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8년 2월 2일, 반 고흐는 파리에서 기차를 타고 15시간을 여행한 끝에 아를에 도착했다. 그는 이제 프로방스의 강렬한 빛과 눈부시게 선명한 하늘, 투명한 공기 속에서 꽃을 피운 과실수와 협죽도, 보라색 땅, 올리브나무의 은빛, 실편백나무의 진한 녹색을 그리게 될 것이다. 그는 동생 테오에게 이렇게 편지를 써 보냈다. “난 새로운 예술의 미래가 프로방스에 있다고 믿어.” (아를)
기원전 6세기경 그리스에 살던 포카이아 사람들이 건너와 건설한 마르세유의 역사는 무엇보다도 이민자들의 물결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 프랑스의 그 어느 도시도, 그 기원이 너무나 다른 이들의 다양하고 이질적인 문화를 마르세유만큼 조화롭게 결합시킨 곳은 없다. 나는 이런 마르세유를 좋아한다. 수 세기 전부터 인종 통합의 종교를 신봉하면서 함께 어울려 사는 이 도시가 좋다. (마르세유)
생트로페는 지금이야 전 세계 유명 인사와 백만장자들이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모여들고 에르메스와 샤넬, 루이비통 등 고급 부티크들이 즐비하지만, 20세기 초만 해도 작고 한산한 어촌에 불과했다. 그러다 1956년 여기서 촬영된 브리지트 바르도 주연의 영화 〈신이…여자를 창조하셨다〉가 세계적으로 흥행하면서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 어촌은 그 뒤로 예예족과 누벨바그 예술가들이 몰려들면서 세계적인 휴양지가 되었다. (생트로페)
의사들은 르누아르가 다발성 관절염에 걸려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자 최대한 많은 시간을 프로방스에 머무르라고 권유했다. 수틴이나 드랭, 발로탱 등 많은 화가들처럼 르누아르 역시 프로방스의 빛에 매혹되었다. 그는 100년이 넘게 산 올리브나무들로 둘러싸인 콜레트 저택을 지어 생을 다할 때까지 11년 동안 이곳에서 아내 알린, 아들 클로드와 함께 살았다. (카뉴쉬르메르)
니스에는 파리 다음으로 많은 미술관이 있다. 앙리 마티스는 1917년 처음으로 니스에 왔다. 프로방스의 맑고 투명한 빛에 매료된 그는 니스에서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살다가 결정적으로 시미에 언덕에 자리를 잡았다. 그는 1954년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 자신의 작품 전부를 니스시에 유증했다. 니스시는 17세기에 건축된 아렌느 빌라를 마티스 미술관으로 만들고 마티스가 유증한 작품들을 중심으로 전시 목록을 구성하였다. 관람객은 회화 작품뿐만 아니라 데생과 판화, 조각 작품을 통해서도 그의 예술 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 (니스)
그라스는 중세 때만 해도 최고 품질의 가죽을 생산하여 유럽 전역으로 수출하던 ‘가죽의 도시’였다. 하지만 가죽으로 만든 제품에서는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로 지독한 악취가 풍겼고, 16세기에 그라스의 가죽 장인 갈리마르는 이 악취를 억제하기 위해 가죽에 향을 입혔다. 가죽의 도시 그라스가 ‘향수의 도시’ 그라스로 바뀌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그라스)
카뮈는 1957년 10월 그의 작품 전체, 특히 《이방인》과 《페스트》에 주어진 노벨문학상 상금으로 루르마랭에 집을 사서 1958년부터 이곳을 찾아와 조용하고 편안한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는 이곳 땅을 묘사하는 데 자주 몰두했다. 루르마랭에 머무르는 동안 번잡하게 살고 싶지 않았던 카뮈는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테라스’라는 이름으로 살았다. (루르마랭)
지오노는 다시 고향인 마노스크로 돌아갔다. 대도시(특히 파리)를 싫어해서 이곳을 떠난 적이 거의 없다. 그래서 그에게는 ‘움직이지 않는 여행자’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는 중앙 문단이 불편하게 느껴져 다른 작가들과도 거의 교류하지 않은 지역 작가였지만, 그가 쓴 이야기는 지역을 벗어나 그 어느 작가의 작품보다 더 보편적이다. (마노스크)
올리브나무, 아몬드나무, 무화과나무가 길 양쪽에 서 있는 커브 길을 벌써 몇 번이나 돌았는지 모른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마치 그리스의 아크로폴리스처럼 피라미드 모양으로 지어진 이 성채 마을이 프로방스의 태양 아래 그 모습을 드러낸다. 해가 서산마루에 뉘엿거리면 고르드의 돌집들은 빨갛게 물들고 저 아래 계곡은 초록 바다로 변한다. 고르드는 이때가 가장 아름답다. (고르드)
이번 여행의 종착지이며 파리에서 남쪽으로 600km 떨어져 있는 아비뇽(Avignon)에 도착했다. 교통의 요지였던 이 도시는 14세기에 교황청이 자리 잡으면서(흔히 ‘아비뇽 유수’라고 부른다) 모습이 확 달라졌다. 교황청은 1995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아비뇽은 세계 최대의 연극제가 열리는 연극의 도시이기도 하다. 매년 7월이 되면 아비뇽은 거대한 연극 무대로 바뀌어, 3주 동안 도시 곳곳에서 연극이 공연된다. (아비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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