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석기미술은 바로 법칙, 규칙, 패턴으로 사고하고자 했던 사람들의 시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신석기인들은 소를 섬세하게 묘사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소를 잡으러 다니는 대신에 소를 길렀고, 소를 늘려가는 게 중요했습니다. 들판을 뛰어다니던 한 마리의 소는 이제 ‘소’라는 개념으로 치환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추상적인 사고입니다.
--- p.28
이집트미술은 사실적이기보다 관념적이고 개념적입니다. 위대한 왕은 위대한 만큼 다른 사람들보다 크게 그립니다. 이것은 ‘보이는 대로’가 아닌 ‘생각하는 대로’ 그린 것입니다. 즉 그들은 눈에 보이는 세계를 그리지 않고 인간이라는 개념, 권력자라는 개념을 그렸습니다. 개념은 추상을 통해 만들어집니다. 개념을 만들기 위해서는 사물의 개별적이고 특수한 성질을 최소화하고 공통적이고 본질적인 것을 최대화해야 합니다. 이집트미술에서 보이는 정면성은 이집트 사회가 감각이 넘치는 세계가 아닌 개념, 본질, 영원을 지향하고 있음을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 p.40
중세미술이 보여주는 특징은 물질적이고 가변적인 세계, 즉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과는 관련이 거의 없습니다. 주제, 표현, 재료 등 미술을 이루는 모든 요소는 비물질적이고, 추상적이며, 정신적인 세계를 가시적으로 나타내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이런 점은 이집트미술과 중세미술의 공통점이기도 합니다. 그 기저에는 둘 다 현세가 아닌 내세, 물질이 아닌 정신(또는 영혼), 순간이 아닌 영원을 지향하는 세계관이 깔려 있습니다.
--- p.101
고대 회화의 원근법은 각 사물에 제각각 적용되었고, 그것을 한 화면에 모아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르네상스처럼 사물의 선들이 모여드는 소실점vanishing point(消失點)이 명확하게 규정된 것도 아니고, 소실점을 바탕으로 종합되고 정리된 공간 구성을 보여주지도, 보여줄 의지도 없었습니다. 따라서 서양 회화에서 원근법의 출발은 르네상스로 보아야 합니다. 더 나아가 수학적 원근법은 단순한 미술기법이 아닌 르네상스 회화의 특이점이자 르네상스시대의 세계관을 드러낸 장치이기도 합니다.
--- p.146~147
시기별, 작품별, 화가별로 르네상스는 다양한 면모를 보여주지만 일관되게 흐르는 기조는 같습니다. 미술을 모르는 사람이더라도 르네상스를 볼 때면 어딘가 고요하고, 차분한 느낌을 받습니다. 그림 속 인물들은 표정이 있지만 어딘가 소극적이며, 움직임도 그리 크지 않습니다. 그들은 한데 어울리기보다는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의 본질을 드러내는 최적의 자세를 취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영원히 그렇게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림 속에서는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으며 거대한 고요가 지배할 뿐입니다.
--- p.167
북유럽 르네상스 작품을 보면 사실적인 듯하면서도 비사실적이고, 현실적인 듯하면서도 비현실적인 느낌을 전달합니다. 화면은 반대되는 두 성질을 동시에 담고 있기에 이질적이면서도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이런 오묘한 기분이 관람자의 눈을 자꾸 끌어당기게 됩니다. 북유럽미술이 주는 오묘함의 근원은 바로 정치, 경제, 종교의 이질성에서 발생하는 북유럽인들의 시각이었습니다. 북유럽인들의 이런시각은 미술에서 비논리적인 공간 구성과 사실적인 사물 표현으로 드러났습니다.
--- p.193
중세를 벗어나 과학기술이 발전하고 인본주의 문화가 꽃피웠기 때문에 르네상스를 근대라고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이후에 ‘바로크’에서 설명하겠지만 근대적 세계관은 기계론적 세계관입니다. 하지만 르네상스시대까지 여전히 ‘인본주의’ ‘인간 지성에 대한 믿음’ ‘전인적 인간’ 등 목적론적 세계관이 통용되고 있었습니다. 즉 이데아(고대)와 신(중세)의 자리에 지성적 인간이 들어선 것일 뿐이었습니다. 전인적 인간이 목적인 목적론적 세계관에서는 법(法)보다 덕(德)이 더 중요합니다. 덕이란 인간이 갖추고 있는 또는 갖추어야 할 인격·태도·행동을 아우르는 것으로 인간에게 있어 가장 이상적인 이데아입니다.
