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델이 하노버 선제후의 궁정악장 시절의 에피소드입니다. 헨델은 자신을 총애하던 선제후의 허락을 받아 연주여행을 떠나게 되었지요. 이탈리아를 거쳐 영국에서의 연주여행을 성공적으로 치러낸 후 자신이 악장을 맡고 있던 하노버의 궁정악단으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선제후의 허락도 없이 영국에 아예 눌러앉는 만행(?)을 저지르지요.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2년의 시간이 흐른 뒤에 앤 여왕이 죽게 되고, 그 뒤를 이어 ‘조지 1세’라는 이름으로 영국 왕위에 오른 사람이 바로 하노버의 선제후였습니다. 궁정악단을 무단이탈한 헨델의 입장에서 보면, 선제후가 영국 왕위에 즉위한다는 사실이 정말로 난처한 일이 아닐 수 없었겠지요?
당황한 헨델은 조지 1세의 노여움을 풀어주기 위해 고민하다가 묘안을 생각해냈습니다. 바로‘음악 선물’이었습니다. 조지 1세가 템즈 강에서 뱃놀이를 할 때, 그가 탄 배 근처로 배를 띄워서 자신이 작곡한 곡을 연주한 것입니다. 그 음악을 들은 조지 1세는 아름다운 선율에 반해 이 곡을 만든 자가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신하로부터 ‘그 곡은 바로 조지 1세 폐하를 위해 헨델이 작곡한 음악’이라는 말을 전해 듣고 ‘이렇게 아름다운 음악을 작곡한 사람이라면 예전의 실수를 용서할 수밖에 없겠다’고 이야기하며 헨델과의 앙금을 털어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p.33, 「레오나르도 다 빈치 + 헨델 _ 열정적인 삶을 인류애로 승화시키다」
루벤스의 장대하고 남성적인 스케일의 작품 성향과 맞는 음악 작품으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가장 먼저, 영국인의 콧대를 세워 준 작곡가라고 할 수 있는 에드워드 엘가Edward Elga의 〈위풍당당 행진곡〉이 떠오르네요. 1901년 작곡된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은 ‘제2의 영국 국가’라고 불릴 만큼 영국인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고 있는 곡입니다. 고전 시대부터 낭만주의 시대를 거쳐 오며 모차르트, 베토벤, 쇼팽, 라흐마니노프 등 위대한 작곡가들이 많이 탄생했지만, 그중에 영국 출신은 거의 없다는 것을 눈치 채고 있었나요? 바로 그 점에 은근히 자존심을 구겨 오던 영국에, 에드워드 엘가는 혜성처럼 등장한 작곡가였지요. 특히 이 〈위풍당당 행진곡〉은 영국인들의 콧대를 한껏 세워 주게 됩니다. (...) 대관식에 연주되었던 곡이라는 ‘프리미엄’이 생긴 덕분인지, 이 곡은 현재 영국은 물론 미국의 거의 모든 대학의 졸업식에서 단골로 연주되고 있습니다.
---p.98, 「루벤스 + 차이콥스키 _ 근면하게, 그러나 지독하게」
하지만 에릭 사티와 수잔 발라동은 둘 다 굉장한 ‘매력남’과 ‘매력녀’였기에 성격 또한 대단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달콤한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고 해요. 서로 한 치도 양보하지 않으니 다툼이 점점 잦아지고, 급기야는 크게 싸워서 수잔이 아파트 난간에서 뛰어내리는 사건까지 벌어집니다. 스케일도 크게 싸웠나 봅니다. 물건을 집어던진 것도 아니고 자기 몸을 던져 버리다니 말이지요.
