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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 지느러미

최미정 | 청어 | 2023년 06월 01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리뷰 총점10.0 리뷰 8건 | 판매지수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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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6월 01일
쪽수, 무게, 크기 272쪽 | 128*188*20mm
ISBN13 9791168551541
ISBN10 116855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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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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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삿짐을 거의 다 내렸을 때다. 전화가 왔다. 친구는 내 안부를 묻기도 전에 여자의 자살 소식부터 전해주었다. 나는 수화기를 들고 한참 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다시는 안 보겠다고 마음먹은 것과는 달리 그녀의 죽음이 충격으로 다가온 모양이었다. 야, 괜찮니? 친구의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에서 작게 들렸다. 오래전에 여자는 신의 가면을 쓰고 내 앞에 나타났었다. 내가 그곳을 떠난 후에 여자의 삶을 추측해 보았다. 그녀는 여전히 신의 가면을 쓰고 있었으리라. 그러다가 따르던 추종자들과 마찰이 일어났을 것이고, 그로 인해 자신의 불완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인생의 마지막을 스스로 결정함으로써 벗겨지려는 가면을 끝까지 움켜쥔 모양이었다. 그것이 신으로 살았던 여자의 마지막 자존심이었을지도 모른다.

여자와 함께 살던 때가 생각났다. 인터폰으로 호출하면 당연한 듯 십 층으로 올라가 복종하고 살았으니 함께 살았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친구는 그녀가 사이비 교주 같다고 했다.
“사이비면 돈 뜯는 게 목적이야. 그 여자도 그런 것 아니니?”
그 말에 나는 가슴이 뜨끔했다. 이혼 후 받은 위자료 삼분의 이가 이미 그녀에게 들어갔기 때문이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나는 친구가 말하기 전에 그녀가 사이비 교주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다만 의심이 드는 마음을 들여다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녀가 구멍 난 내 마음을 메워주고 있었으니까. 친구의 계속된 만류에도 나는 그녀를 떠나지 않았다. 오히려 여자의 통제 속으로 들어갔다. 그 속에 있으면 안정감을 느꼈고 상처가 가득했던 어린 시절을 되돌아볼 용기가 생겼다.

내가 보육원에 들어온 것은 세 살 무렵이라고 했다. 이름도 생일도 없이 버려진 아이였단다. 이미지. 내 이름을 듣고 사람들은 성이 ‘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니다. 이미지는 그냥 이름일 뿐이다. 너를 처음 봤을 때 눈동자가 너무 예뻤지. 새로 온 아이 하면 가장 먼저 눈동자가 이미지로 그려졌지. 그래서 네 이름이 이미지가 되었단다. 보육원 원장님으로부터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개가 된 기분이었다. 흰둥이나 까미 같이 보이는 대로 이름 붙여진.

나는 보육원 선생님을 엄마로 알고 자랐다. 여섯 살 때였다. 갑자기 엄마가 보이지 않았다. 그때 한 달 가까이 엄마를 찾아달라고 울며불며 원장님을 괴롭혔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세 살 때 버려졌던 기억이 무의식에 남아 있어 다시 버림받을까 봐 그 두려움에 발버둥 친 것 같기도 하다. 다른 엄마가 생겼다가 사라지고 또다시 엄마가 나타났다. 하지만 그 이후에는 어렴풋이 뭔가를 깨달았는지 다시는 엄마를 찾지 않았다.

가장 충격적인 일은 초등학교 입학식 때 일어났다. 나와 다르게 사는 아이들이 있음을 알아버린 것이다. 엄마, 아빠의 손을 잡은 아이들의 낯선 웃음을 보았다. 그 순간 가슴으로 뭔가 지나갔다. 나중에야 그것이 마음을 가르는 결핍의 칼날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상처를 입었고 꽤 깊게 찔린 모양이었다. 아물지 못한 상처는 스치기만 해도 아팠다. 일상이 되어버린 통증이었다. 상상 속에 엄마 아빠를 만들었다. 아이들이 고아라고 괴롭힐 때마다 그들을 불렀다. 하지만 그들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고 나는 허공을 안았을 뿐이었다. 사랑의 결핍은 생각의 긴 꼬리를 만들었다. 인간은 선택한 적도 없는데 왜 태어나야만 하는가? 우울한 감정은 왜 생기는 거지? 공간을 떠돌고 있는 여러 감정은 도대체 무엇인가? 왜 사는 걸까? 나의 학창 시절은 이런 혼란한 생각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나의 고민을 털어놓을 곳은 아무 데도 없었다.

열여덟 살에, 보육원에서 나왔다. 그 나이에 혼자 살아야 하는 막막함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결혼을 기댈 언덕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아이가 태어나도 엄마가 되지 못했다. 사랑받은 적이 없었으므로 사랑하는 방법을 몰랐던 것이었다. 결국 이혼을 했다. 내가 남편과 아이를 버리고(어쩌면 버림받고) 광야에 섰을 때, 그녀가 엘리베이터에서 말을 걸어왔다.
---「꼬리 지느러미」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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