--- p.213
매너리즘이 활발하게 진행된 곳은 르네상스 고전주의가 융성했던 이탈리아, 그리고 강력한 가톨릭 국가를 표방했던 스페인과 프랑스였습니다. 이들 국가는 특히나 기존의 견고한 세계와 새롭게 오고 있는 세계의 충돌이 심했던 만큼 미술에서 세계관이 흔들리는 징후를 적극적으로 드러냈습니다.
--- p.227
르네상스에서는 이데아와 신의 자리에 인간이 들어섭니다. 이탈리아 피렌체는 상인 중심의 공화제를 실시합니다. 공화제는 다수가 다스리는 정치체제입니다. 여기서 다수는 일반적인 사람들, 즉 시민을 지칭합니다. 당연히 이때의 시민은 자유로운 상태에서 이성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올바른 판단이 가능한 사람을 뜻합니다. 이렇듯 공화제는 인간에 대한 믿음과 인간 지성에 대한 자신감이 있어야만 작동할 수 있는 체제입니다.
--- p.260
로코코가 과거 유럽을 대표하는 양식으로 자리 잡은 것은 그만큼 이 양식이 유럽의 찬란했던 시기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17세기를 기점으로 역사의 공간은 이탈리아에서 알프스 이북 지역으로 옮겨갑니다. 신항로, 신대륙, 식민지 무역을 바탕으로 알프스 이북 지역에서는 절대왕정과 시민사회가 형성되었습니다. 여전히 도시국가로 쪼개진 채 외세의 간섭을 받던 이탈리아는 안타깝게도 이 모든 것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 p.304~305
프랑스미술에서는 바로크와 로코코 그리고 이후 신고전주의로의 진행이 뚜렷하게 보입니다. 절대왕정에서 귀족과 부르주아의 시대 그리고 18세기 시민혁명으로 넘어가는 정치·사회적 변화가 미술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프랑스는 17세기부터 본격적으로 국력이 성장하면서 문화예술의 중심지가 되었고, 이 프랑스 예술이 곧 주변 국가의 예술에 영향을 끼쳤는데 그것이 바로 로코코입니다.
--- p.319
미술사조로서 사실주의는 1840년대부터 1870년대까지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행했습니다. 그러나 사실주의가 서양미술사에서 가지는 의의와 이후 미술에 끼친 영향은 상당했습니다. 서양미술은 사실주의에 와서야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는 객관적 사실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됩니다. 이런 사실주의 자세는 이후 인상주의로 계승되면서 인상주의 화가들은 저마다 시각적 사실의 근원을 탐구하게 됩니다.
--- p.405
낭만주의 풍경화는 자못 웅장하고 웅변적입니다. 프리드리히는 정적이고 무한한 풍경을, 터너는 역동적이고 거대한 풍경을 그렸습니다. 그들은 자연과 마주하기 위해 일상을 벗어나 여행을 떠났고 그곳에서 인간을 넘어서는 자연과 만났습니다. 대자연의 무한함과 거대함은 색채로 표현되어 캔버스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 p.419
사실주의자와 인상주의자는 일차적으로 시각적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들이 망막에 비친 상을 그리자 미술에서 서사(이야기, 의미 등)가 제거되었습니다. 미술이 짊어지고 있던 교육적·계몽적 측면을 벗어던진 것이지요. 그러자 형과 색으로 이루어진 2차원의 화면에는 이제 이렇다 할 의미가 없어졌고 감각만이 남게 되었습니다. 후기인상주의는 감각적 화면에 다시 의미를 부여합니다. 물론 이때의 의미는 고전주의처럼 일반 개념, 상식, 이야기를 재현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내면, 심상, 감성, 꿈과 같이 다분히 개인적·개별적·주관적 의미입니다.
--- p.507
인상주의가 해체된 세상 앞에 선 화가들은 다시 세상을 종합하기 시작했는데 그 방식은 과거와는 달랐습니다. 그들은 고전주의처럼 수학적이고 논리적으로, 즉 객관적이라고 인정받는 세상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는 대신 자신만의 세상을 창조하기 위해 분투하기 시작했습니다.
--- p.5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