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감독 경계에 살기. 잠시 머무는 곳에 살기. 무대와 무대 뒤 그 사이에서 살기. 현실의 둑과 허구의 둑을 잇는 다리에서 살기. 그 두 강둑 사이로 흐르는 큰 강의 밑바닥까지 내려가는 법을 알기. 세상과 무대를 가르는 말의 유수 속에서 헤엄치는 법을 알기. 기다리기, 지켜보기, 듣기. 살면서 좋은 날은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날이고 강물에 몸을 담그지 않아도 되는 날이라고 여기는 누군가를 위해 구조대원이 되기. 사고를 기다리기, 극장이 세상의 일부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상기시켜주는 실수를 기다리기. 배우가 망각의 불안에 사로잡힐 때, 예기치 않게 기억이 꼬일 때, 현실에서 갈피를 못 잡을 때, 자신이 유한한 존재이고, 완벽한 인물이 아니라 잠시 빌려온 연약한 육신일 뿐이라는 사실을 떠올릴 때, 그를 단어로 구하기, 그의 귀에 속삭이기, 그를 소생시키기, 그에게 대본을 조용히 일러주기, 그에게 생각과 의미와 몸짓을 되돌려주기. 이것이 오늘 우리가 말해야 할 이야기이자, 우리가 보여줘야 하는 것들입니다. 구조대원이 강물에 뛰어드는 순간 말입니다. 우리는 현실의 강물에 빠졌고, 삶이 허구의 둑을 범람하기 때문입니다. 프롬프터, 당신을 말하고 싶어요. 프롬프터를 연기하는 배우가 아니라, 진짜 프롬프터인 당신이 무대 위에서 배우들에게 대사를 알려주고 그들을 구조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요. 사고를 다루는 이야기를 쓰는 거죠. 사고가 났을 때의 구조대원 이야기요. 나는 당신을 위한 연극을 쓸 거예요.
--- p.11~12
프롬프터 다섯 살 때 태어나서 처음으로 연극을 봤습니다. 나는 프롬프터 박스 안에 몸을 숨기고 배우들을 보기 위해 까치발을 했어요. 손가락 끝이 무대에 닿았습니다. 이렇게, 아주 조심스럽게, 불에 손을 델까 봐 두려운 것처럼요. 그런데 어느 순간에 배우가 대사를 잊어버렸고, 그러자 프롬프터가 속삭였습니다. “파멸이 그들의 뒤를 따를 것이다.” 프롬프터가 속삭일 때, “파멸이 그들의 뒤를 따를 것이다”라는 문장은 아무 의미도 없었습니다. 그건 문장이 아니라 그저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소리에 불과했습니다. 길게 속삭이는 말일 뿐이었어요. “파멸이 그들의 뒤를 따를 것이다.” 하지만 헨리 왕을 연기하는 배우가 “파멸이 그들의 뒤를 따를 것이다”라는 대사를 말했을 때, 그 문장은 무언가를 전하고 있었습니다. “파멸이 그들의 뒤를 따를 것이다.” 그 일이 일어났을 때, 나는 손가락 끝에서 무대가 활활 타오르는 것을 느꼈습니다.
--- p.18~19
예술감독 죽지 않기. 무엇보다 죽지 않기. 살아가기. 비극의 도입부에 예언자 테이레시아스처럼 신중하고 상냥하게 진단을 내리는 의사 앞에서 흐트러지지 않기. 삶의 근간이 되는 것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라고 주장하는 우리가 옳았다는 것을 알기. 우리는 우리가 한 말을 의심했을 때조차도 옳았다. 우리는 늘 우리가 말하는 것들을 의심하고, 또 말 사이에 둔 침묵을 침묵이라고 부르지 않으며, 그것에 의심이라는 이름을 붙인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의심 속에서도 살아가기. 죽음에 대한 생각에 직면할 때, 우리가 삶에 속해야 하는 이유인 미래의 신비를 다시 확인하기. 세상 사람들이 우리와 합류할 것이라고 희망하며 주저앉아 있을 곳을 알려주며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따지지 말고 무력한 패배자가 되어 임종의 시간을 기다리라고 말하는 죽음의 상냥한 초대장을 거절할 줄 알기. 죽음을 밀어내고 세상을 보러 떠나기. 방랑자가 되어 산 너머에 숨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밤의 끝을 향해 여행하기. 어쩌면 세상의 아주 작은 부분을 변화시킬 때까지, 아니 절대 해내지 못할 수도 있지만, 삶에 의해 패배자가 되기. 무엇보다 죽지 않을 것. 좁은 진료실에서 테이레시아스가 공포를 예언할 때, 죽음에 대한 생각이 우리와 함께 있다는 사실을 알기.
