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거대한 담론이나 이념, 세상을 뒤흔드는 커다란 사건이 중요하다 생각하지 않는다. 2021년 3·1절 대통령 연설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비 내리던 기념식 중간 고故 임우철 애국지사의 젖은 담요를 바꾸어 드리라는 대통령의 말과 눈빛은 여전히 또렷이 기억한다. 결국 추억이 되고 위로가 되는 것은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라 믿는다. 국민들도 결국에는 이런 사소한 이야기들로 문재인 정부를 기억하고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프롤로그」중에서
“그러면 탑시다. 나는 좋습니다.” 그러나 이 대화에는 심각한 오해가 있었다. 우리는 ‘탑승’을 활주로에 있는 비행기에 탑승해 지상 이동하는 것을 생각하고 말한 건데, 대통령은 하늘을 나는 것으로 생각하신 것이다. 대통령이 자리를 떠나시고 사색이 된 경호처장의 우려를 듣고 나서야 오해가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대통령은 이미 하늘을 날고 계실 텐데 어떻게 내려오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밀덕 대통령 FA-50 탑승기」중에서
대담을 지켜본 이틀 동안 토할 때까지 롤러코스터를 탄 기분이었다. 두 사람의 대담에는 살 떨리는 말들도 있었고, 괜히 기획했구나 후회되는 순간도 있었다. (손석희 대표가) 너무하는 것 아닌가 싶어 화가 날 때도 있었고, 속이 시원하기도 했으며, 슬프기도 아쉽기도 한, 다양한 감정이 스쳐 갔다. 그리고 우리의 5년도 그 대담과 함께 이제 정리됐구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마지막 대담」중에서
국가 기념식의 첫 번째 과제는 ‘그날’의 의미를 잊지 않도록 하는 것에 있다. 의미를 잊지 않기 위해서는 그날에 담긴 이야기가 무엇인지 찾아서 국민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이야기에 공감하는 국민이 많을수록 그날의 의미는 잊히지 않고 기억되며 살아 숨 쉬게 된다.
---「육군 중사 김기억」중에서
원래는 오케스트라 반주에 맞춰 연습 겸 해볼 요량이었는데 마침 국방부 관현악단이 잠시 휴식 중이라 연주를 할 수가 없었다. “지사님, 지금 반주가 없는데 몇 소절만 그냥 해보실래요?” “어, 그럼 애국가 부르면 되는 거지?” 오 지사는 숨도 고르지 않고 바로 애국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갑자기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오희옥 애국지사가 부른 애국가는 안익태가 작곡한 애국가가 아니라 올드 랭 사인 애국가였다. 우리 애국가에 곡조가 없을 때 스코틀랜드 민요에 가사를 붙여 불렀던 애국가. 독립운동가 애국가로 알려진 그 멜로디였다.
---「오희옥 애국지사의 올드 랭 사인〉
문재인 정부 마지막 국군의날 행사가 끝났다.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준 기념식이었다. 아쉬움과 헛헛한 마음을 안고 청와대로 복귀했다. 복귀해서 대통령을 관저로 전송하려는데, 대통령은 잠시 머뭇하더니 뒤를 돌아보신 뒤 관저로 올라가셨다. 대통령이 떠나시자마자 주위에 있던 의전비서관실 직원들 모두가 환호했다. 대통령은 행사가 끝난 뒤 단 한 번도 우리에게 ‘수고했다’, ‘고생했다’, ‘좋았다’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다. 하지만 정말로 괜찮은 행사가 끝나면 ‘쓱’ 한 번 뒤를 돌아보시곤 한다. 그것이 우리에겐 최고의 찬사였고 뜨거운 격려였다.
---「피스메이커」중에서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행사는 무엇인가요?” 매번 받았던 질문이다. 솔직히 말해 모든 행사가 각별했다. 대통령이 참석하는 어떤 행사도 허투루 할 수 없었고, 허투루 할 수 없었기 때문에 각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질문을 받을 때면 고민하다가, 결국에는 질문한 사람이 기대하는 답변을 하곤 했다. “판문점 회담이나, 국군의날 행사입니다.” 하지만 누군가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연출적으로 가장 완벽했던 행사는 무엇이었나요?”라고 묻는다면 주저 없이 “70주년 6·25 전쟁 기념식 〈영웅에게〉입니다”라고 답할 것이다.
---「영웅에게」중에서
모든 소리와 빛이 사라지고 나니 그제야 판문점 풀벌레 소리, 바람 소리, 가느다란 개구리 울음소리가 들렸다. 판문점 회담 준비를 시작하고 처음으로 느끼는 고요함이었다. 평화로웠다. 평화, 통일, 번영, 상생, 화합…… 이 행사를 준비하면서 수도 없이 내뱉었던 말들이 모두 헛헛했다. 아! 어쩌면 우리는 평화를 구체적으로 느껴 본 경험이 없었구나 싶었다. 그러니 우리가 했던 모든 준비는 형식적일 수밖에 없었고, 피상적일 수밖에 없었고, 요란할 수밖에 없었구나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지금 우리가 듣고 있는 이 소리와 이 분위기가 평화구나. 어떤 말과 소리와 빛과 음악으로도 지금 이 순간의 ‘평화로움’을 표현할 수는 없겠다 싶었다. 마지막 환송 행사 직전 조명을 끄고, 연주가 시작되기 전 암전을 만들기로 했다. 우리가 느꼈던 그 고요와 침묵의 시간을 ‘연출’하기로 했다.
-〈15초 암전」중에서
그날 리셉션이 한창일 때 조수미 씨가 우리에게 대통령과 춤을 춰도 되겠는지를 물었다. 잠시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춤이요? 무슨 춤을……?” 조수미 씨는 이런 리셉션 중 외국인들 앞에서 대통령이 멋지게 왈츠 같은 것을 추면 크게 화제가 될 테니 한번 화제를 만들어 보자는 것이었다. 본인이 잘 리드할 테니 대통령이 춤을 못 추셔도 상관없다며 맡겨 달라고 했다. “그럼 저는 모르는 일입니다.” 조수미 씨가 대통령에게 가서 춤을 청했고, 대통령은 조수미 씨가 인사를 하는 줄 알고 일어섰다가 모두의 환호와 박수를 받으며 세계 사교댄스계에 강제 입문하시게 됐다.
---「평화 올림픽을 위한 메트로폴리탄 평창의 밤」중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이 퍼켓 대령 양옆에서 무릎 꿇고 찍은 그날의 사진은 앞으로도 한미동맹을 이야기할 때 가장 상징적인 이미지가 될 것임을 예감할 수 있었다. 대통령과 수행원들은 3박 5일간 미국 공식 방문 일정을 마치고 5월 23일 밤 귀국해 24일 업무에 복귀했다. 돌아오는 기내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순방에 대한 총평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통령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최고의 순방, 최고의 회담이었습니다.”
---「최고의 순방, 최고의 회담」중에서
백범 프로젝트는 BTS 프로젝트도, 유엔총회만을 위한 것도 아니었다. 대한민국 문화 콘텐츠를 외교적 계기에 따라 기획해 알리겠다는 프로젝트였다. BTS, 블랙핑크, 〈기생충〉, 〈오징어게임〉, 아카데미상, 에미상에 이르는 우리의 문화적 성취와 김구 선생이 꿈꾸었던 높은 문화의 힘을 세계에 보여주겠다는 계획이었다.
---「백범 프로젝트」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