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역사는 한마디로 ‘재난의 역사’다. 전쟁과 질병, 지진이나 홍수와 같은 재앙은 끊임없이 이어져 인류 역사를 피로 물들여 왔다. 개인의 삶도 마찬가지다. 다양한 종류의 도전과 위기가 마치 파도처럼 끊임없이 우리 삶에 몰아쳐 온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가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그와 같은 위기 속에서도 ‘죽으라는 법은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문제의 본질은 우리 삶에 위기가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그 위기에 어떻게 대처하느냐다. 그렇다면 우리는 생활 가운데 다가오는 크고 작은 위기들을 어떻게 극복하고 해결할 수 있을까?
인간은 삶을 스스로 개척하며 살아가도록 지음받은 존재가 아니다. 인도함을 받으며 살아가도록 지음받았다. 그래서 인간에게는 반드시 목자가 필요하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성령 하나님을 보내 주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성령 하나님이 내 목자가 되어 주셔서 우리 삶을 인도해 주실 때 우리에게는 어떤 부족함도 없게 된다. 성령 하나님은 그곳에서 근심과 두려움에 정복당한 우리의 심령을 소생시켜 주시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의의 길로 인도하여 주신다.
--- pp.16~20
‘슬픔의 재’가 ‘화관’이 되고, ‘기쁨의 기름’이 ‘슬픔’을 대신하며, ‘근심’이 변하여 ‘찬송’이 되는 삶. 이와 같은 변화를 누리기 위한 조건이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 가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슬기로운 신앙생활의 본질이라 할 수 있다. 타락한 이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슬기로운 성도는 고난이 우리 삶의 피할 수 없는 일부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고난은 의인과 악인, 성도와 불신자를 차별하지 않는다. 이 땅의 모든 사람은 다 죄가 지배하는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고, 그래서 우리는 모두 죄의 삯인 고난을 당한다. 그러므로 성도가 고난을 당한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게 되기를 축복한다. 고난을 이상하거나 놀라운 경험으로 생각하지 않게 되기를 바란다. 성도의 고난은 당연한 것이다. 나만 특별히 고난을 받는 것도 아니고, 내가 죄를 많이 지어서 다른 사람들보다 더 큰 고난을 당하는 것도 아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많은 고난을 당한 분이 누구인가? 예수 그리스도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가 죄를 많이 지어서 고난을 당하셨는가? 아니다. 그래서 성경은 성도의 고난을 ‘연단’이라고 부른다. 성도의 고난은 단순히 괴롭히고 힘든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성도를 더욱 단단하고 굳세게 만들어 준다. 따라서 고난은 도구요, 연단이 목적이라 할 수 있다.
--- pp.56~58
우리의 마음은 왜 이렇게 부패하게 된 것일까?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탄의 미혹으로부터 지켜 내지 못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내지 못했다. 그 결과 우리는 ‘사탄의 지배’ ‘죄의 법칙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이 세상이 이토록 비참해진 이유, 부패한 이유다. 그리고 그것이 귀신 들린 소년이 상징적으로 보여 주고 있는 이 세상의 현실이다. 그렇다면, 귀신 들린 인간의 ‘부패한 마음’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까? 모든 문제 해결의 본질은 ‘하나님의 말씀’이다(처방). 하나님 말씀의 강력한 선포와 가르침은 하나님이 부흥의 불을 지피시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다. 이것이 부흥이다. 하나님은 ‘말씀’을 도구로 성령의 감동을 불러일으켜 사람들의 부패한 마음을 변화시키시고, 죽어 있는 영혼 가운데 부흥을 일으키신다. 그러므로 한국 교회는 말씀 중심의 초대교회로 돌아가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은, 부흥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말씀 자체도 중요하지만 그 말씀을 듣는 우리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는 그 말씀이 귀가 아니라 ‘마음’에 떨어져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야만 부패한 마음이 변화할 수 있다. 마음이 변화되어야 죽어 있던 삶이 다시 살아난다. 죽어 있던 가정과 교회와 나라가 부흥할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결국 우리의 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때 우리의 부패한 마음이, 죽어 있는 삶이 다시 살아나는 부흥을 경험하게 된다.
--- pp.113~117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영적인 유기체’임과 동시에,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이라고 하는 ‘제도적인 공동체’이기도 하다. 따라서 모든 그리스도인에게는 제사장, 선지자, 왕이라고 하는 영적인 직분과 동시에 제도적인 직분이 주어진다. 이 직분들을 잘 감당함으로써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와 통치를 충만하게 채워 가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성경에서 가르쳐 주고 있는 제도적인 직분에는 어떤 것들이 있으며, 그 직분의 기능과 역할은 무엇인지에 대해 반드시 알아야 한다. 이 땅에 새로운 영적 각성과 부흥의 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반드시 교회 안에 ‘성경적인 직분관’이 회복되어야만 한다.
한국 교회는 ‘종교개혁의 전통’만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종교개혁의 정신’을 되살려야 한다. 성경적인 직분관에 견고하게 뿌리를 내리고 개혁 교회 전통에서 크게 이탈하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오늘날 한국 교회 가운데 왜곡된 직분에 대한 편견과 병폐들을 극복하여 새로운 영적 흐름의 물꼬를 틀 수 있는 건강한 교회 직분제를 확립하는 것이 이 시대의 영적 각성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고 확신한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가 이름만 교회인 세상적인 조직체가 아니라 진정한 선지자, 제사장, 왕의 직분을 감당하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세워져야 할 것이다
--- pp.158~170
건강한 교회는 어떤 교회인가? 건강한 속사람을 가진 성도가 많은 교회다. 그렇다면, 성령으로 말미암아 속사람이 강건해지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건강한 영성이란,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에 계시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의 마음 안에, 즉 우리의 속사람 안에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항상 있게 하는 것이다. 모든 상황과 환경 속에서 변함없이, 흔들림 없이, 우리 마음속에서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지켜 낼 수 있는 마음의 힘, 그것이 바로 ‘속사람의 강건함’이다. 인격적인 교제의 가장 기초는 바로 ‘대화’다. 어떤 상황 속에 있든지 그리스도에게 이야기하고 말씀을 들을 수 있는 힘을 의미한다. 그러나 대화가 끊어지는 순간 교제는 끊어진다. 그리고 그리스도와의 교제가 끊어지는 순간 믿음은 소멸된다. 건강한 속사람의 또 다른 표지이자 가장 결정적인 표지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사랑’이다. 그리스도와의 친밀한 교제가 이뤄지고 있다면 그 사람의 마음에는 반드시 사랑이 있다. 성도의 속사람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강건해지면, 반드시 사랑에 뿌리를 박게 된다. 그때 성도는 서로 사랑할 수 있고, 교회의 기초는 견고하게 굳어져 가기 시작한다.
--- pp.192~1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