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는 ‘음악 천재’라는 현상은 기적과 같다고 말했다. “음악의 재능은 아주 이른 나이에 나타날 수 있네. 다른 예술보다 천부적이고 내면적인 그 재능은 외부의 자양분이나 특별한 인생 경험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 같아. 모차르트 같은 인물의 출현은 언제까지나 설명할 수 없는 기적으로 남을 거라고 생각하네.”
---「2장 그랜드 투어, “카이사르냐, 죽음이냐!”」중에서
레오폴트는 유명한 〈미제레레〉 얘기를 편지에 기록했다. 산 피에트로 성당 안에 있는 시스티나 성당은 새 교황을 뽑는 추기경들의 모임인 콘클라베가 열리는 곳으로, 천장에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제단 배경에 〈최후의 심판〉이 그려져 있다. 이곳에서 부활절 주간에 딱 두 번 연주되는 그레고리오 알레그리의 〈미제레레〉는 교황청의 권위를 상징하는 신비로운 합창이다. (…) 교황청은 이 곡의 악보를 성당 밖으로 들고 나가는 자는 ‘영적 사형선고’와 다름없는 파문에 처한다고 엄포를 놓았다. 모차르트는 로마에 도착한 바로 그날, 연주 시간 10분이 넘는 이 9성 합창곡을 듣고 성당 밖으로 나와 악보에 옮겨 적었다. 엄밀히 말하면, 헷갈리는 대목이 조금 있어서 이틀 뒤인 성 금요일에 한 번 더 듣고 악보를 완성했다. 이 일로 모차르트는 처벌을 받기는커녕 교황이 수여하는 황금박차훈장을 받았다. (…) 이 사건은 모차르트의 청음 실력과 기억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증명하는 일화로 남았다.
---「4장 “비바 마에스트로!” 세 차례의 이탈리아 여행」중에서
모차르트는 스물한 살 어른이 되긴 했어도 낯선 곳에서 일자리를 찾는 데 필요한 판단력과 인간관계, 돈 관리 능력은 미지수였다. 가는 곳마다 칭찬과 갈채를 받는 데 익숙한 모차르트는 자존심이 강하고 기대치가 높았다. 반면, 그가 방문하는 도시의 평범한 음악가들은 그를 질투하고 반발하고 배척할 위험이 있었다.
---「5장 잘츠부르크의 반항아」중에서
첫 행선지는 뮌헨이었다. 두 사람은 최근 80굴덴에 구입한 이륜마차를 타고 갔다. 여행 중 가족이 주고받은 편지는 우주선을 타고 낯선 별에 날아간 사람과 지구의 관제본부에 남아 있는 사람 사이의 교신 같다. 16개월 동안 131통의 편지가 오갔는데, 관제본부에서 우주선으로 보낸 게 69건, 우주선에서 관제본부로 보낸 게 62건이다. 여행 초기에는 일주에 두 번 정도 편지가 오갔지만, 나중에는 2주에 한 번꼴로 빈도가 낮아졌다. 모차르트와 어머니가 파리로 떠난 뒤에는 교신이 더 어려워졌다. 파리에서 잘츠부르크까지 편지가 가는 데 9~10일 정도 걸렸으니 가족이 편지로 의견을 주고받으려면 한 달 가까이 걸렸다. 이 시차 때문에 원활한 소통이 불가능했다.
---「6장 파리 여행과 어머니의 죽음」중에서
“저는 시를 쓰지 못합니다. 시인이 아니기 때문이죠. 색채를 멋지게 배치해서 그늘과 빛이 피어오르게 할 수도 없습니다. 화가가 아니니까요. 손짓과 몸짓으로 기분과 생각을 나타낼 수도 없습니다. 무용가가 아니니까요. 하지만 소리로는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음악가니까요.”
---「6장 파리 여행과 어머니의 죽음」중에서
“저는 계속해서 꿈을 꿀 겁니다. 이 땅 위에 꿈을 꾸지 않는 사람은 하나도 없으니까요. 그렇지만 하필 방탕한 꿈이라뇨! 평화로운, 달콤한, 상쾌한 꿈이라고 하셔야지요! 평화롭거나 달콤하지 않은 것들은 꿈이 아니라 현실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많은 슬픔, 약간의 즐거움, 그리고 몇 가지 참을 수 없는 일들로 이루어져 제 인생을 만들어낸 현실 말입니다!”
---「7장 많은 슬픔, 약간의 즐거움, 그리고 몇 가지 참을 수 없는 일들」중에서
“이 곡들은 너무 어렵지도 않고 너무 쉽지도 않게, 매우 화려해서 귀로 듣기에 즐겁지만, 그렇다고 공허하지 않게 작곡했어요. 전문가만 만족할 만한 대목들이 군데군데 있지만 아마추어들도 이유를 모르면서 좋아할 곡들입니다.
---「11장 사람으로 나시고’, 〈대미사〉 C단조」중에서
모차르트가 35년 생애에서 쓴 작품은 전문 음악가가 35년 내내 베껴 쓰기도 어려울 정도로 방대한 분량이라고 한다. 밤새 친구들과 춤추며 어울린 그가 어떻게 이 많은 곡을 쓸 수 있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11장 ‘사람으로 나시고’, 〈대미사〉 C단조」중에서
작곡가 이그나츠 움라우프의 자필 오페라 악보를 모차르트가 피아노로 죽 쳐본 적이 있다. 연주를 듣고 넋이 나간 움라우프가 말했다. “모차르트의 머리, 팔꿈치, 손가락에는 악마가 있는 게 분명해. 내가 읽어도 못 알아볼 정도로 지저분하게 그린 악보를, 마치 자신이 작곡한 것처럼 유창하게 연주하다니!”
---「14장 미친 하루, 〈피가로의 결혼〉」중에서
〈마술피리〉는 프라이하우스 극장에서만 223회 공연되는 전무후무한 성공을 거두었다. 800석인 프라이하우스 극장에서 223회 공연되었다면 연 20만 명 가까운 관객이 이 작품을 보았다는 얘기다. 당시 빈 인구가 20만 명 남짓이었으니 요즘으로 치면 천만 관객을 돌파한 블록버스터 영화와 다름없다.
---「19장 〈마술피리〉, 음악의 힘으로」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