--- p.84~85
무엇보다 죽지 않기. 늘 그래왔듯이 힘든 시간 속에서 살아남는 일의 달콤한 괴로움을 음미하기. 그러나 편안한 시간에는 절대 그럴 수 없다, 편안한 시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으니까. 누군가 우리에게 오직 이 세계만이 가능하다고 말할 때, 그들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은 죽음이고, 우리는 죽음과 싸우는 타자들임을 알기. 그러기 위해 우리는 공공장소들과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는 은밀한 장소를 지켜나가야 한다. 우리는 신비한 것에 자신을 바치는 순간을, 우리가 우리를 만나 “여기에 있는 우리는 어쩌면 소수에 불과할지도 모르지만, 확실한 것은 우리가 죽음을 마주하면서도 살아남기를 선택했다는 것이다”라고 말하는 그 순간을 지켜내야만 한다. 고함을 치는 대신에 속삭이기. 세상의 소란을 거부하기. 우리가 듣고 싶지 않을 때도 늘 그곳에 있었던, 침묵 사이에서 들려오는 숨소리를 듣기. 바람의 소리를, 생각의 호흡을, 장소의 정신을, 우리가 처음으로 자신을 마주한, 하나뿐인 그 짧은 순간을 지켜내기. 무엇보다 죽지 않을 것.
--- p.85~86
세상은 다시 두 부류로 나뉘었지. 고독과 다른 것들. 내 고독이 죽음의 대기실이라는 느낌이 사라졌어. 밤이고 낮이고 절대 멈추지 않았던 날카로운 경고음이, 내가 살아서 이미 죽음 이후에 우리 모두를 기다리는 고독을 살고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주던 경고음이 사라진 거야. 그러다 불현듯 그 고독 덕분에 죽음의 필연성이 나를 살고자 하는 욕망으로 밀어붙였지.
--- p.116
욜렌테 앙베르로 가는 기차를 탈 거야. 키스해줘. 집에 갈 거야. 키스해줘. 문을 열고 들어가서 그를 볼 거야. 그는 『안나 카레니나』를 읽고 있을 거야. 내가 방에 들어가도 책에서 눈을 떼지 않겠지. 그는 내 얼굴에 적힌 것을 읽기를 두려워할 거야. 그는 당신이 지금 나를 바라보는 것처럼 바라보지 않을 거야. 나는 그를 바라볼 거야. 내가 그를 아직 사랑하는지 아니면 내가 언제 그를 사랑했는지 알아볼 거야. 내가 당신의 얼굴을 볼 때 배 속에서 느끼는 것을 그의 얼굴을 볼 때도 똑같이 느끼는지 알아볼 거야. 그의 얼굴에서 당신의 얼굴을 찾을 거야. 우리는 함께 사는 사람의 얼굴을 볼 때, 언제나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보고 싶어 해. 그 두 얼굴이 일치하기를 원하지.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나 눈을 뜨면 처음으로 보이는 그 귀가 우리가 사랑하는 귀이기를 원해. 그 귀의 귓불이 우리가 사랑하는 귓불의 모양과 정확히 일치하기를 원해.
--- p.134
이제 이 책에서 모든 것에 대한 답을 구하려는 희망이 우습다는 것을 알아. 질문을 찾는 것이 더 빠르겠지. 이제는 배에 닿으려고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아. 헤엄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내가 난파당한 사람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면 돼. 우리는 모두 난파당한 사람들이야. 답은 없어. 얼마나 행복해, 답이 없다니. 잘됐지. 마에, 안나는 역에 도착해서 자신의 삶이 얼마나 더 행복할 수 있는지, 그 남자를 얼마나 많이 사랑하는지, 그를 얼마나 고통스럽게 증오하는지를 생각해. 그의 끔찍한 심장 박동 소리를 생각하지.
--- p.180
티아구 호드리게스의 『소프루』를 만나고 오래전 그 극장을 떠올렸던 것은, 내가 옮기기를 소망했던 그 장소의 언어를 그의 글에서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의 침묵은 이곳에서 그림자와 숨결의 말이 됐다. 내게는 모호했던 그 말이 어떻게 이토록 선명한 언어로 옮겨질 수 있었을까. 『소프루』를 번역하는 동안 줄곧 그런 즐거운 질문에 사로잡혀 있었고, 번역을 마친 지금 내가 발견한 답을 여기서 나눠보고자 한다.
--- p.190, 「옮긴이의 말」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