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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글자로 불리는 사람

[ 양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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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7월 17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278쪽 | 366g | 125*188*20mm
ISBN13 9788932041599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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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나는 책을 좋아한다. 책의 세계가 좋다. 어느 책에서나 형성되어 떠오르며 퍼지는 구름 속에 있는 게 좋다. 계속 책을 읽는 게 좋다. 책의 가벼운 무게와 부피가 손바닥에 느껴지면 흥분된다. 책의 침묵 속에서, 시선 아래 펼쳐지는 긴 문장 속에서 늙어가는 게 좋다. 책이란 세상에서 동떨어졌으나 세상에 면한, 그럼에도 전혀 개입할 수 없는 놀라운 기슭이다. 오직 책을 읽는 사람에게만 들리는 고독한 노래이다.
--- p.9

독자가 몸을 웅크리고 앉은 벽의 모퉁이와 독자의 시선 아래 펼쳐진 두 지면으로 이루어진 모퉁이는 하나의 세계를 구성한다. 그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와는 ‘다른 세계’를 소리 없이 얻게 되는 틈새이다.
영혼이 이 틈새로 파고든다.
--- pp.13~14

독서는 책이 펼쳐지는 순간, 그리고 책에서 찾거나 얻으려는 의미가 이러한 끊임없는 탐색과 다르지 않은 영혼에 불을 지피는 즉시 이 세계를 떠난다. 독자란 두 지면으로 이루어진 자신의 ‘하늘을 나는 작은 양탄자’에 올라타서 바다를 지나고, 아주 먼 거리를 주파하고, 수천 년을 건너뛰는 마술사다.
--- p.21

모든 책에는 드러나는 ‘무언의 의미’가 있다. [……] 습득된 언어를 앞지른다고 주장하는 이 ‘무언의 의미(sensus mutu)’에 대해 더 깊이 성찰할 필요가 있다. [……]
내게 바다에 대해 말하지 말라, 뛰어들라.
내게 산에 대해 말하지 말라, 올라가라.
내게 이 책에 대해 말하지 말라, 읽어라, 고개를 심연으로 더 멀리 내밀어 영혼이 사라지게 하라.
--- p.24

얘야, 아들아, 내 삶에는 한동안 두문불출했던 시기, 번민을 가라앉히려고 하루에 열 권 분량의 책이 필요했던 시기가 있었다. 나는 근처 도서관에 가곤 했지. 사는 게 그야말로 고역이었거든. 절망을 잊게 해줄 책들이 없었다면 난 살아남지 못했을 거야. 그런데 이런 고통을 견디며 살아남은 기쁨이 있다면 그건 훨씬 더 심오하고 거의 매혹적인 다른 기쁨이란다. 즉 이 모든 고통을 멀리서, 가령 어둠 속에서, 먼 곳에서, 여름에 피어오르는 연무煙霧 속에서 관조할 수 있다는 거야. .
--- pp.31~32

그러므로 책들은 고요해진 언어의 대양에서 일어나는 파도 같은 것이다. 책들은 포말처럼 솟구친다. 책들은 살아 있는 구어를 묵묵히 독서하는 사람의 몸 안의, 내부의, 가장 깊은 곳의 세계에 죽어서 유령이 된 상태로 묻어서 은닉한다.
--- p.74

문법학자 퀸틸리아누스라면 라틴어 동사 ‘adsimulari(비슷하게 만들기)’보다 의당 ‘suum facere(제 것으로 취하기)’라는 표현을 선호할 것이다. ‘동일자를 복사하기’나 ‘다른 것이 되기’가 아니라, 저 자신이 아닌 무엇을 ‘제 것으로 만들기’의 문제이다. 이런 의미에서 자기soi 안에 ‘자기soi’는 없고, 몸에 맞게 ‘제 것으로 만들기’가 있을 뿐이다. 독서는 합병한다.
--- p.97

나는 감히 이렇게 말한다. 글의 발명이 불의 발견보다 더 중요한 것이라고. 그야말로 인간의 혁명이라고. 구어의 표기법은 어느 것이나 인간 집단의 심장이라 할 집단의 언어를 객관화시켰다는 점에서 ‘의인화’ 혁명이었다. [……] 프로메테우스는 하늘에서 불을 훔쳐 인간에게 주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공중에서 언어를 훔쳐 글 속에 묻었다. [……] 문인(fur)도 죽은 문인들─세계의 상류를 이루는 모든 망자들─에게서 그들의 탐구가 묻힌 글을 훔쳤다.
--- pp.106~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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