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으로 폰타나 가문 둘째 딸의 저주를 눈치챈 것은 일곱 살 때였다. 사회 시간에 가계도를 그리게 됐는데 나는 외가 쪽, 그러니까 폰타나 가문을 선택했다. 단 3초 만에 내 가계를 다 살펴본 레지나 수녀 선생님이 내가 미처 몰랐고 어쩌면 알고 싶지도 않았을 사실을 불쑥 꺼냈다. “네 가계도에서 결혼하지 않은 여자들 전부 말이야.” 선생님이 얼굴을 찌푸리면서 더 자세히 들여다봤다. “이상하구나. 다 둘째 딸이네.”
--- p.41
사실 독신 생활에 만족한다. […] 실용적인 신발을 신고 편한 안경을 낀다. 어색한 첫 데이트와 그 후 필연적으로 따르는 가슴앓이를 겪지 않아도 된다. 다른 ‘활동적인 독신’을 만날지도 모를 헬스클럽에 굳이 가입하지 않는다. 오래된 헐렁한 운동복을 입고 밖에서 달리기를 하고, 거실에서 인터넷을 보면서 요가를 하는데 때로 그냥 파자마 차림이다. 가끔 관심을 보이는 남자를 만나도 가슴이 벌렁거리지 않는다. 남편의 코와 내 눈을 닮은 아이들을 상상하지 않는다. 재치 있거나 똑똑하다고 자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냥 나다.
--- p.63
“우리 여행 일정표를 다 짜놨단다. 이탈리아에서 8일을 잡고, 여기에 처음과 마지막에 이동하는 시간을 하루씩 더하고. 먼저 관광을 좀 할 거야. 하지만 아말피 해안의 높은 언덕에 자리 잡은 아름다운 마을 라벨로에 10월 22일까지 꼭 도착해야 한단다.” 포피가 카메라 렌즈를 들여다보며 미소를 짓는다. “내가 여든 살이 되는 날이야.” […]
“포피 이모, 제발요. 저는 이탈리아에 못 가요. 그건 불─”
“가능해.” 포피가 그나마 화상 통화라 다행이다 싶을 정도로 엄한 표정으로 나를 응시한다. “말로는 거절하지만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잖니. 그래서 편지에 네 전화번호를 적었잖아?”
--- pp.72~73
“그 사람의 청혼을 받아들여야 해. 네가 미국에 있는 남자와 약혼하면 이주하기가 훨씬 쉬워질 거야. 무엇보다 우리가 같이 미국에 가게 되는 거야.” […] “너는 둘째 딸이야. 너랑 결혼하려는 사람이 있다니, 네가 얼마나 운이 좋은지 모르겠어? 이 기회를 덥석 붙잡으려고 달려들 네 사촌들을 생각해봐라.”
나는 식탁에 냅킨을 던졌어. “나는 그 저주를 믿지 않아요. 한 번도 안 믿었어요.”
하지만 말하다 보니 이사벨라 고모할머니, 블랑카 고모, 사촌들인 아폴로니아, 실비아, 에반젤리나, 마르티나, 리비아로 생각이 흘러갔지. 모두 폰타나 가문에서 둘째 딸로 태어난 여자들이야. 모든 미혼이었어.
--- p.80
“함부로 장담하시면 안 돼요. 루시는 그 저주를 아주 진지하게 받아들이거든요. 자칫 루시를 실망시킬 수 있어요.”
“아, 하지만 내가 정말로 잠재울 수 있단다. 나와 이탈리아에 가면, 너와 루시아나는 저주에서 벗어나 돌아오게 될 거야. 내 목숨을 걸고 맹세한다.”
팔뚝에 털이 바짝 곤두선다. “그건 불─”
“가능해.” 포피가 내 말을 마무리한다.
--- pp.91~92
루시는 맥주병에서 상표를 벗긴다. “카멜라는 나더러 돼지들하고 데이트하는 헤픈 계집이래. […] 엄마는 내가 불량품이라고 생각해. 엄마는 내가 좋은 남자를 만나서 결혼하고 아이들을 낳게 해달라고 기도해. 정말로 바닥에 무릎을 꿇고 기도한다니까. 아빠도 다를 게 없고. 둘 다 내가 평생 독신으로 살까 봐서 겁내.”
나는 눈살을 찌푸린다. “독신으로 사는 게 왜 겁낼 일이야?”
루시가 째려본다. “손주가 안 생기잖아.”
“아하. 우리 가족은 정반대인데. 우리 가족은 이미 나를 포기했어. 나는 오히려 그게 편하고.”
“어, 언니는 운이 좋아.” 루시가 가슴골을 내려다본다. “언니가 나처럼 생겼다면, 가족들이 언니한테도 기회가 있다고 생각할 거야.”
--- p.99
“하지만 포피의 말이 맞아. 이 폰타나가의 저주는 말이 씨가 된 것에 불과해. 오랫동안 계속돼오면서 우리 독신 여성을 평가 절하하고 우리가 종속돼 있다고 느끼게 하는 옛날 미신이야. 그렇지만 너는 네 기대에 부응해서 살고 있잖아.”
루시가 얼굴을 확 찌푸리면서 내 손에서 자기 손을 쏙 뺀다.
“언니가 금방 무슨 말을 했는지 빌어먹을 하나도 못 알아듣겠어. 내가 아는 것은 수 세기 동안 둘째 딸들의 팔자가 꼬였다는 것뿐이야.”
“혹은 경우에 따라서, 꼬이지 않았을 수도 있지.”
--- pp.170~171
“나는 네가 결혼을 하든 말든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단다. 그건 완전히 네 선택이야. 내가 신경 쓰는 건 너란다. 완전하게 진정한 너 자신으로 살아가는 것. 그런데 지금 너는 소심한 사자처럼 굴고 있잖니.”
“그냥 저답게 살고 있어요.”
“변명처럼 들리는구나. 왜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지 않니?” 내가 미처 대답하기 전에 포피가 계속 말을 잇는다. “너는 네 매력을 없애려고 해, 에밀리아. 일부러 매력적이지 않은 옷차림과 행동을 하잖아. 마치 너의 여성미를 카디건에 욱여넣고 턱까지 버튼을 꼭꼭 채우는 것 같단다. 너는 더할 나위 없이 여성적이야, 아가. 그런데 그걸 거부하지.”
--- pp.206~207
“언젠가 알게 될 게다, 에밀리아. 삶이 항상 동그란 원은 아님을. 그보다는 우회로와 막다른 길, 거짓된 시작과 가슴 아픈 이별이 있는 뒤얽힌 매듭일 때가 더 많단다. 길을 찾을 수 없고 지도가 있어봐야 소용없는, 부아가 치밀고 어찔어찔한 미로지.” 포피가 내 손을 꽉 쥔다. “하지만 모퉁이 하나도, 커브 길 하나도 절대로, 절대로 빠뜨려서는 안 된단다.”
--- p.330
어둠 속에서 포피의 눈이 반짝인다. “결국 삶은 간단한 방정식이란다. 우리가 사랑을 할 때마다─그 대상이 남자든 아이든, 고양이든 말이든─이 세상에 색채를 더하게 되지. 우리가 사랑에 실패하면 색을 지우게 되고.” 포피가 씩 웃는다. “암울한 흑백의 연필 스케치에서 진정 아름다운 유화로 가는 이 여정에 필요한 것은 사랑이란다. 그 사랑이 어떤 형태이든 간에.”
--- pp.444~4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