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성과 대중성 외에 고유성과 창의성 판단의 기준이 하나 더 있다면 그것은 주체성이다. 그럼 주체성은 무슨 뜻인가? 그것은 표면적 현상이 아닌 현상을 대하는 태도를 말한다. 예를 들어 보자. 똑같이 이탈리아에서 이탈리아 가곡을 전공한 두 사람이 있다. 귀국하여 무대를 가졌는데 레퍼토리가 똑같고 창법도 같다. 그럼 두 사람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도 없는가? 표면적으로는 그렇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의식이나 태도는 다를 수 있다.
--- p.111
한국적인 것이 있다면 우리는 어떻게 그것을 알 수 있는가? 이 책이 '한국적인 것은 이것이다'라고 손에 쥐어줄 수는 없다. 그런 것을 발견하려면 한국의 각 분야의 공통된 속성을 조사하여, 과연 공통 속성이 있는지를 밝혀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매우 방대한 작업이 될 것이다. 많은 시일을 요하기도 하겠지만 각 분야에서 공통 속성을 찾으려면 무억을 한국적인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인가를 먼저 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즉 무엇이 한국적인 것인가를 판단하는 기준을 설정하는 것이 한국적인 것의 내용 탐구에 앞서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 p.83
정체성은 개성이며 개성은 고유성과 창의성의 합이라고 본다면, 고유성과 창의성의 판단을 위한 기준을 마련하는 것은 곧 정체성 판단의 기준을 마련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나는 한국의 정체성 탐구를 위해서 우선 현재 한국에서 일어나는 현상에서 출발하고 현재의 현상을 중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정체성 판단의 기준의 하나는 현재성이다.
--- p. 103
이와는 대조적으로 그리고 불행히도 우리는 항상 특수성과 보편성의 긴장 해소를 생각해야 한다. 다시말해서 한국적 특수성과 세계적 보편성 간의 조화를 이룰 방책을 강구해야 한다. 이 주문은 이제 한국적이면서 미국적인 것을 찾으라는 주문으로 재해석 되어야 한다. 다시말해서, 한국적인 것을 찾아내어 미국적인 것으로 만들든지 아니면 미국적인 것을 한국적인 것을 통해 표현하든지 해야 한다.
--- p.75
이 책이 한국의 각 분야가 지니는 한국적인 특성을 밝히고 그 특성들 중에서 공통적인 어떤 것을 찾아내어 그것을 한국적인 것으로 드러내는 작업을 할 수는 없다.이 책은 그런 작업의 토대와 근거, 그리고 방향을 제시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따라서 우리는 이 장에서 한국적인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의 성격을 규명했다. 이 문제는 형이상학의 전통적인 문제인 정체성에 관한 질문을 계속하는데 우리가 다루고자 하는 한국의 정체성은 개인으로서의 한국인의 정체성과는 구별된다.
--- pp.47-48
요즈은 우리 문화정책의 기본 전략이 되다시피 한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다'를 분석해보자.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다'란 구호는 두가지로 해석 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한국적인 것이라면 세계적이다'로 해석 할 수 있을 것이다....(중략)...둘째, 논리적으로 느슨한 이 구호는 논리적 관계가 아닌 우리의 염월을 표하는 것으로 해석 할 수 있다.
--- p.68
어렸을 때 나는 언제나 바다를 파란색으로 칠했다. 왜냐하면 기억 속의 바다는 파란색이었고, 또 바다는 파랗다고 교육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훗날 동해 낙산사에서 바다를 볼 때 마다 나는 바다가 여러 가지 색을 띤다는 것을 알았다. 하늘이 시커먼 구름으로 뒤덮일 때의 바다는 푸른빛이었다. 바다는 시시각각 하늘의 색에 따라 변했다. 나는 더 이상 바다 색이 파랗다고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바다의 색이 무엇이냐는 질문은 이 시각 이 바다의 색이 무엇이냐로 바뀌어야 한다. 그렇다면 답은 이 색 혹은 바로 이 바다 색이 될 것이다.