천만다행으로 수잔이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이 사건 때문에 두 사람은 헤어지게 되고, 사티는 일생 동안 다시는 연애를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사티의 사후에 그의 방에서는 일생 동안 수잔에게 쓴 보내지 못한 편지들과 사티가 그린 수잔의 초상화, 수잔이 그려준 사티의 초상화 등이 나왔다고 전해집니다. 평생 동안 간직했던 처음이자 마지막 사랑에 대한 흔적들이었습니다. 이토록 가슴 깊이 그녀를 사랑했던 사티는 단 한 번의 행복한 연애시절 동안 〈난 널 원해〉라는 곡을 만들었습니다. 사랑에 빠진 자신의 지극한 행복을 음악으로 표현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p.126, 「카라바조 + 사티 _ 위대한 예술은 평범한 일상에서 시작된다」
어쨌든 고야는 부와 명예를 다 가지고 남부럽지 않은 만년을 보내게 됩니다. 아쉬울 것도 없고,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가 없었던 것이지요. 그 상황에서 고야는 젊은 시절에 그린, 권력자의 의뢰를 받고 그들을 만족시켜야 하는 주제의 그림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의 느낌’을 의지대로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시기에 탄생한 고야의 작품들은 어둡고 비관적인 인간 내면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 많습니다. 어쩌면 어려운 환경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갖은 고생을 하며 각고의 노력 끝에 성공했기 때문에, 그런 자신의 인생여정 뒤에 가려진 힘겨웠던 시간을 솔직하게 표현해 낸 것이 아닐까요? 만년의 작품 중에‘검은 그림 연작’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뒤 페이지에 나오는 〈호기심꾼들?입을 비죽이며 웃는 두 노파〉도 검은 그림 연작 중 하나입니다. 1819년, 완전히 귀머거리가 된 고야가 또다시 중병에 걸려 칩거 생활에 들어갔을 때, 그 집 식당과 거실의 네 벽에 그린 그림들로, 고야 자신의 내면을 완전히 자유롭게 표현한 고백적인 작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검은색과 흰색, 세피아 빛깔의 3가지 색을 기조로 마녀와 사티로스, 순례자 등 다양한 주제들을 표현했습니다. 격렬한 터치감이 인상적인 표현주의적 작품으로 유명합니다.
-141, 「고야 + 엘가 _ 인간은 누구나 이중적이다」
구노의 〈아베 마리아〉는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1권의 1번 전주곡을 반주로 삼아 아름다운 멜로디를 붙여서 만든 곡입니다. 종교음악을 해오던 구노가 자신의 절친한 친구이자 신부였던 마리 다블뤼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하여 작곡한 곡입니다. 다블뤼는 조선에 가톨릭교회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하여 입국했지만, 당시 집권자였던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과 종교박해로 말미암아 순교하고 맙니다. 구노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절친한 친구가 외국에서 선교활동을 하다가 무참히 살해당한 것이었지요. 구노는 너무나 슬픈 마음으로 이 〈아베 마리아〉를 작곡했고 이 곡을 조선의 순교자들에게 바칩니다. 아름다운 멜로디 뒤에 이러한 역사적인 사연이 있다는 것이 놀랍지 않나요?
보통 피아노와 첼로의 듀엣으로 많이 연주되는데,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1권의 전주곡을 거의 그대로 연주하고(1마디 정도만 첼로 멜로디의 부드러운 진행을 위하여 변형되었습니다), 첼로의 깊은 멜로디가 진중하게 연주됩니다. 첼로 특유의 편안한 멜로디와 피아노 소리가 잘 어우러져 명상하는 듯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곡으로, 절친한 친구를 생각하며 작곡한 구노의 슬픈 마음을 떠올리면서 감상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171, 「밀레 + 구노 _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따듯한 서정성」
드보르자크를 단번에 유명 작곡가로 만들어준 〈슬라브 무곡〉은 드보르자크보다 8살이 많은 브람스의 추천으로 작곡되었습니다. 당시 〈헝가리 무곡〉으로 많은 인기를 얻은 브람스는 후배이자 제자이기도 한 드보르자크에게 고향의 민속리듬을 사용해서 작곡해 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권유했고, 드보르자크는 그 의견을 받아들여 〈슬라브 무곡〉을 작곡하게 된 것이지요. 그리고 드보르자크는 이 곡을 오케스트라 곡뿐 아니라 피아노 연탄곡집으로도 편곡해서 출판을 했습니다. 당시 유럽의 사람들 사이에서는 일을 마치고 모여앉아 피아노 연주를 즐기는 것이 유행이었는데, 이러한 트렌드와 딱 맞아떨어져서 이 무곡집은 전 유럽에 엄청나게 많이 팔려나가게 되었습니다.
민속적인 선율과 길지 않은 구성으로 이 무곡집은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었고, 저 역시 이 곡을 좋아해서 자주 연주하는 편입니다. 특히 작품번호 2-2번 e단조 곡은 구슬프면서도 애잔한 멜로디 중간에 밝은 화음들이 사용되는데, 짧은 무곡 안에 다양한 감정들이 녹아들어 있다는 점이 매력적입니다.
---p.341, 「모딜리아니 + 드보르자크 _ 차오르는 눈물 속의 절제된 감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