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긴 한데 꼭 논리대로 되지 않는 게 세상일이거든.” 움직이지도 않는 ‘논스톱 열차’가 역에 서 있고, 열차가 걸음 속도보다도 느리게 달리고, 이곳에서는 논리적이지 못한 일들뿐이라 앨리스는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말은 대부분이 논리적으로 굴러가는 세상에서나 할 수 있는 말일 텐데요.
--- p.52 「선로 나라의 앨리스」중에서
어차피 언젠가 죽는다면 지금 여기에서 좋아하는 소녀와 함께 저항할 수단 없이 괴수에게 짓밟히는 것도 괜찮을지 모른다. 그녀에게는 끔찍한 비운이다. 고통스러울 테고, 무의미하고 영웅적이지도 못하지만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내게는 최고의 죽음 아닐까?
--- p.129~130 「괴수의 꿈」중에서
자살 희망자가 모이는 웹사이트에 들어가 죽음의 향기를 맡다보니 결행을 생각하게 되었다. 다들 기분 좋게, 혹은 지루함을 참아가며 보는 영화 중간에 자리에서 일어나 “당신들, 이렇게 시시한 걸 용케 보고 있군!”이라는 표정으로 퇴장한다. 보란 듯이 뽐내는 자살. “나 혼자만 그렇게 생각한 게 아니야.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과 함께 나갈 거야”라고 말하는 자살은 제법 재치가 있다.
--- p.151~152 「극적인 폐막」중에서
바다는 모든 생명의 근원이니 바다海라는 글자에는 어머니母가 포함되어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독毒이라는 글자의 아래 절반도 어머니다. 확실히 그에게 어머니는 독성을 가진 존재였다고 피식 웃고 말았다. 독을 품은 어머니. 어머니라는 독.
--- p.160 「극적인 폐막」중에서
모퉁이가 나올 때마다 “어느 쪽으로 갈까?” “이쪽 괜찮아?”라고 의논했지만 아무리 가도 출구에 다가가고 있다는 느낌이 없었다. 그건 어쩔 수 없다. 미로는 원래 저도 모르는 사이 출구에 도착하는 법이다.
--- p.190~191 「출구를 찾아서」중에서
“지하 통로에서 그는 ‘규칙도 어겼으면서’라고 욕지거리를 했지. 그때는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1960년대가 무대인데 작가가 알려준 미래의 이야기를 했다’는 뜻이었던 거야. 그의 말대로 이번에는 조금 지나쳤는지도 모르겠어.” “우리가 소설 속 등장인물……” 전혀 실감이 나지 않아 고바야시 소년은 뺨과 가슴을 만지작거리며 자기가 이곳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 p.234 「미래인 F」중에서
“다음번에는 철인이네, 우주인이네, 기계 인간이네, 투명 인간이네, 해저인이네, 지저인이네, 나는 쉴 새 없이 고민해야 하는데 그 작자는 아무 지혜도 짜내지 않고 항상 ‘네가 20면상이로구나!’ 한마디면 끝이잖아. 크리에이티비티가 눈곱만큼도 없잖아. 이런 표현은 이 시대에 걸맞지 않지만 그런 말을 쓰지 않고는 못 배기겠군. 진절머리가 난다니까. 미래인을 그렇게 써먹었으니…… 이제 뭐가 남았지? 자네한테 좋은 생각이 있으면 좀 알려줘. 단, 나는 독창성을 중시하는 범죄 예술가니까 다른 사람이 사용한 아이디어는 거절하겠어. 토호에서 만든 영화에 나온 가스 인간이나 액체 인간, 버섯 인간 같은 것도 안 돼. 심심풀이 삼아 잠깐 고민 좀 해봐. 재미있다니까. 신선한 아이디어를 부탁하겠네.”
--- p.236~237 「미래인 F」중에서
“그런 일이 있었어요. 오늘의 미스터리죠.” 몇 초 동안 침묵이 깔렸다. 쓴웃음이라도 짓고 있겠지 싶었는데 예상도 못한 지시가 내려왔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엄지손가락의 아픔』이라는 책을 살펴봐. 만약 뭔가 꽂혀 있으면 그 페이지를 적어놓도록. 이상.”
--- p.270 「책과 수수께끼의 나날」중에서
외딴섬의 저택에 초대받은 열 명의 손님. 주인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만찬 자리에서 그들이 과거에 저지른 범죄를 폭로하는 음성이 흘러나오고…… 손님들은 한 명씩 살해당한다. 제목으로 보건대 마지막 한 사람까지 목숨을 잃는 것 같다.
--- p.357~358 「이리하여 아무도 없었다」중에서
히비키는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사건은 해결되었소.” 경감은 그것이 낭보로 들리지 않았다. “해결이라니, 무슨 뜻입니까?” “전부 알아냈다는 뜻입니다. 아미고 미오amigo mio, 나의 친구여.” 탐정은 벽난로 위의 인형으로 시선을 던졌다.
--- p.439~440 「이리하여 아무도 없었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