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운동의 주체를 생물학적 여성 혹은 남성 중심적 필드 속에서 구성된 여성에만 제한하지 않을 때, 페미니즘 운동이 다른 소수자들과 연대할 때, 기존의 여성 주체를 해체하고 새로운 복수의 여성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때, 남성에게도 새로운 주체성을 구축할 수 있는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 줄 때, 그리하여 여성 억압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종류의 억압과 차별, 소외, 폭력에 저항하는 혁명이 될 때, 그럴 때 페미니즘 앞에 붙은 ‘더러운’이라는 수식어는 수치심이 아닌 자긍심을 불러일으키는 단어가 될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조롱과 경멸, 혐오로 오염된 정체성은 새로운 혁명적 주체의 이름이 될 것이다
---「책머리에」중에서
성폭행 피해 여성만이 성폭력 문제를 말할 수 있고 이에 저항할 수 있다는 소설의 논리는 순정한 윤리적 주체에 대한 상상력을 촉발시킨다. 이는 지난해 성폭력 해시태그 운동 내부에서도 종종 발견되었다. 성폭력 피해 호소자의 고백에 근거해 끊임없이 ‘진정한’ 페미니스트를 신원 조회하고 그런 페미니스트만이 발언권을 가질 수 있다는 태도는, 다른 사람을 비난할 때만 간신히 자기 자신을 정당한 주체로 상상할 수 있는 네티즌 심판관을 떠올리게 한다. 문제는 진정한 페미니스트 신원조회가 한편으로는 여성들 사이에 배타적 차이를 설정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여성 공동체 내부의 차이를 삭제하는 이중의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이러한 방식은 결국 폐쇄적인 자기만족적 게토로서의 여성 공동체에 대한 상상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 p.32
과연 글쓰기의 성별은 확인 가능한 것인가? 상징질서 안에서 배제되고 주변화된 모든 존재는 여성이 될 수 있나? 여기서 말하는 여성, 여성적 글쓰기는 현실에서의 여성, 여성적 글쓰기와 얼마나 먼가, 아니면 가까운가? 그렇다면 여성 리비도를 자신의 시적 전략으로 활용하면서도 여성혐오가 공존하는 ‘생물학적 남성’의 시는 여성적인가, 남성적인가?
--- p.42
문제는 이러한 ‘올바른’ 페미니즘에 대한 강박이 문학계에서도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때 ‘올바른’의 내용은 각각의 문학적 성향이나 경험, 입장에 따라 다르겠지만 말이다. 그것은 형식적·미학적으로 올바른 것일 수도 있고 정치적으로 올바른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올바르게 형상화된 여성 인물은 어떤가? 때로 이러한 ‘올바른’에 대한 요구는 올바르지 않은 형식이나 내용으로 나타날 때도 있다. 그러나 재현된 것이 전부는 아니다. 예컨대 최은미의 「눈으로 만든 사람」을 보자. 이 소설에서 일차적으로 눈에 띄는 사실은 주인공 강윤희가 친족 성폭행 피해 생존자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소설에서 강윤희는 성폭력의 피해자라는 정체성에 스스로를 가두는 대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성폭행한 삼촌의 아들 강민서를 돌본다. 어린 시절 성폭행의 후유증으로 여전히 부인과 질환을 달고 살며 자기도 모르게 간헐적으로 밑도 끝도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오르면서도, 성조숙증을 겪는 어린 딸과 조카 강민서의 교류를 지켜보며 성폭행에 대한 두려움에 빠지면서도 왜 강윤희는 강민서를 보살피는 것일까? 아픈 조카를 돌보는 일은 그저 침묵의 레짐인 가족 구조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수행되어야 할 여성적 의무에 불과한 것일까? 그러나 나에게 이 고통스러운 돌봄은 상처받은 존재만이 지켜 낼 수 있는 최소한의 도덕적 책무이자 인간적 존엄으로 느껴졌다. 이러한 재현은 올바른가, 올바르지 않은가?
--- p.52
그런 페미니즘은 없다. ‘진짜 페미니즘’이란 마치 어떤 이상적 형태를 상정하고 거기에 도달하지 못하는 모든 것을 부정하는 텅 빈 기표와 같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상상하고, 그것을 가짜 기원으로 삼으면서 동시에 향수를 느끼는 것”처럼, ‘진짜’, ‘좋은’, 페미니즘이라는 개념은 오히려 우리 사회의 젠더 문제를 해결될 가능성이 거의 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왜냐하면 순수하고 완전한 페미니즘이라는 이데아는 이 현실 세계에서는 실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페미니즘, 혹은 페미니스트에 대한 당위와 대의명분에서 벗어나, 진짜인지 가짜인지 재단하지 않는, 각자의 복잡한 경험이나 개별 특성을 인정하는, 이분법적이고 대립적인 사고방식을 벗어난, 천편일률적이지 않은, 모순이 공존하는, 잡종적인, 오염된 페미니즘, 페미니스트인지도 모른다.
--- pp.83~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