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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직으로 흘러내리는 마그리트

현대시학 시인선-122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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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8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128쪽 | 188g | 125*188*20mm
ISBN13 9791192079714
ISBN10 119207971X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노을 속 파리한 까마귀
십리 대나무 숲으로 간다
작은 발자국에 찍힌 원소들
불길한 예감을 묻어버린다

담쟁이덩굴에 점령당한 사원
고양이가 파놓은 함정에 들고
어둠 속을 뚫어져라 주시하는
검은 그림자 꼼짝없이 서있다

지구의 자전이 멈추면 사유는
거대한 폭풍 속으로 빨려 들고
증폭되는 공포 뒷걸음치는 동안
사는 것 외엔 다른 길이 없는 지금
---「전주곡의 흔적」중에서

어둠을 벗어나는 별의 항로
첫 키스의 발화점을 스쳐간다

어린잎들이 물관을 더듬는 동안
나무는 더 이상 녹색이 아니다

운명처럼 마주친 그 순간
치환할 수 없는 삶의 기울기

동경 132도,
소수점 이하를 생략한다

자작나무 숲으로 간 별들이
하얗게 제 몸을 바꿀 때

GPS에 뜨는 에러 창
파란빛으로 짧은 파장을 흔든다

애매한 빛으로 입력된
허방, 투명한 햇살을 출력한다
---「지금 날짜변경선을 통과하고 있습니다」중에서

텔레비전 화면 속
구세군의 종소리 들리지 않는다
무표정하게 지나가는 발자국들
대책 없이 얼어붙은 자선냄비
저 멀리, 삼나무 숲에 눈이 내린다

하얗게 삼켜버린 겨울 왕국
절망에 떠도는 사랑의 노래
유리병 안에 춤추는 눈사람
뜨거운 눈물로 녹아내린다
설원에 홀로선?순록?눈사람 그리워한다

통제된 매트릭스 속
마지막 비상구를 찾는 눈동자
수직으로 흘러내리는 마그리트
눈발에 얼어붙은 채 모자만 떠있다
이제, 낡은 전화벨이 울리는 고정된 시간이다
---「아라베스크 문」중에서

감각이 무뎌진 나는
마다가스카르섬으로 간다

바닷길이 어디서 시작되는지
당신이 내게 줄 바다는 보이지 않는다

세속의 처지를 챙길 수 없는 수평선
바닷속 수많은 사연 끌어 올리지만

존재하지 않는 별자리에서 온 빛
어느새 가득 채워진 무의미들

자동 선택된 상형문자
내 뜻에 부응한 채 삭제된다

어슷한 절벽에서 밤바다
찔러대는 손가락원숭이

갈비뼈만?남은?나는
물구나무선 세상을 엿본다
---「스팸 메일 1」중에서

추천평 추천평 보이기/감추기

윤유점 시인의 시편들은 활동하는 생각들을 끊임없이 보여준다. 그리고 사유들은 대체로 “가면 쓴 얼굴들이/ 군림하는 붉은 세상”(「우화」)에 관한 것들이다. 그 세상으로부터 굉음, 눈물, 고립, 우울과 비탄이 태어나고 쏟아진다. 이러한 것들은 욕망의 질주와 위선으로부터 잉태한 것들이다. 시인은 이 세상을 “부서진 유리 파편 같은 광장”(「덕수궁 돌담길」)으로 이해한다. 그리하여 시집에는 비장미가 넘치지만, 시인은 또 동시에 야생과 싱그러운 향기의 부활을 꿈꾸기도 한다. 그래서 시집 곳곳에는 시 「꽃, 빛으로 오다」에서 표현한 것처럼 “초록 눈”이, “꽃눈”이 생기 있는 미래를 틔운다. 이 시집은 이렇게 의미심장한 반전을 함께 기획한다.
- 문태준 (시인)
시집 맨 앞에 쓴 「시인의 말」이 “슬퍼서 시를 쓰다” 단 한 줄이다. 궁금증이 일어나 시 전편을 꼼꼼히 읽게 된다. 첫 번째 시 「동백바다 랩소디」부터 마지막 시 「만나는 안녕」까지 “나를 떠나보내는 이별(「만나는 안녕」)”이거나 “바람이 할퀸 거리에 선/ 낙인찍힌 얼굴들/ 낡은 생의 무늬를 깁고 있”었음을 읽게 된다. 그러나 아버지의 발자국이 내어준 “마른 반 평/ 그 반 평의 바깥, 나 그곳에 서있었”으므로 “마지막 숨결처럼 내리는 비”속에서도 (「그날, 안개비로 내리다」) 나는 불안과 슬픔 너머 “선물처럼 온/ 너의 눈물/(중략)/ 슬픔의 무게로 활짝 (「물의 꽃」)”필 수 있음을 필자는 토로한다. 즉, 시는 그의 삶의 굴곡에 맞서는 갈등과 절망, 결핍과 고립을 “떠돌이의 고백”으로 풀어놓게 한 훌륭한 도구였던 것이다.
- 김금용 (시인, 현대시학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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