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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해상도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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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8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376쪽 | 448g | 133*200*30mm
ISBN13 9788954694773
ISBN10 89546947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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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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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일이 있었다는 건 알겠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거지?
---「#바보스타상자」중에서

정신을 차려보면 윤일오는 내 눈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있었다. 보려 하지 않아도, 유튜브 알고리즘은 언제나 내 눈앞에 윤일오를 데려다놓았다.
---「#바보스타상자」중에서

나는 텔레비전 화면 앞에서 우주 어디쯤을 이름도 없이 떠돌고 있을 먼지와도 같이 작은 천체들을 상상하며,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크나큰 우주를 아득히 그려보았다. 멀리, 아주 멀리. 살아생전 내가 도달할 수 없는 곳에 이르고 싶었다. 나도 한 번쯤은, 그곳에.
---「#바보스타상자」중에서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나는 더욱더 게임에 열중할 수밖에 없었다. 얼굴과 성별과 인종을 바꿀 수 있는 곳은 그곳뿐이었으니까. 그곳은 그 어떤 논란도 생성되지 않는 곳이었다. 그저 정직하게 해가 뜨고 지는 곳.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하루가 지나면서 계절이 바뀌는 곳.
---「출처 없음, 출처 없음」중에서

밤은 깊어가는데, 비트 소리 점점 더 커지는 걸 보니, 옆집 놈은 도무지 좋게 말해 알아들을 새끼가 아닌 것 같았고, 물론 나쁘게 말해 알아들을 새끼도 아닌 것 같았지만, 그래도 좋게 말하는 것보다는 나쁘게 말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내가 나쁜 말을, 그러니까 옆집 놈을 벌벌 떨게 만들어줄 날카롭고 공격적인 말들을 찾아 머리를 굴리는 사이. 벽 너머 들리는 소리는 오직 트랩뿐이라, 나는 그에게 트랩만 하지 말고 붐뱁도 잘하는 사람 되자고 말하고 싶었다. 잘게 쪼갠다고 모두 트랩은 아니야. 네가 쪼개는 건 비트가 아니야.
---「벽과 선을 넘는 플로우」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음악을 사듯 그들의 삶을 사고 싶어했다.
---「벽과 선을 넘는 플로우」중에서

지나가는 사람이 그러더라고, 이거 엄청 비싼 그림이래. 너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더니, 그림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나지막이 말했다. 알 게 뭐야. 어차피 우리가 살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네 말이 맞았다. 맞아, 알 게 뭐야. 우리는 우리가 살 수 없는 것들을 바라보았다. 살 수 없어서 바라만 보았다.
---「위시리스트♥」중에서

나는 너에 대해 많은 걸 알고 있었지만, 정작 너의 이름과 성별과 나이와 얼굴과 목소리를 모르고 있었다. 나는 너의 연락처조차 알지 못한다.
---「낮은 해상도로부터」중에서

나는 입체적이면서 동시에 평면적이다. 그래서 나는 여기에 있는 동시에 저기에 있을 수 있었다. 나는 모든 곳에 있었기 때문에 그 어느 곳에도 없었다. 그곳에서 나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존재하지 않는 사람으로 분명 존재하고 있었다.
---「●LIVE」중에서

나는 나를 완전히 잃어버린 것 같았다. 나는 다시 내가 되고 싶었다. 정말로, 나는 내가 되고 싶었다. 나는 내가 맡은 최초의 배역이다. 나는 내 배역을 되찾고 싶었다.
---「●LIVE」중에서

그들은 분노를 통해 이 사회 안에서 자신들의 존재를 확인받으려 했다. 그러니 이 시대의 분노는 곧 자기를 표현하기 위한 일종의 퍼포먼스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댓글창이 아니라 무대가 아닐까. 아니, 어쩌면 댓글창이야말로 이 시대의 무대일지도 모른다.
---「자유낙하」중에서

네가 나가면, 문밖으로 너의 발소리가 들린다. 그 희미한 소리에 기대어, 나는 너의 걸음의 무게를 헤아려본다. 이내 소리가 사라진다. 네가 나의 아픔을 온전히 체감할 수 없듯. 나도 너의 아픔을 온전히 체감하지 못한다. 너의 아픔은 온전히 너의 것이다.
---「두개골의 안과 밖」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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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세계를 어떻게 경험하고 있을까. 삶이 인터넷 플랫폼과 SNS로 매개되고 중개되는 세계에서 과거와 같은 경험이 가능할까. 커트 보니것은 현대의 작가가 테크놀러지를 빼놓고 쓰는 건 빅토리아시대 작가가 섹스를 빼놓고 쓰는 것만큼 삶을 잘못 표현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서이제는 동시대를 표현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이 책은 경험이 불가능한 시대의 찬가다. 왜냐하면 이것이 우리들의 경험이므로, 현실과 경험 사이의 얇은 액정 위를 끊임없이 미끄러지는 것이 우리의 삶이니까.
- 정지돈 (소설가)
구석기시대를 살았던 자들 못지않게 유목민적인 우리에겐 진실을 보기 위한 시력이 필요하다. 그것은 모자이크화된 정보 이상을 볼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서이제가 쓴 아홉 편의 소설은 새롭게 형성되는 문명의 구성체로서 우리가 우리의 시력을 측정할 수 있게 해주는 공인된 검사표이다. ‘너’의 의미도, 사랑과 가능성의 실재도 이젠 다 ‘사라짐’ 속에 존재한다. 그리고 사라진 것들은 모자이크 너머로부터 다시 나타날 것이다. 사라진 것들에 대해 우리는 기다릴 수 있을 뿐이다. 기다리는 동안 얼핏 보지 않는 ‘시력’을 무장한 채.
- 박혜진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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