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부모 역할은 처음이기에 아이 키우는 부모에게 육아는 크고 작은 난관의 연속입니다. 아이 키우며 마주하는 고비와 시련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에 대응하는 방식과 태도는 바꿀 수 있습니다. 아이를 고치는 것이 아닌 부모인 내가 변화하고자 하는 마음을 먹는 것, 아이를 향한 부정적인 생각과 걱정을 긍정적인 이해와 믿음으로 돌리는 것이지요.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 위한 든든한 심리적 자본인 자존감과 회복탄력성은 선천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후천적으로 발달하는 것입니다. 긍정적으로 대화하며 따뜻한 공감과 명확한 가르침을 주는 부모가 있다면, 아이는 분명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는 오뚝이 같은 아이로 자라날 것입니다.
---pp.10-11 「프롤로그」 중에서
부모로부터 이러한 공감과 이해, 위로의 말을 계속해서 들은 아이에게는 어떤 기적이 일어날까요? 아이는 어려움을 만날 때마다 부모가 들려준 공감과 지지, 격려의 말을 꺼내어 자신에게 들려주게 됩니다. ‘괜찮아.’, ‘방법이 있을 거야.’ 등 인생의 크고 작은 난관을 마주할 때마다 긍정적인 목소리가 재생되다 보니 이겨 낼 힘이 생겨요. 아이의 회복탄력성이 높아지는 것이지요. 역경과 실패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비결은 부모로부터 받은 긍정적인 메시지에 있습니다. 긍정적인 목소리를 내면에 장착한 아이는 자아상도 긍정적입니다. 외부로부터의 평가나 부정적인 반응에도 크게 상처받지 않아요. 자존감이 높아집니다. 부모와의 긍정적인 상호 작용을 통해 아이의 마음에 건강한 심리적 구조가 생기는 것입니다. 아이의 자존감과 회복탄력성을 키우는 오뚝이 육아의 핵심은 ‘긍정성’입니다. 긍정적인 정서 경험, 긍정적인 에너지가 가득할 때 아이는 부정적인 상황을 만나도 툭툭 털어 낼 수 있습니다.
---p.33 「오뚝이 육아의 핵심은 부모와 아이의 긍정적 상호 작용」 중에서
넘어져도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서는 회복탄력성 높은 아이로 키우고 싶다면, 부모인 나부터 회복탄력성을 길러야 합니다. 부모가 역경과 난관을 극복해 낼 때 아이도 부모를 보고 인생의 고난과 고통을 어떻게 견디고 이겨 내는지 배울 수 있어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부모 자신의 회복탄력성을 높일 수 있을까요? 넘어져도 오뚝이처럼 일어서는 부모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내가 언제 어떤 상황에서 넘어지는지 그 지점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어떤 상황에서 마음이 무너지는지, 어떤 감정에 자주 휘둘리는지, 내가 잘 견디는 감정은 무엇인지, 어떤 상황에서 마음이 편안해지는지 생각해 보는 것이지요. 부모인 나의 취약성과 결핍, 그로 인한 잘못된 사고 패턴을 알고 그것을 잘 다뤄 나가야 합니다. 나의 취약성을 알 때 그것에 머물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pp.36-37 「부모 자신의 취약성 알기’ 중에서 (pp. 36-37)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는 오뚝이 같은 아이로 키우기 위해서는 아이가 어떤 상황에서 유독 잘 넘어지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아이의 취약성을 부모가 알아차려서 아이에 따라 양육 방식과 대화 패턴을 달리해야 해요. 거절에 취약한 아이라면 단칼에 자르지 않고 아이의 마음을 읽어 주고 속내를 묻는 대화를 시도하는 게 바람직합니다. 숨겨진 욕구를 궁금해하는 거죠. 아이가 용기 내어 어렵게 자신의 욕구를 표현한 것일 수 있으니까요. 단칼에 자르면 아이가 원하는 게 있어도 미리 포기할 수 있어요. 쉽게 체념하며 자신의 욕구를 좌절시키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아이도 거절을 이겨 내고 원하는 것과 필요로 하는 걸 말로 표현하는 법을 배워야 해요. 아이의 이러한 취약성을 이해하면 이를 감안하여 좀 더 섬세하게 말할 수 있어요.