나는 세계가 개별자의 집합일 뿐 보편자의 예들의 집합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세계의 근본적 존재자는 개별자이다. 존재자의 기본 단위는 개별자이다. 개별자들의 세계를 임의로 혹은 편의에 따라 분류하기 위해서 우리는 추상 개념을 도입한다. 즉 추상 개념을 사용해 세계를 분류, 정리한다. 정리된 세계는 우리에게 질서감과 동시에 안도감을 준다. 하지만 우리에게 이런 선물을 주는 추상 개념에 개별자와 동일한 지위를 부여해서는 안 된다. 보편 개념은 추상 개념으로서 우리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것일 뿐이다. 바다의 색은 시시각각 변하며 어떠 특정한 색을 갖지 않는다. 우리는 편의상 바다는 대체로 파란색이라고 말할 뿐이다. 사실은 이 바다와 저 바다의 색이 다르며, 이 시각 저 시각 또한 다르다. 우리는 단지 편의상 추상 개념을 사용한다.
--- p.57
세계적이라고 생각되는 속성을 우리의 것에서 찾아내어 특화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한국적인 것의 세계화가 아니라 세계적인 보편성을 알아내어 역으로 그것을 한국적인 것에서 찾는 것이다. … (중략) …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고 말할 것이 아니라 한국적인 것에 숨어있는 세계적인 것을 찾는 것이 현실적으로 성공 가능성이 더 높은 방안일 것이다.
--- p. 70
만약 일본과 미국의 순서가 바뀌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미국이 한국을 식민 지배하고 그후 일본이 점령군으로 입성했다면 우리는 미국을 증오하고 일본에 감사했을까? 나는 미국과 일본을 그 순서에 관계없이 한국에 대해 동일한 정책을 취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우리는 미국과 일본에 대해 동일한 태도를 보여야한다. 즉 동일한 잣대를 사용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이중잣대를 갖고있다.
--- p.89
나는 한국철학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역사적 의미에서가 아닌, 또한 한국에서의 철학이란 의미에서가 아니라 한국의 특수성을 형식과 내용 모두에서 드러내는 철학이 있다고 믿는다. 한국철학의 정체성을 판단하는 기준은 현재성, 대중성, 주체성이다. 이 세 가지 기준을 만족시키는 철학이 있다면, 시원에 관계없이 한국철학이다.
--- p.120 <맺는말> 중에서
나는 한국 철학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역사적 의미에서가 아닌, 또한 한국에서의 철학이란 의미에서가 아니라 한국의 특수성을 형식과 내용 모두에서 드러내는 철학이 있다고 믿는다. 한국철학의 정체성을 판단하는 기준은 현재성, 대중성, 주체성이다. 이 세 가지 기준을 만족시키는 철학이 있다면, 시원에 관계 없이 한국철학이다.
--- p.맺는말 중에서
2차 대전이란 용어는 물론 제 2차 세계대전을 뜻한다. 하지만 왜 이것을 '세계' 대전으로 불러야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사실 이 전쟁은 전세계에 걸쳐 일어난 것이 아니다. 유럽과 아시아 일부, 아프리타 일부에서 전쟁이 벌어졌을 뿐이다. 본질적으로 이것은 유럽의 전쟁이다. 그런데도 이를 '세계' 전쟁이라고 부르는것은 유럽 중심적 사고의 산물이다.
--- p.125
~ 나는 세계가 개별자의 집합일 뿐 보편자의 예들의 집합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세계의 근본적 존재자는 개별자이다. 존재자의 기본단위는 개별자이다.
~ 표절과 베끼기는 그 자체로 범죄지만 더욱 심각한 것은 그것이 우리의 정체성고찰의 기회를 빼앗아 간다는 것이다.
~ 한국철학의 정체성을 판단하는 기준은 현재성, 대중성, 주체성이다. 이 세가지 기준을 만족시키는 철학이 있다면, 시원에 관계없이 한국철학이다.
--- p.57, 94, 120
~ 나는 세계가 개별자의 집합일 뿐 보편자의 예들의 집합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세계의 근본적 존재자는 개별자이다. 존재자의 기본단위는 개별자이다.
~ 표절과 베끼기는 그 자체로 범죄지만 더욱 심각한 것은 그것이 우리의 정체성고찰의 기회를 빼앗아 간다는 것이다.
~ 한국철학의 정체성을 판단하는 기준은 현재성, 대중성, 주체성이다. 이 세가지 기준을 만족시키는 철학이 있다면, 시원에 관계없이 한국철학이다.
--- p.57, 94, 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