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만날 운명인 사람들의 행동 궤적을 주시하는 것은 흥미롭다. 가끔 이런 만남은 운명이 특별히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러운 사건의 흐름에 따라,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산다거나 같은 학교에 다니는 등의 자연스러운 상황에서 발생하곤 한다.
---「멋진 학창 시절」중에서
“나 시 한 편 썼어. 고양이에 대한 시야. 봐봐.”
미하는 쭈뼛거리면서 말했다.
그는 잘생긴 고양이라네
죽을 각오도 돼 있다네,
일리야는 그의 목숨을 살렸다네,
그리고 이제 지금 그는 우리와 함께 있다네.
“나쁘지 않네. 물론 푸시킨에는 못 미치지만 말이야.”
---「멋진 학창 시절」중에서
얼마간 시간이 흐른 뒤에 죽이 잘 맞는 이들 세 사람은 오랜 시간 논쟁 끝에 3인조를 의미하는 ‘트리니티’와 ‘트리오’를 거쳐서 자신들을 ‘트리아농’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해체에 대해 아는 것은 없었지만, 순전히 발음이 예쁘다는 이유로 이 단어를 고른 것이었다.
---「멋진 학창 시절」중에서
그들을 하나로 묶은 것은 당장 목숨을 바쳐야 할 드높은 이상, 훨씬 따분하게는, 1백 년 남짓 동안 사샤와 니카에게 일어났던 것처럼 은혜를 모르는 국민들을 위해 평생을 바칠 이상도 아니었다. 그것은 1951년에 일어난 비극을 보지 못하고 죽은 허약한 새끼 고양이였다.
---「멋진 학창 시절」중에서
“우리는 문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는 마치 새로운 소식이라도 되는 듯 이 말을 입버릇처럼 되풀이하고는 했다.
“문학은 인간이 소유한 것 가운데 가장 좋은 것입니다. 그리고 시는 문학의 심장이며, 세상에 존재하는 것 가운데 가장 훌륭한 것입니다.”
---「새로 온 선생님」중에서
빅토르 율리예비치는 여러 민족의 피가 섞였기 때문에 민족적 자부심을 갖고 있지 않았고, 자신이 국외자 같기도 하고 귀족 같기도 했는데, 유대인을 잡아먹을 듯이 싫어하는 이 시기를 무엇보다도 미적 관점에서 혐오했다. 못생긴 사람들이 옷도 이상하게 입고 행동도 아름답지 않게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책으로 가득한 공간 밖의 삶은 뭔가 모욕적이었지만, 책 속에는 생각과 감정과 지식이 살아서 꿈틀거렸다. 이 두 공간의 격차가 견디기 힘들 만큼 너무 커서 그는 점점 더 문학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그는 아이들 덕분에 역겨운 현실을 이겨낼 수 있었다.
---「새로 온 선생님」중에서
“맞아요. 왜냐하면 어떤 시대에나 문학 주위를 맴도는 것을 가장 재미있어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나와 여러분처럼 말이죠!”
---「‘러문애’」중에서
“미샤, 너도 알겠지만, 우리는 애벌레, 즉 성충이 되지 못한 사람들, 어른으로 위장한 사람들의 사회에 살고 있어.”
---「‘러문애’」중에서
“그런데 가까이서 보니 천막은 초록색이 아니라 금색으로 빛나는 것 같았어. 가보니 일리야가 나를 향해 미소를 지으면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거야. 혈색이 굉장히 좋아 보이고, 건강하고 젊어 보였는데, 나를 자기 옆에 세우고는 한쪽 어깨에 한 손을 얹더라고. 그런데 이때 옥사나가 나타나서 그를 향해 다가오는데 그는 그녀를 못 본 척하는 거야. 천막 입구엔 제대로 된 문은 없고 웬 커튼 같은 두꺼운 천이 늘어져 있었는데, 이 커튼이 젖혀지더니 안에서 음악이 흘러나오는데 무슨 음악인지는 모르겠더라고. 무슨 냄새도 나고 빛이 나는 것 같기도 했어.”
---「커다란 초록 천막」중에서
일리야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특별한 사람들뿐이었다. 물론 모두가 작가는 아니었다. 하지만 한 명 한 명이 뛰어난 사람인 데다 이상한 관심사를 갖고 있었고, 정상적인 삶에서는 상상하기도 힘들고 전혀 불필요한 분야에서 뛰어난 지식을 갖고 있었다. (……) 그들은 하나같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위험해 보이지만 매혹적인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국가를 위해 일하는 것을 거부하는 것인지 국가가 그들과 엮이기 싫어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아서왕의 결혼식」중에서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는 확실한 증거는 저쪽 세계에서 생겨나 알 수 없는 방법으로 이곳에 온 음악이라는 것이었다. 음대의 홀을 가득 채우던 것도 음악학교 복도에서 들리던 불협화음도 검은색 레코드판에 숨어 있던 소리도 음악이었다. 심지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것도, 널을 뛰며 오르락내리락하는 음표들도, 가끔 생겨나는 공백도, 세계와 세계 사이에 있는 갈라진 틈으로부터 비집고 들어오는 것도 전부 음악이었다.
---「조금 작은 부츠」중에서
이것은 특정 정당도 아니고, 동아리도 아니고, 비밀 단체도 아니고, 심지어 같은 생각을 가진 동지들의 모임 같은 것도 아니었다. 그들의 공통분모는 스탈린에 대한 혐오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그들은 책을 읽었다. 열정적이고 광적인 독서는 그들의 취미이자 노이로제이자 마약 같은 것이었다. 많은 이들에게 책은 삶의 스승에서 삶의 대체재로 변모했다.
---「높은 음역대」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