---pp.43-44 「아이의 취약성 알기」 중에서
부모가 감정에 미숙하면 아이의 심리적 성장을 이끌기 어렵습니다. 부모가 부정적인 감정에 휘둘리면 아이에게 긍정적인 정서를 공급해 주기 힘드니까요. 아이가 짜증을 낼 때 부모가 화를 내거나 질책으로 응수하면 아이의 내면에 부정적인 게 채워지고 말아요. 아이와 긍정적인 상호 작용을 하려면 먼저 부모가 ‘감정 조절’부터 할 수 있어야 해요. 아이의 부정적인 말에도 흔들리지 않고 단단히 버텨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부모가 부정적인 감정을 원활하게 처리할 수 있을 때 아이의 부정적인 말에 매몰되지 않고 긍정적인 걸 줄 수 있어요. 감정 조절에 능숙한 부모가 긍정적인 상호 작용을 통해 아이의 자존감과 회복탄력성을 키울 수 있습니다.
---pp.57-58 「결핍이 있는 부모, 감정에 서툰 부모」 중에서
공감은 감정 주고받기입니다. 만약 아이가 던진 공을 마냥 받아 내기만 하면 부모도 지치고 맙니다. 일방적으로 아이 감정을 수용하고 이해하는 것은 한계가 있어요. 아무리 부모라고 해도 아이에게 감정이 상하는 순간이 오기 마련입니다. 부모인 내 감정을 뒷전으로 하고 억누르기만 한 채 무한히 아이의 감정만을 헤아려 줄 수는 없습니다. 부모의 욕구와 감정을 억압한 채 아이 감정만 수용해 주려고 하면 부모도 지칠 수밖에 없어요. (…) 아이의 감정이 소중한 것처럼, 양육자의 감정 또한 소중합니다. 부모의 감정을 아이에게 잘 전달하여 아이 역시 부모의 감정을 존중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아이와 긍정적인 상호 작용을 지속할 수 있어요. 화내지 않고 소리 지르지 않고 상황 속 불편함, 서운함, 실망감을 적절히 나타낼 때 그 감정을 잘 흘려보낼 수 있습니다. 감정을 적절히 표현할 때 부정적 감정을 다스리며 긍정적인 걸 주고받을 수 있어요.
---pp.110-115 「부모의 감정 말하기」 중에서
부모가 아이를 사랑하는 것처럼 아이도 부모를 사랑합니다. 부모가 아이에게 상처 주고 싶지 않은 것처럼 아이도 그렇습니다. 서로의 감정을 주고받는 공감 대화는 결국 사랑을 주고받는 과정인 셈입니다.
---p.125 「감정 주고받기는 사랑 주고받기다」 중에서
때로는 힘들고 하기 싫어도 참아야 하는데, 부모가 감정까지 해결해 주면 아이는 힘들 때 견디는 법과 감정을 처리하는 법을 배우지 못합니다. 부모를 만만히 여겨 투정이나 어리광을 부리고, 심하면 함부로 하기도 해요. 또한 감정을 조절하고 다루는 법을 배우지 못하기 때문에 고통에 취약해집니다. 학교에서 선생님에게 꾸지람 듣는 것도 잘 견디지 못하고, 그것을 비난으로 받아들여 크게 상처 입는 일도 생깁니다. 온실 속 화초처럼 자라게 되는 것이지요. 공감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은 정서적 과잉 보호인 셈입니다. 아이가 상처받는 걸 부모가 못 견디는 거죠. 아이가 슬퍼하고 실망하는 모습을 보는 게 부모에게 고통이다 보니 아예 좌절을 겪지 않도록 막아서는 것입니다. 이처럼 부모가 대신 감정을 해결해 주면 아이는 삶에서 반드시 마주치게 되는 고통과 어려움을 다루는 법을 배우지 못합니다. 감정 해결은 공감이 아닙니다. 감정적 어려움을 이겨 낼 내면의 힘을 북돋워 주는 것이 공감이에요. 감정의 주인은 아이이고, 감정에 대한 책임 역시 감정의 주인인 아이의 몫입니다.
---p.128 「공감에 대한 오해 바로잡기」 중에서
방관자 부모는 어떠한 가르침도 주지 않으며, 방관자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채 불안감만 커져 갑니다. 아직 감정 조절이 서툰 아이는 양육자에게 힘든 마음을 털어놓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네가 알아서 해.”, “네 마음대로 해.”라는 식의 모호한 말을 들은 아이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혼란스러워합니다. 스스로 알아서 판단하고 결정할 만한 능력이 없는 아이에게 알아서 하라고 하는 말은 자율성이 아닌 불안만 자극합니다. 부모가 언제 짜증 섞인 반응과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일지 예측이 안 되니, 아이는 늘 불안한 상태로 부모 눈치만 살피게 되죠. 아이의 정서 발달에 전혀 도움을 주지 않는, 양육자라면 늘 경계하고 피해야 하는 유형입니다.
