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든 병의 원인이 사라지지 않는 한 ‘증상의 호전’에 머무는 지금의 의학 수준에서 질환은 만성질환이 될 가능성이 크다. 만성질환이라는 말은 완치가 되지 않고 오랫동안 환자가 앓게 되는 병이라는 뜻이다. 과거에 생명을 위협하던 여러 중증 급성질환에 의한 사망률이 의료기술이 발달하면서 지금은 확연하게 줄었다. 하지만 이 말은 완치되거나 가벼운 경증 질환이 된 것이 아니라 의료기술의 발달로 환자가 여생 동안 계속 관리해야만 하는 만성질환이 되었다는 뜻이다. 또한, 당장 생명에 지장이 없는 질환들도 완치가 되지 않으면 인간의 평균수명이 늘면서 관리에 드는 비용과 수고가 걷잡을 수 없이 증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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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행위에 명백하게 오진과 의료 사고의 위험이 있는 것처럼 검진 과정에서도 이처럼 장비의 성능, 의사의 자질과 평균적인 인구를 대상으로 설정된 검사들의 한계성 같은 여러 이유에서 오진이 일어날 수 있다. 문제가 될 가능성이 큰 이상을 놓치는 것도 문제지만, 별일이 아닌 경우로 후속 검사에 들어가는 경우도 고스란히 사용자 부담이 된다. 현 검진의 기술적인 한계 때문에 문제가 될 가능성이 큰 이상들을 놓칠 수도, 별일이 아닌 경우에도 후속 정밀검사로 몸도 지갑도 같이 고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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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이용의 형평성 중에서 실현 가능한 목표는 주로 수평적 형평성의 달성 여부로 생각된다. 의료 필요가 더 큰 사람에게 더 강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수직적 형평성인데, 소득 수준에 관계없이 동등한 의료 필요에 대해 동등한 의료 이용을 보장하는 것을 수평적 형평성이라 한다. 만약 어느 나라의 환자들이 정해진 보험료와 자기 부담금을 내고서 소득, 교육 수준, 거주지역, 성별 등에 관계없이 차별 없는 동일한 의료 서비스를 받는다면 이는 완벽한 수평적 형평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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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에게 최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의료기술이 무엇인지를 가늠하기 위해서 현재로서는 의사의 경험적인 판단에 의한 적용이 가장 보편적인 방법이다. 집단을 대상으로 어느 정도의 효능이 인정되는지 알려진 표준화된 진단과 치료기술을 사용하도록 하는 임상 가이드라인도 이에 통하지 않는 개별 환자에게는 의사의 경험적인 판단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러한 방법은 많은 시행착오를 불러일으킴으로써 의료 자원이 낭비되어 의료비용을 증가시킨다. 폭증하는 의료비 지출이 감당되지 않는 상황에서, ‘정밀의학’은 21세기에 한계에 다다른 의료 개혁을 위한 새로운 돌파구로 기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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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택의료 서비스의 장점은 혼잡한 병실을 피함으로써 항생제 내성균에 의한 위험한 원내감염을 막고, 환자가 자택에서 가족과 함께 더 안정되게 지낼 수 있고, 과잉진료까지 방지해 오히려 환자의 안전과 의료비 절감 효과까지 얻을 수 있는 점이다. 예전에는 입원했어야 할 환자들의 재택의료 서비스가 원격진료기술과 면밀히 환자를 관찰할 수 있는 모니터링 장비들의 개발 덕분에 가능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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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적 병원이라는 새로운 운영 개념의 병원을 목표로 하면 가능해지는 것은 그동안 당연시되어 간과했던 환자의 안녕과 안전, 그리고 원내 워크 프로세스의 합리화에 의한 병목현상, 시간과 비용 낭비의 해결, 전체 병원의 크기와 개별 부서들의 적절한 다운사이징 등 이 모두와 밀접하게 연결된 합리적 운영을 위한 병원 개혁이다. 이는 병원 개혁의 중요한 부분이자 동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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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까지는 의사가 선택한 진단과 치료행위를 환자는 수동적으로 받아들였지만, 방대한 개인 정보의 체계적 관리 및 사용이 가능해지면서 의료 서비스의 제공은 더더욱 수평적이고 상호 협력을 전제로 이루어져야 하는 상황이다. 이른바 환자, 의사 및 다른 참여자들이 네트워크 속에서 긴밀히 소통하는 ‘공유된 의사결정(Shared decision making)’ 구조로 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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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의사 진료실이 지금처럼 환자가 의사를 찾아가야만 하는 형태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고정관념이다. 지금처럼 단순한 처방과 상태 파악을 위해서 진료실을 찾아갈 때, 환자 상태를 정말 그만큼 파악할 수 있고 그만한 가치가 있을까? 앞으로 원격진료는 지금의 외래방문에 이어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환자 정보에 대한 접근권의 확장은 원격진료의 활성과 연결될 것이다. 아울러, 같은 정보를 가지고 다른 의사에게 교차의견을 얻기도 용이해진다.
--- p.265
우리 의료 시스템의 문제점에 대한 지적들은 단절된 지식의 소개나 일방적인 의견의 주장에 멈췄던 점들이 사실이다. 하지만 한 나라의 의료체계라는 거대 시스템은 우리 삶의 질과 안녕에 극히 중요한 기능을 하면서, 그 운영에는 대규모의 경제력이 요구된다. 이 때문에 최대한 다수의 국민이 공유하는 공통된 통합적 이해를 통해야만, 앞으로 의료체계가 어떻게 효율적으로 운영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와 합의를 끌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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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은 법적인 허용 한도 내에서 환자의 만족이라는 효용가치와 이윤 모두의 창출을 목적으로 일하는 기관이지만, 국민건강보험공단과 민간 보험회사와 같은 비용관리기관에서 허용하는 기준에 맞춰서 일해야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가격 및 치료 효능이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는 경우를 악용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실손의료보험회사들은 실제 지금 보험가입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이용한 일부 병원들의 과도한 보험청구에 불응하여 줄 소송을 하고 있다. 예컨대, 무분별한 도수치료와 백내장 수술비용의 청구는 실손의료보험사들에게 만만찮은 골칫거리다.
--- p.427
그렇다면 의료 서비스 분야는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크리스텐슨 교수의 『파괴적 의료 혁신』은 바로 비싸고 복잡한 현 의료 시스템을 대체할 수 있는 보건의료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와 앞으로 미래 변화, 그리고 이를 가능케 하는 기술적 진보의 중요성을 설명한 책이다. 그의 논지는 지금처럼 대형 종합병원이 수용하다 남은 환자들을 작은 병원이 챙기고, 의원들은 작은 병원이 수용하다 남은 환자들을 챙기는 의료생태계의 먹이사슬 구조가 앞으로는 기술혁신에 의한 경쟁력을 바탕으로 대형 종합병원들은 작은 병원들에게 지금의 역할과 환자들을 빼앗기고, 작은 병원들은 의원들에게 그 역할과 환자들을 빼앗기게 되면서 의료기관들은 역할과 기능을 전면적으로 재정립한다는 이야기다.
--- p.436-437
앞으로 확실한 것은 우리는 지금 분명 의료비용의 절감과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 병원의 비즈니스 모델과 의료전달체계를 모두 혁신해야 하는 대안이 필요하며, 이런 개혁은 우리만이 아니라 어느 국가에서든 일단 성공한다면 그 크나큰 영향력과 롤모델은 급속하게 전 세계로 파급될 것이라는 점이다.
--- p.4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