476년에 이르러 야만족에게 유럽을 빼앗기고 아시아땅에서 ‘비잔틴 제국’이라는 별명을 달고 또다른 천년을 지속했습니다. 그러나 아시아와 유럽에서 공식적으로 로마가 멸망한 후에도 서양의 ‘로마 사랑’은 사라지지 않아서, 볼테르의 말마따나, 신성하지도 않고 로마도 아니고 제국도 아닌 ‘신성로마제국’의 시대까지 이어졌습니다.
도대체 이유가 뭘까요? 서구인들은 왜 그리도 ‘로마’라는 이름에 집착했던 걸까요? 답은 쉽고도 분명합니다. 서구 역사상 로마는 가장 강하고, 가장 찬란한 나라였기 때문입니다. 서구인들에게 그리스가 문화적 고향이라면, 로마는 정치적 고향입니다. 로마의 몰락 이래 모든 서구 정치가들은 누구나 로마를 이상理想으로 생각했습니다. 샤를마뉴나 오토 황제가 별 실속도 없이 로마 황제를 참칭한 이유도 그 때문이겠지요.
근대가 오기까지, 아니 근대에 와서도 한참 동안 로마는 모든 정치적 담론의 규준이었습니다. 이를테면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나 루소의 ‘사회계약론’ 등 정치학의 고전을 읽어보세요. 조금 과장해서 전부 로마 이야기입니다. 로마의 형성, 로마의 제도, 유명한 로마인의 일화 등등… 18세기말 미국혁명을 주도한 개국공신들Founding Fathers이 모델로 삼았던 체제가 공화국 시절의 로마였다는 사실은 유명하지요. 현재 세계 최강의 국가가 로마를 모범으로 만들어졌다는 이야기입니다.
여담이지만 조지 워싱턴은 대통령 임기가 끝난 후 ‘신시내티회’라는 사적인 모임의 수장이 되었습니다. 물론 이 ‘신시내티’는 추신수가 선수로 뛰던 ‘신시내티 레즈’의 그 신시내티가 맞습니다. 그런데 이 이름은 초창기 로마의 공신 중 하나인 신시나투스Cincinnatus에서 유래했습니다. 신시나투스는 두 번이나 왕이 될 기회를 마다하고 공화국 시민으로 돌아간 것으로 유명합니다. 워싱턴은 바로 이 사람처럼 불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옆길로 조금 샌 느낌인데요. 결론은 “그리스 다음에는 로마를 공부하자”입니다. 서구 역사상 가장 강하고, 가장 찬란했던 나라, 로마. 독자는 이미 『그리스』를 읽었으니, 『로마』는 좀 더 쉬워졌습니다. 로마 군단은 독창적인 제도였지만, 로마 문화 전반은 그리스 문화를 기반으로 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쓴 다음 가이드북을 읽는 것으로 공부를 시작하면 좋습니다. …
---「에필로그」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