---p.160 「하든 말든 마음대로 해 : 방관자 부모」 중에서
독재자 부모한테서 자란 아이는 밖에 나가면 모범생이라는 얘기를 많이 들어요. 예의, 양보, 배려 등 사회적으로 지켜야 할 규범들을 부모가 많이 주입했기 때문이지요. 독재자 부모는 체면과 평판을 중시하고 아이가 어디 가서 남들에게 안 좋은 소리 듣는 걸 못 견딥니다. 이렇다 보니 아이에게는 남에게 인사 잘하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 주지 않는 게 몸에 뱁니다. (…) 어른 말씀에 고분고분하고 제 할 일 알아서 척척 하고 의젓하게 남을 배려하면 좋겠지만, 엄밀히 말해 그건 어른에게 좋은 것이지 아이에게 좋은 것은 아닙니다. 아이에게는 조금 부족해도 안아 주고 품어 주고 이해와 공감을 주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아이다울 수 있습니다. 아이가 다른 사람과 마음을 주고받고 더불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정서를 만드는 책임은 부모에게 있습니다.
---pp.166-168 「내가 미리미리 하라고 했지 : 독재자 부모」 중에서
오뚝이 육아의 관점에서 살펴봤을 때, 세 번째 유형인 ‘친구 같은 부모’는 아이 마음에 충분히 공감하지만, 가르침에는 소홀합니다. 아이와의 친밀하고 따뜻한 관계를 중요시하죠. 아이의 감정을 읽고, 정서를 안정시키는 데 애써요. 아이로서는 다정하고 따뜻한 부모가 편하고 좋습니다. 내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해 준 양육자에게 고마움과 사랑을 느끼죠. 내 편이 있다는 정서적 안정감도 생겨요. 친구 같은 부모는 아이에게 싫은 내색이나 불편한 감정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습니다. 괜한 갈등을 만들어 아이의 마음을 상하게 할까 봐 웬만하면 말을 하지 않아요. (…) 지나치게 친절하고 허용적이며 과보호적입니다. 아이와의 관계를 해칠까 봐, 혹은 아이가 상처받을까 봐 가르침을 주저합니다. 아이가 좌절하고 낙심하는 게 부모에게도 고통이기 때문에 아이의 심기를 거스르는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겁니다.
---p.170 「힘들면 못 하지 : 친구 같은 부모」 중에서
오뚝이 육아의 관점에서 살펴봤을 때, 네 번째 유형인 ‘멘토 부모’는 ‘공감’과 ‘가르침’을 균형 있게 제공합니다. 아이의 마음을 보듬어 주면서 올바른 길로 이끌어 주죠. 공감과 가르침을 둘 다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유형입니다. (…) 신뢰할 수 있고 의지할 만한 어른이 없을 때 아이는 어려움을 혼자 버텨 내야 합니다. 피난처 없이 차가운 현실을 견뎌 내야 하죠. 곤란한 문제가 생겼을 때 갈피를 못 잡고 헤매니 외롭고 고단합니다. 인생의 난관을 만났을 때 현명하게 조언해 줄 멘토가 있다면 어떨까요? 마음을 이해해 주고 현명하게 조언해 주는 부모를 아이는 신뢰하고 의지할 수 있습니다. 사랑과 안정감을 느껴요. 속 깊은 이야기도 부모에게 털어놓을 수 있습니다. ‘힘들 때는 엄마와 상의해야겠다.’, ‘나는 혼자가 아니구나.’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는 든든한 안전 기지가 있기에 새로운 세계를 용기 있게 탐험해 나갈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멘토가 되는 건 어려운 일이에요. 하지만 부모인 내가 내 아이 한 사람을 위한 멘토는 되어 줄 수 있습니다. 낳아서 키운 부모, 가장 오랜 기간 곁에서 지켜보고 함께한 부모, 아이를 가장 잘 아는 부모야말로 아이를 위한 멘토의 적임자이기 때문입니다.
---pp.175-177 「그럴 때는 이렇게 해 봐 : 멘토 부모」 중에서
책을 쓰면서 아이만이 아니라 부모인 저 역시 마음이 단단해져 왔음을 깨달았습니다. (…) 아이를 이해하고자 애쓰는 동안 부모인 나를 알게 됐습니다. 아이의 마음을 키워 주고자 노력하는 사이, 부모인 제 마음도 건강해졌습니다. 공감과 가르침, 긍정의 오뚝이 육아의 수혜자는 아이만이 아닌 부모와 아이 모두인 셈입니다.
---p.234 「에필로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