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런데 왜, 범죄 자료관이 재수사를 하는 겁니까?”
“나는 이 ‘붉은 박물관’이 법망을 피해 도망치는 범인을 막아 내는 최후의 보루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미궁에 빠진 사건의 증거품이 여기 오면 나는 그 사건을 한 번 더 검토하지. 물론 검토해도 아무것도 안 나오는 경우가 많아. 그러나 아주 드물게도 새로운 관점을 얻게 되는 경우도 있어. 그런 관점을 바탕으로 사건을 바라보면 해결하게 될 수도 있다. 나는 그 가능성에 기대를 거는 거야.”
---「빵의 몸값」중에서
(……)
갑자기 눈물이 나올 것 같아서 나는 고개를 딴 데로 돌렸다. 중학생이었을 때 부모님을 여읜 나의 마음에 후미코 아주머니의 말이 깊숙하게 파고들었다. 한순간 복수의 결심이 흔들릴 뻔했다. 그러나 복수를 그만둘 수는 없다. 이것은 내가 마이코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니까.
---「복수 일기」중에서
(……)
바로 그때였다.
그 남자가 갑자기 눈을 뜨고 떠듬떠듬 말을 했다.
“이건…… 내가 저지른 죄의, 벌이야…….”
“구급차를 불렀습니다. 병원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마세요. 체력이 소모됩니다.”
“아니, 난 이미 틀렸어. 유언을, 남겨야 해…….”
“유언이라니, 뭘 말씀하시고 싶으신데요?”
“이십오 년 전 9월, 나는 죄를 지었어……. 교환 살인을 했어…….”
“……교환 살인?”
사토시는 경악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걸까.
“나도, 공범자도, 죽이고 싶은 상대가 있었어……. 하지만 동기가 너무 명백해서, 죽이면 금방 들키니까…… 그래서, 나와 공범자는 죽일 상대를 교환했다……. 우선 내가 ……란 남자를 죽였고, 일주일 후, 공범자한테 ……를 죽여 달라고 했어…….”
중요한 부분의 목소리가 갈라져서 들리지 않았다. 공범자에게 죽여 달라고 부탁했던 상대의 이름이, 자신이 죽인 상대의 이름보다 훨씬 짧은 것 같았는데, 뭐라고 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어디 사는 누구를 죽였다는 거죠?”
“도쿄에 사는 ……라는 남자.”
그 목소리는 갈라져서 잘 들리지 않았다.
“다시 한 번 말씀해 주세요.”
사토시는 좀 전에 “아무 말도 하지 마세요.”라고 말했던 것도 잊어버리고 질문을 던졌다.
“……라는 남자.”
여전히 안 들렸다. 사토시는 뿌드득 이를 갈 뻔했다.
“……경찰은, 나와 공범자를 의심했는데, 죽이고 싶은 상대가 죽었던 시간대에는, 나도 공범자도 각각 완벽한 알리바이가 있어서, 결국 어쩌지 못했어…….”
그 남자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지더니 당장이라도 사라질 것 같았다.
“그뿐만이 아니야. 나는…….”
끝까지 말하기 전에 그 남자의 몸이 경련을 일으켰다. 그는 한순간 허공을 바라봤다. 그 눈동자에서 빛이 사라지고, 눈꺼풀이 천천히 밑으로 내려왔다. 그의 몸에서 급속히 힘이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사토시는 황급히 상대의 맥을 짚었다. 이미 맥이 뛰지 않았다. 고백의 중요한 부분을 정확히 밝히지 않은 채 그 남자는 세상을 떠난 것이다.
---「죽음이 공범자를 갈라놓을 때까지」중에서
(……)
나는 그때 다섯 살이었다. 나는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다정한 엄마와 멋쟁이 아빠. 몇 달 후에 태어난다는 내 동생. 자주 선물을 들고 와서 나랑 놀아 주는 이모. 활기찬 유치원 선생님. 사이좋은 친구. 그리고 좋아하는 것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커다란 곰 인형. 엄마가 만든 자수 작품. 마당에 심은 튤립. 그런데 그것들 대부분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 내가 빼앗긴 그것들은 두 번 다시 나에게 돌아오지 않았다.
---「불길」중에서
(……)
“삼 일 전에 야마자키 수사1과장이 말했듯이 수사1과는 여섯 가지 특징이 일치했기 때문에 이십육 년 전의 사건과 현재의 사건을 동일범의 소행이라고 간주한 것 같은데, 과연 정말로 그럴까?”
“어, 그래도 시체와 현장의 상황이 완전히 똑같으니까…….”
“그게 문제야. 피해자의 연령도, 범행 일시도, 살해 수법도, 시체를 유기한 장소도, 시체의 상황도 전부 다 동일. 현재의 사건은 이십육 년 전 사건을 너무나 완벽하게 재현했다. 동일범이라도 당연히 생길 만한 차이점이 전혀 생기지 않았다고. 그뿐만이 아니야. 범인은 이십육 년 전의 사건에서 우연히 발생했던 일까지 전부 다 재현했다. 이십육 년 전 사건에서 피해자의 스웨터 소매에는, 아마도 부상당한 범인의 피인 듯한 혈액이 묻어 있었어. 이것은 누가 봐도 우연히 일어난 일이었어. 그런데 범인은 그것까지도 재현했다. 우연한 일까지 재현했다는 점에서, 이건 오히려 모방범일 가능성이 높아.”
---「죽음에 이르는 질문」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