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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현대미술

: 진짜 예술가와 가짜 가치들

[ 양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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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11월 10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184쪽 | 408g | 140*210*23mm
ISBN13 9791169837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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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좋아하지 않는 작가들이 경매장과 현대미술 아트페어, 일부 현대미술관에선 성공을 거둔다. 솔직해지자. 이 모든 체계의 상징이 된 불행한 작가의 이름을 빌려 말하면, 아무도 제프 쿤스를 좋아하지 않는다. 누구도 그의 작품을 보면서 감동하거나, 감탄하거나, 감명받거나, 찬사를 보내지 않는다. 단 한 명도. 오늘날 유명한 소위 ‘예술가들’ 대부분이 만든 작품도 마찬가지다. 그에 관심을 가지고 가치를 부여하는 건 작품을 코트 다쥐르의 해안 별장이나 전용기처럼 부유함의 상징으로 여기는 부자들, 그리고 그 터무니없는 가격에 경악하며 작품에 자신이 모르는 무언가가 있는 게 틀림없다고 생각하는 일부 사람들뿐이다.
--- p.10

이로써 수사학적 수단이 완성된다. 현대미술가가 싫다? 지극히 정상이다. 모든 위대한 작품은 처음에는 불쾌하다. 그런 건 예술이 아니다? 150년 전부터 미술사는 이념의 전복과 파괴 그 자체였음을 기억하라. 게다가 현대미술은 전복적이고 범법적이기에, 예술가가 미움받는다는 건 그가 이 위대한 미술사에 속해 있음을 보여 줄 뿐이다. 루브르나 베르사유에서 열린 발칙한 현대미술 전시회를 비판하시겠다? 인상주의자들과 반 고흐 역시 당대에는 외면받았다. 역사가 심판하리라. 그리고 그대의 고지식함과 소시민적 취향을 비웃으리라. 그러고는 넥타이와 서류 가방까지 챙긴 이 양복쟁이들은 자신들 이 전복과 무정부주의를 대표한다고 설명할 것이다. 방돔 광장에 거대한 ‘애널 플러그’를 세우거나, 베르사유에 천박하기 짝이 없는 ‘여왕의 질’을 전시했다는 이유로.
--- p.42

현대화의 여정 위에서 미술사의 패턴을 끊임없이 벗어나는 이런 화가들을 보며, 우린 20세기 미술사를 완전히 다시 써야 한단 사실을 이해할 수 있다. 실제로, 진보를 향한 이정표나 아방가르드의 군사적 계승과 무관한 미술사, 즉 길을 따르지 않는 예술가를 향한 규탄을 정당화하지 않는 미술사가 존재한다. 그것은 선대로부터 탄생하여 유일성을 획득한 각각의 위대한 예술가들이 자아내는 유기적인 미술사, 별자리의 형태를 띤 미술사다. (…) 이 역사에서 예술적 가치는 역사적인 것이 아니라 시대를 초월한 것이며, 따라서 미술사는 하나의 최종 목표를 향해 점차 나아가는 과정이 아니라 인간의 창조적 능력이 계속해서 변모해 가는 과정이다. 그 안에서 우리는 화가들이 스스로 주장하는 계보, 화가들이 동시대 후계자들의 작품에서 보았던 계보에 주목해야 한다. 역사철학자나 비평가가 아닌, 예술가들이 직접 쓴 역사를.
--- p.53

마르틴 프랑크가 1982년에 찍은 한 장의 사진은 이 역사가 사실임을 보여 준다. 사진은 저녁 식사와 진한 술자리를 마친 한 무리의 친구들이 서로 팔짱 낀 모습을 담았다. 중앙에는 마르틴 프랑크의 남편인 카르티에 브레송이, 그 옆에는 제임스 로드가 있다. 테이블 반대편에는 화가 샘 사프랑과 그의 아내 릴레트가 있다. 그리고 네 사람에게 붙잡혀 얼굴을 찡그리는 한 노신사가 있으니, 바로 디에고 자코메티다.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동생이자 가장 친한 친구, 형의 모델이자 전기 작가였으며, 그 자신도 조각가이자 금세기 가장 독창적인 가구 디자이너 중 한 명이었던 디에고. 그와 친구들은 우정을 통해 프랑스 예술의 연속성을 입증해 준 것이다. 알베르토 역시 생을 마감하기 전 사프랑의 친구였다. 만약 그가 살아있었다면, 그날 같은 테이블에 앉아 함께 술잔을 기울였을 것이다.
--- p.84

이런 일상의 예찬은 볼품없거나 무미건조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사실 그것은 회화가 지닌 힘, 가장 평범한 현실을 변화시키면서 우리가 살아가 는 이 세상을 사랑하게 만드는, 세상의 색채를 바라보고 그것이 자아내는 시를 읽을 수 있게 해주는 회화의 능력에 대한 예찬이다. 가장 평범한 일상으로부터 낯선 아름다움과 기하학적 비율, 색의 조화를 발견하는 것보다 더 시적인 것은 없으며, 아마 더 형이상학적인 것도 없으리라. 그렇기에 이 세계를 힘겹게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있어 아리카는 귀중한 화가다.
--- p.96

하지만 잠시 생각해 보면, 2020년에 풍경을 마주하고 감히 그걸 그리는 것보다 더 대담한 일은 없다. 그것은 자신과 자기 결과물을 과시하려 애쓰는 대신 소재가 지닌 아름다움과 진리를 되찾으려는 시도다. (…) 세슈레의 접근 방식은 무척이나 겸손하고 동시에 야심 차다. 이는 소설이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했던 19세기 사실주의로 돌아감으로써 20세기 아방가르드를 성공적으로 벗어났던 우엘벡의 접근 방식과 비슷하다. 그리고 실제로 세슈레는 순환의 끝이나 순수한 회상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대표한다. 많은 젊은 화가가 그에게 배움을 청했으며, 현 30대인 화가 세대에 있어 세슈레는 이제 한 명의 스승으로 통한다.
--- p.113

그렇다. 프랑스 회화의 전통이란 개념은 인상주의 화가 세대에서 탄생했다. 그것은 프랑스 회화의 황금기와 함께 나타났으며, 황금기를 살았던 화가들 스스로가 공유한 개념이었다. 다시 말해, 스스로가 민족 전통에 속한다는 명확한 인식은 후퇴와 고립이 아니라 혁신과 확장의 원천이었다. 스코세이지나 티란티노가 독장척인 영화감독인 동시에 영화 애호가인 것처럼, 인상주의자들은 자신들에게 이어진 과거 국내외 예술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 지식이야말로 인상주의자들이 지닌 독창성의 비결이었다.
--- p.136

이 선택, 위대한 프랑스 화가들과 우리 시대 프랑스에 사는 화가들은 작품을 위해 이 선택을 했다. 회화의 황폐화와 죽음이 분명해 보이는 이 시대에, 그들은 자신의 앞세대를 공부하고 그들 곁에서 힘을 얻으며 아름다움을 향한 길을 찾았다. (…) 가치 있는 예술 작품을 생산하기 위해 반드시 예술적 전통을 따라야만 하는 건 아니다. 즉 어떤 민족 전통을 따르는 것이 성공적인 예술 작품의 창조를 보장하진 않는다. 그러나 프랑스 회화의 역사는 오늘날 화가들이 지닌 원천 가운데 하나며, 미래의 화가들에게도 그러할 것이다.
--- p.149

유럽은 지난 4~5세기를 지나며 점차 신을 믿지 않게 되었다. 동시에 이 신성한 위계의 꼭대기에 예술이 올라섰다. (…) 우리는 예술의 신성화에서 예술가의 신성화로, 그리고 모두가 예술가처럼 살 수 있길 바라는 1968년 5월의 요구로 옮겨 갔다. 부르주아들은 보헤미안이 되고 싶어 했다. 20세기 초 가장 뛰어났던 지성인들이 예술가의 신성화를 걱정하면서 우상 숭배를 조롱하고 경각심을 일깨우려 했지만, 그 결과는 이성으로의 회귀가 아니라 니체가 예견했던 허무주의의 신격화뿐이었다.
--- p.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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